|
|
출처: 코타키나바루의 모든것!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어느 인질범이
할머니를 납치해 인질로 잡아놓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너의 시어머니 내가 데리고 있다.
천만 원을 가져오면 풀어 주마"
며느리 "어림없는 소리, 니 맘대로 해"
인질범 왈 "
좋다 그럼 너의 시어머니 도로 데려다 놓겠다"
당황한 며느리 황급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은행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 밥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넋두리인줄만 알았습니다.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 한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그 모습을 본 후론...
아~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어머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가
어느 날 밖에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망설임도 없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습니다.
이불에 쌓인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큰아들은 동경대학에,
작은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각각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는
먼저 큰아들이 있는 동경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수석졸업을 하게 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수위실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라" 고 전했고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는
죽기 전에 둘째 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
둘째 아들이 졸업하는 와세다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절뚝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보았소" 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 가운데에 앉혔습니다.
값비싼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수군거리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아들이 답사를 하면서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 해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고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어
둘째 아들은 큰 회사 오너의 사위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아들은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몸이 상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불 속에서 건져내고 구걸을 하면서까지 아들을 공부시킨,
자식을 위해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이가 바로 어머니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어렸을 때
그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바다의 사람이 되겠다 생각을 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짐을 다 꾸려 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줄줄 우는 겁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서 선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
나보다 어머니에겐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를 높이고 높여 순종한 것이에요.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 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 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 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 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한 국 노인 문제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자손들과 함께 사는 노인이 1975년에는 78.2% 였답니다.
그러던 것이 2000년에 와서는 25%로 급감했습니다.
독거노인은 1975년에는 7% 였는데 2000년에 와서는 55%로 급증했습니다.
오늘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손들과 떨어져 살고 있고,
갈수록 혼자 사는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의 노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외로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들의 외로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횟수를 늘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전화 드리는 횟수를 늘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외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어느 단체가 65세 이상 되신 부모님을 상대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노인들이 자녀에게 가장하기 싫어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 아프다는 말을 하기 싫어합니다.
아파서 혼자 끙끙대는 한이 있어도 자식에게 아프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둘째, 외롭다는 말을 하기 싫어합니다.
과부든, 홀아비든 외로워도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셋 째, 용돈 달라는 소리를 하기 싫어합니다.
공원에 가서 무료 급식을 먹고,
차비가 없어서 걸어 다니는 한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용돈 달라는 소리는 안 합니다.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돈을 썼으면서도
자식들에게 용돈 달라는 소리는 차마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면에 부모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건강하세요.
백수는 걱정 없겠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서 저도 이렇게 머리가 좋은가 봐요’
‘다들 부모 덕 많이 본다고 그래요’ ‘
아버지 어머니 절반만 돼도 소원이 없겠어요’
‘저희들 키운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죠’
‘역시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예요’
‘아버지 어머니처럼만 살겠습니다’
‘역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니까 이 정도죠’
‘어쩌면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세요?
젊은 사람도 못 따라가요’
‘모두 부모님 덕분이지요’
우리들이 잘 아는 노래 중에
“어머니 마음”이라는 곡이 있다 (양주동시, 이흥렬작곡).
“1.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2.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생선장수 어머니」
어린시절,
시장에 생선을 파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창피했습니다.
저녁때 팔다 남은 고등어가 밥상에 오를 때면
철없는 투정으로 숟가락을 팽개쳤고,
힘들게 생선을 팔아 초등학교에 보내주실 때에도
학용품 사라며 쥐어주신 돈을
생선 냄새가 난다며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요.
일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깨달은 지금
시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그 얼굴 사이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머리라도 조아리고 싶어지지만
이제 어머님은 그 어디에도 계시질 않습니다.
그 옛날로 돌아가,
어머니께 용서를 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느 광고 카피라이터가 생명보험 광고를 위해 쓴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물 아홉 -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 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 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을 숨김없이 표현한 글입니다.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번 가신 뒤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버이 잃고 서러워하는 송강 정철 선생의 시 아니었습니까?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이를 서러워하노라.」
내 아버지 내 어머니 홍시 좋아했는데
잘 익은 홍시 손바닥에 들고 달려가
이것 어머니 드세요,
아버지 드세요, 드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반길 이가 없으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박인노의 조홍 시입니다.
효자 집안에서 효자가 나고,
불효자 집안에서는 불효자가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시에 자녀가 부모의 행동을 닮고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이가 점점 많아지자,
손이 부들부들 떨리게 되면서 음식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미안해서 밥그릇을 들고서
어떻게든 밥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손에 힘이 없다보니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밥그릇을 떨어뜨려서 자주 그릇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자,
며느리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안 깨지는 그릇이 없나 둘러보다가
주방 옆에 놓여있는 나무로 만든 고양이 밥그릇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며느리는 나무로 된 고양이 밥그릇에
시아버지 식사를 떠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그릇이 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시장에 다녀오는데
마당에서 자기 아들이 앉아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지금 너 무엇하고 있는 거니?”
그러자 아들이 대답을 합니다.
“응, 나무 그릇을 만들려고...”
아버지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무 그릇을 만들어서 무엇 하려고?”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이다음에 늙으면 밤 담아 드리려구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를 하면
우리도 늙어서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 대로 거두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고
늙어서 효도 받기 위해서라도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핑계'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한 번 되새겨 볼만한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젊은 아들내외가 부모님께 효도하려는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역시 부모님은
자식 사랑과 생각으로 가슴에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 영아가 시어머니께 봉투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밀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가 오갑니다.
"이게 뭐냐?"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내일이 토요일이니 한 이틀 온천장에 가서 쉬고 돌아오세요."
"쉬다니? 우리가 뭐가 고되게 살아간다고 쉰단 말이냐?"
" 저희가 석 달에 걸쳐서 조금씩 모아 마련한 거예요."
안 여사 부부는 다음 날 오후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이 일에 대하여 말을 합니다.
부인인 안 여사가 불쑥 말을 꺼냅니다.
"녀석 두 기왕 작정한 김에
온 식구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주선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 그러자 영감이 말을 합니다.
"여보, 그 녀석은 우리 둘만 보내고 싶었던 게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본 호텔은 대단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화려함은 극치에 달했습니다.
"당신은 저 속에 들어가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 --- 그럼 어디서 자야할까?"
노인 부부는 서로 생각하다가 안 여사가 서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며느리 영아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시아버지께서 병이 나셨다.
너희들 내외가 빨리 내려와야겠다.
나로선 속수무책이다."
"그래요?
서둘러야겠군요?"
"지체 없이 오거라."
아 들 내외가 내려온 건 오후 7시였습니다.
법썩 떠는 아이들을 안심시킨 뒤,
시내에 좀 다녀오겠다며 아들 내외를 남기고 노부부는 호텔을 나섰습니다.
서울 가는 버스에 다시 오른 안 여사는 말했습니다.
"내 평생에 오늘같이 즐거웠던 여행은 처음이었소."
그 남편이 늙은 아내의 손을 잡았을 때 늘 부스럭거리며 내외했던 안 여사는
이 날은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미소지으며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칠 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진돗개 누렁이는
눈먼 할머니의 길 안내가 되어 주었다.
젊은 시절 백내장에 걸려 치료받지 못해
두 눈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 나서며 자식처럼 곁을 지켜 준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감기에 걸린 할아버지가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식을 치른 할머니는
그 날부터 문밖출입을 못하고 드러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누렁이가 밥그릇을 물고 어느 집 마당에 나타났다.
누렁이는 그 동안 먹지 못했는지 몰라보게 야위었다.
마침 부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누렁이를 알아보고 밥과 국물을 담아 주었다.
누렁이는 감사하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밥그릇을 물고 재빨리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녀석은 매일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갔다.
한 집에 얻어먹기가 미안했는지
안면 있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하루 한 번씩은 꼭 밥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사람들은 누렁이가 밥을 먹지 못해 기진 하게 된 것이라며 측은한 마음으로 대해줬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도 누렁이를 돌보기에는 힘겨울 테니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들 수군거렸다.
혼자는 몸도 건사하기 힘든 장님 할머니가 돌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말이 나온 김에 할머니의 의견을 들어보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덩그러니 외따로 떨어져 있는 허름한 집 -
어린아이 키쯤 되어 보이는 낮은 담 너머로
툇마루에 나와 앉아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 정갈하던 할머니 머리가 많이 헝클어진 것으로 보아
몹시 불편한 것 같았다.
“할머...”
할머니를 부르려던 사람들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한참을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쳐다봤다.
눈 을 감은 채 기침을 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 누렁이가
누군가의 집에서 갖고 온 밥그릇을 입에 물고 다가가 곁에 놓은 뒤
할머니의 소맷자락을 물고 밥그릇에 갖다대고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수저도 없이 손으로 음식을 입에 넣었다.
누렁이는 그 곁에 발을 모으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절반쯤이나 먹었을까..
할머니는 남은 밥그릇을 누렁이에게 내어 주었다.
그제야 누렁이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앞 못 보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불쌍한 누렁이가 아니라,
할머니의 곁에서 보살펴 드리고 있는 누렁이였던 것이다.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위해
매일같이 밥을 구걸 해다 먹여 준 효자 누렁이 -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전남 순천의 효자 개 이야기
'어머니의 눈물'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 너머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 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 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하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 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 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 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때 박 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모가 나이가 많으면 산에 올라가서 파묻어 죽게 하는
고려장이라고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 정승도 나이든 노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고려장`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노모는 지게 위에서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렸습니다.
깊은 산 속에 도착한 박 정승이 큰절을 올리자 노모가 말했습니다.
"얘야,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라.
네가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어 길 표시를 해두었다"
박 정승은 그 사랑에 감격해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와 남모르게 봉양했다는 것입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고구려를 찾았습니다.
이 사신이 고구려왕에게 문제를 냈습니다.
"이 말은 크기와 생김새가 같다.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 보라"고 문제를 냈습니다.
조정은 매일 회의를 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박 정승이 이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면 누구나 안다.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 여물을 갖다 주어라.
먼저 먹는 놈은 새끼 말이다.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 놈이 어미다"
박 정승은 당나라 사신 앞에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박 정승은 임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려장`을 철폐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나이 많은 어머니가 가르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고려장은 사라졌습니다.
박 정승은 나이 많은 어머니가 인생을 오래 사는 것으로 얻어진 지혜를 귀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잘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쇼핑백은 대부분 종이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겠습니까?
이것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습니다.
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1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효심이 지극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가방에 물건을 가득 담아 상점에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가방에 물건을 담아 갖다 주고,
다시 가방을 가져다 다시 물건을 담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종이쪽지로 가방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밑바닥이 네모난 `종이 쇼핑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물건을 넣어 배달해 주고 다시 안가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노고를 어떻게 하면 덜어 드릴까 생각하다가 만든 것이
종이쇼핑백이었습니다.
편리하고 가벼운 종이 쇼핑백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소년의 가족은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때가 1887년,
이 소년의 이름은 찰스 스틸웰입니다.
그는 `종이 쇼핑백`의 발명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어머니를 돕겠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만든 상품 하나가
소년의 가정에 풍요를 안겨준 것입니다.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그런 행동을 하면 잘 신중하게 모시면
오늘 성경은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하늘로부터 `장수`와 `풍요`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효자가 장수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닙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가르치는 효도 십계명>
1계명 : 신앙을 갖게 해드리는 것.
2계명 :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
3계명 : 표정을 밝게 하는 것.
4계명 :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
5계명 : 용돈을 넉넉히 드리는 것.
6계명 : 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리는 것.
7계명 :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드리는 것.
8계명 : 일거리를 찾아드리는 것.
9계명 :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리는 것.
10계명 : 등을 자주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깎아드리는 것이다.
비정한 세상 / 노모 방치 아사[국민일보 6월 1일]
지난 1월 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지영동에서
아들[45세]과 며느리[42세]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손녀3명 등과 함께 살고 있던 노인이
굶어 죽은 체 발견됐습니다.
노인은 부검 결과 사망 당시 체중이 20kg 이었고 위와 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노모에게 9일간 음식물을 주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구속,
아들은 불구속했습니다.
5 월31일 의정부지원 제1형사부는
‘노모가 굶어 죽고 사체가 심하게 부패 할 때 까지 사망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해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하지 않았다’고
아들에게 징역 3년을 선고 구속하고
‘며느리가 몸에 손을 대는 것 마저 노모가 싫어할 정도로 갈등이 심해 간병이 어려웠던 점
3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는 점등을 고려해
구속했던 며느리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석방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비극입니다.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제 자식이 뭐라 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책망하면 듣기 싫어 성을 내며
시끄러운 자식 소리 듣기 좋아하면서도
부모님이 두말하면 잔소리라 듣기 싫어하네
자식들의 오줌똥은 손으로서 주무르며
부모님의 가래침은 비위 상해 밥 못 먹고
과자봉지 사 가지고 자식 손에 들려주며
부모 위해 고기 한 근 사 올 줄을 모른다네
소가 아파 누우며는 가축병원 찾아가도
늙은 부모 병들며는 예사롭게 생각하네
열 자식을 기른 부모 하나같이 길렀건만
열 자식이 한 부모를 어이하여 못 섬기나
반만년의 오랜 역사 깊이 상고하여 보면
명문기적 번영함은 효자후손 분명하고
불효자식 끝이 없이 무궁무진 고생이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지성으로 효도하세
옛 날에 효성이 지극했던 백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종아리를 때리며 교훈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종아리를 맞는데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기력이 쇠해진 것입니다.
백유는 아버지의 기력이 쇠해진 것을 서러워하며
그 매를 들고서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눈물, 그 희생 아무리 생각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효성이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백유읍장
뉴 욕 타임스」지에 전임 법관의 글이 실리었는데
<자기는 17년 동안 법관의 일을 보면서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범죄의 소굴과 같은 뉴욕에서
중국인 2세 소년들이
범죄 혐의로 자기에게 불려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 자기 동료 법관들에게 물어 보아도
이구동성으로 뉴욕에는 중국인 2세 소년이 1만 명 가량 살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라도 강도, 마약, 교통 위반, 폭행, 소매치기 등으로
소환되어 온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욕 주재 중국인 총영사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중국인들은 가정에서 효도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살든지 간에 중국인들은 자녀들에게
자기 부모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의 자녀들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부모가 과연 이 일을 좋아할까,
창피하게 여길까를 생각하므로 범죄를 자제한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는 가정과 사회일수록
윤리적으로 튼튼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도자는 사람을 쓸 때는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한가,
부모에게 효도하는가를 본 후에 결정한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어느 날인가,
윗사람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날 다 노인이 되어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을 나이별로 상품과 비교한 말입니다.
10대는 신상품이라면 20대는 명품입니다.
30대는 정품으로 인기 상품이라면
40대는 기획 상품으로 10%할인합니다.
그러나 50대부터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50 대는 반액세일로 50% 할인을 하고
60대는 창고 방출로 90% 할인을 합니다.
70대는 분리수거의 신세라면 80대는 폐기처분의 신세요,
마침내 90대는 소각 처리될 신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젊은 분들도 세월이 흐르면
노인이 되어 분리수거나 폐기처분,
혹은 소각처리 신세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줄 알고
노 부모님이나 노인들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상대로
"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체의 60퍼센트가"속상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6.2퍼센트가"그저 극진히 대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떤 대답에도"존경"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효가 실종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대접하는 자는 있어도
효도하는 자는 없는 어두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한 국의 가정에는 고질적인 고부갈등이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은 여성 가운데
4.1%가 고부갈등에 대한 상담을 의뢰했습니다.
이외에도 시댁과의 갈등(2.6%),
생활양식 차이(0.9%),
혼수시비(0.2%),
마마보이 (0.1%) 등을 합치면
8%에 이르는 내용들이
어머니로 대표되는 시댁과 연관돼 있습니다.
이렇게 고부간에는 갈등이 많습니다.
고부간에는 서로 지킬 것을 지켜야 합니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고부간의 갈등 문제입니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조그마한 일에도 섭섭해하고
사이가 벌어지며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이 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입니다.
그러면‘고부간의 갈등’해결방안은 없습니까?
원 우회의 대표 김장호씨는 고부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상호이해와 양보가 우선돼야 하며
고부간의 갈등원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의견 차이와,
세대 차가 가장 크며
함께 살 경우 살림의 주도권을 잡는 문제에서도 갈등이 증폭된다고 합니다.
그는“고부간의 갈등으로 남편이나 아들의 입지가 날로 좁아지고 있다”며“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시모나 며느리 모두 지켜야 할 수칙들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원우회의 김장호 대표가 소개하는
멋진 시어머니와 며느리 되기 수칙입니다.(국민일보 2001.05.21)
1) 멋진 시어머니 수칙 10조
① 며느리의 생일을 기억할 것
②결혼 때 혼수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지 말 것
③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 것
④시모는 가정 밖에서 자기만의 일을 갖도록 할 것
⑤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지 말 것
⑥젊은 세대를 이해할 것
⑦며느리의 일거일동을 캐묻지 말 것
⑧칭찬을 아끼지 말 것
⑨며느리의 위신을 세워줄 것
⑩남에게 며느리 험담을 하지 말 것
2) 멋진 며느리 수칙 10조
① 자존심을 버릴 것
②늦잠은 금물이고 생활은 항상 검소하게 할 것
③대답과 인사는 상냥하게 할 것
④좋든 싫든 즉석에서 화를 내거나 말대꾸 말참견 말 것
⑤솔직한 의견 제시로 세대 차를 좁힐 것
⑥시부모 생신 어버이날을 뜻깊게 지낼 것
⑦외출과 쇼핑을 함께 하면서 의식적으로 정을 붙일 것
⑧시부모 앞에서 남편에게 투정하거나 부부싸움을 하지 말 것
⑨친정식구에게 시댁험담을 삼가고 시어머니의 좋은 점을 칭찬할 것
⑩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같이 생각할 것
일 본 신화에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애인을 사귀어 사랑이 깊어 가는데
애인이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의사한테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사람의 간을 먹으면 살겠다”고 그럽니다.
이 청년이 그 말을 듣고 밤중에 잠자는 자기 어머니를 죽여서
간을 빼 가지고 애인을 살리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의 혼이 뒤따라오면서
“아들아 천천히 가거라 간 떨어지면 못쓴다.
잘 들고 가서 네 애인을 먹여야 되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가거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곧 뭘 얘기하는 것이냐?
자식은 부모를 배신하고 죽일지라도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은 자신의 회사가 잘되는 비결을
사원 채용하는 방법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화려한 경력, 학력, 인물도 좋지만
최후에 사장 면접에서 특별한 사항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녀 된 도리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이력서는 볼 것도 없이 채용했습니다.
부모님을 잘 모시는 사람은 대개 성실하고,
인간 관계가 화목하고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주방으로 가다가
식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보았습니다.
그 종이는 아들이 쓴 메모였습니다.
“이번 주 아빠 구두 닦아드린 것
- 5000원, 엄마 심부름 세 번 한 것
- 3000원,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것
- 2000원. 모두 합계 만원”
그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메모지 밑에 아래와 같이 답장을 쓰고
아들이 청구한 만원을 올려놓았습니다.
“너를 위해 몇 달 동안 뱃속에 데리고 다닌 것 ?- 무료,
그 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돈 -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새워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간호한 것 - 무료,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 무료.”
아들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메모지 위에 올려있는 만원을
기쁜 마음으로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적어놓은 글을 보는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이 쓴 청구서 밑에 다시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을 되돌려 드림.
엄마 사랑해.”라고 썼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산 것도 하나님과 부모님과 많은 사람들의 은혜 때문입니다.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94년 말에는 박한상이라는 못된 아들이
한약 상을 경영하는 부모님을 불로 태워 죽인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경악케 만든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 96년 9월17일 전북 익산에서는
84세의 시어머니를 38세의 며느리 이정숙씨가 휘발유를 뿌린 후,
태워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99년 5월24일에는 24세의 대학생 이은석이라는 아들이 술을 마신 후,
옆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머리를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시신을 줄과 톱으로 10여 토막을 낸 뒤,
신문지와 비닐로 싸서
서울 명동, 서울대공원, 동작대교 주변 등지에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99년 9월에는 재산문제로 다투다가
아버지를 마구 때려 갈비뼈 골절과 장파 열로 숨지게 한 42세의 주모씨가
10개월만에 범행이 밝혀져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지난 금요일 신문에 보니까 20대 딸이 술 취한 47세의 아버지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와 같이 요즈음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관계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래서 고부간의 갈등을 비유한 재미난 유머가 시중에 나돌고 있습니다.
어느 종가 집에 첫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초장부터 며느리의 기를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불러다 놓고 타일렀습니다.
“새아가,
나는 긴 말 하는 거 싫어한다.
손가락을 이렇게 까딱하면 오라는 신호니까 그리 알고 잽싸게 오너라.”
그러자 새 며느리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 어머니. 저도 긴말하는 거 싫어해요.
제가 이렇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못 간다는 신호니 그리 아세요.”
이래서 요즈음은 시집살이란 말보다
며느리 살이란 말이 더 실감나는 세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곧잘 어기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타이르곤 했지만,
아들은 번번이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 우리 집안의 규칙을 다시 한 번만 더 어긴다면,
너를 다락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며칠 후, 아들은 또다시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어디 간다고 알리지도 않고 밤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아들이 염려되어 밤새 애 태우며 찾아 헤맵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 놓은 저녁 밥상은 차갑게 식어만 가는데
한밤중이 되어서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약속대로 아들을 추운 다락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씨는 춥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다락방에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엎치락 뒤치락거리던 중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엽니다.
"여보, 아이가 너무 춥겠어요"
이 말에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다락방에서 데려올 수는 없지 않소"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합니다.
"저 애를 만일 다락방에서 데려오면 계속 우리말을 듣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다락방은 너무 춥고 어두워 무서울 텐데...."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더니 창문이 덜컹거렸습니다.
그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춥고 어둡더라도 집안의 규칙을 어기면서 아이를 다락방에서 데려올 수는 없소.
그러나 저 애는 지금 추운 다락방에서 무척 고생스러울 거요"
아버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보니 아들은 추운 다락방 딱딱한 방바닥에 쭈그리고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베개도 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이 들어있는 아들을 내려다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아들 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살며시 안고는 팔베개를 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도 다락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꼬옥 품어 안은 아버지와 철없이 잠든 아들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맞은편에 살며시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뺨에 따뜻한 어머니의 볼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한참 잠들었던 아들은 어머니의 따뜻한 볼이 뺨에 와 닿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꼬옥 품에 안고 있었고
부모님의 따뜻한 체온으로 자신의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철없는 아이지만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아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상(以上)은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에 실려있는 이야기인데
우리에게 부모님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樹慾靜而 風不止 子慾養而 親不待
(수욕정이하나 풍부지하고 자욕양이하나 친부대라-)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 하나 바람이 잠잠해 주지 아니하며,
자식이 어버이를 공양하고 싶어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또한 송강 정철이 강원도 감찰사로 있을 때 훈민가 16개중에서
첫 번째 효도에 대한 시를 쓸 때 이렇게 썼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부모가 돌아가셔서 지나간 후면 애 닮다 한들 어이하리.
평생에 두 번 다시 고쳐서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민희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직장을 퇴직하여 어렵게 모은 조그만 돈으로 음식점을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 그만 두고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를 가서 부부가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입니다.
자신감과 웃음을 잃어 가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학용품 제때 사주지 못하고,
아이들 먹고 싶어하는 것 마음대로 먹일 수 없다는 자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우유 배달 하다가
오토바이와 부딪쳐 팔이 골절되어 깁스까지 하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여 저녁때가 되자
허술한 판잣집 지붕에 구멍이 생겨 빗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새기 시작하더니
구멍이 점점 커져서 제법 크게 떨어지게 되자
자녀들이 불안해하여 잘못하면 밤을 샐 지경입니다.
깁스한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궁금하고 불안하여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엄마와 딸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아도 아버지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밤은 깊고 비가 쏟아지는 자기 집 지붕 위에 웬 사람이
찢어진 우산을 받쳐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깨진 기왓장 위에서 지붕 비 새는 것을
찢어진 우산으로 막고 있는 사람은 바로
민희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와 민희는
어둠 속에서 지붕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끝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난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방안에 비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든 아버지의 찢어진 우산은
아버지의 아픈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찢어진 우산은 자기 몸은 아파도
가족을 기키겠다는 눈물의 희생이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는 아버지와 희생하는 어머니가 기초석이 되시고
기둥이 되시고 울타리가 되셔서 우리의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가정은 풍랑 이는 험한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등대와 같습니다.
가정은 아픈 사람이 가면 싸매 주고
치료해서 깨끗하게 낫게 해 주는 병원과 같습니다.
가정은 더운 여름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시원한 바람 부는 언덕과 같습니다.
등대의 등대지기가 부모님이고,
병원의 치료의사가 부모님이고,
언덕에서 쉼을 주는 바람이 부모님입니다.
초등학생 하나와 유치원생 하나가 뛰어다니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버릇없게 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야단을 치라고 했더니,
아이의 기를 왜 꺾느냐며 반문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년이 아이들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입니다.
엄마가 화를 내며 왜 때리느냐며 했습니다.
청년이 하는 말이 “나도 우리 엄마가 기 꺽지 않고
자유롭게 키워서 자유롭게 행동한 거요.”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홉 살 먹은 아들에게 엄마가 질문했습니다.
“너는 나중에 커서도 엄마랑 살 거지?”,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랑 같이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여자 친구가 생긴 모양입니다.
“엄마, 잠깐만 기다려 봐.”
한 10분쯤 후 왔는데, 전화를 하고 온 모양입니다.
“엄마, 영이가 같이 못 살겠대.”
서울에서 만두집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는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두가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두 분의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수요일 3시가 되면
두 분이 함께 만두집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들어선다든가,
식탁에 마주앉아 서로 바라보는 표정 등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할아버지가 먼저 오는 편이었지만,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만두를 시킨 뒤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드실 생각도 않고,
마치 이별을 앞둔 연인들처럼 안타까운 눈빛으로 서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다시 눈이 마주치면,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라,
아마 옛날에 서로 사랑하던 사이로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1주일에 한번씩 만나
젊은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따라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먹이곤 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나 만두 값을 치룬 할아버지는
그 날만큼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만두집을 나섰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안고 가는 할아버지.
그 두 노인의 뒷모습이 왠지 가슴 아프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발길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수요일도,
또 그 다음 수요일에도 두 노인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어느 수요일 정각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두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몹시 초췌해 보였고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부부를 향해 할아버지가 답례로 보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 보였습니다.
만두집 여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만두집 부부는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랐습니다.
그리고 마치 독백하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연을 이야기할 때는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첫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어엿한 부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아들의 집에서,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서
각각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들끼리 싸운 결과였습니다.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자기 혼자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아들들이 공평하게 한 분씩을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3시만 되면 마치 견우직녀처럼
그 만두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나폴레옹 황제가 어느 성주의 만찬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 성주가 나폴레옹을 가장 화려하고 크고 좋은 의자에 앉게 하지 않고
세 번째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불쾌해도 참았는데 참모들이 성주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 황제께 이게 무슨 대접이오?”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황제께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저희 집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가장 높으신 어른이니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나폴레옹 황제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홀어머니가 분가해서 사는 아들 내외를 찾았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을 열고 어머니를 맞은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귀하게만 키운 아들 손에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 지금 뭐 하느라 고무장갑 끼고 있니?”
“예, 빨래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니, 네 아내는 뭘 하고 있기에 네가 빨래하니?”
“감기가 걸려 누워 있어요”
“쯧쯧, 잘한다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니까 겨우 고무장갑 끼고 빨래나 하고”
어머니는 화가 나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되어 온갖 고생해서 키운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애지중지하게 키워 명문대학 졸업시키고 좋은 직장 보냈더니
장가들어 아내에 매어 사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어머니가 시집간 딸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장모님을 맞는 사위 손에 역시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사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네, 청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애는 어디 가고 자네가 집안 청소를 다하나?”
“몸이 불편해서 방에 누워 있어요”
“아, 거참 대견하네,
자네가 일등 사윌세!”
그 뒤로 시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며느리가 자식 망쳤다고 흉을 보면서,
사위를 향해서는 너그럽고 넉넉한 사위를 얻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답니다.
과거 프랑스에는 모두 69명의 군주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백성들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군주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생 루이, 루이 7세,
그리고 앙리 4세, 세 사람입니다.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그들에겐 백성의 아픔을 이해하고
상처를 싸매 줄 줄 아는 매력이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군주들과 달리
그들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감쌀 줄 아는
특별한 인간미를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와의 정 깊은 대화였습니다.
다른 군주들은 어머니와 떨어져 유모의 손에 의해 키워졌지만,
유독 그 세 군주만은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품이 이렇게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들어가는 학교는
어머니라고 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따라서,
어머니는 최초의 스승이며 최고의 스승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우리들의 교과서였고,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들의 교실이었으며,
어머니의 말씀은 비타민이고,
어머니의 손길은 우리들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가슴은 모든 인간의 고향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 어떤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넓고 깊고 높습니다.
예컨대,
새들은 힘써 만든 둥지일지라도 1년 뒤엔 철수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기한이 없습니다.
새들은 불구가 된 새끼는 둥지에서 떨어뜨리지만,
어머니는 부족한 아이일수록 더 사랑합니다.
어미 새가 하는 일은 먹고 지키는 두 가지 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고 교사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재봉사가 되고 운전 기사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때 미는 자가 되고 동무가 되어주십니다.
이밖에도 어머니의 역할은 수없이 많습니다.
새들의 어미는 시한부로 새끼를 돌보고 책임을 벗으나,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세상에는 진통제가 많지만
어머니의 입맞춤만큼 효력이 있는 진통제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가슴속에 쓰는 어머니의 편지는
세상의 어떤 거친 바람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영문학자요 시인 피천득 선생님이 이런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30대 젊은 시절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머니의 인상과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에,
그는 이런 소원을 노래합니다.
"내 인생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너는 알고 있는가, 네가 기뻐할 때 어머니도 기쁘고,
네가 슬플 때 어머니도 슬프고,
너의 성공이 곧 어머니의 성공이며,
너의 부끄러움이 어머니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반면에 어머니는 겉으로 울고,
아버지는 속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또, 어머니의 과잉 사랑을 견제하는 역할을 아버지가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배의 돛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키와 같습니다.
키는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으나,
배의 방향을 인도하는 막중한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 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란 '내가 훌륭한 아버지 구실을 하고 있나?' 라고
날마다 자책하는 분이십니다.
아버지란 결혼식 같은 때에 눈물을 별로 안보이지만,
목구멍 속으로 우는 분이십니다.
아들딸이 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고,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내다봅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의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착잡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들딸이 '나를 닮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날을 상징하는 꽃은 사랑과 존경의 뜻을 품고 있는 카네이션이지만,
아버지날을 상징하는 꽃은 민들레입니다.
민들레는 짓밟힐수록 다시 일어나 더 힘차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뭉개 없앨 만한 힘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풍파와 역경도 감수하는 순교자적 사랑입니다.
어느 사형수의 딸
어느 사형수가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쥐고 울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를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이냐"
"아버지...아버지...
" 마지막 면회시간이 다 되어 간수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애처로워 간수들의 가슴을 에어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하여 교수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녀는 그 날 저녁에 종지기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새벽종을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종을 치시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아요."
"할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네"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슬피 울었다.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만약 내가 종을 안치면 나까지도 살아남을 수 가 없단다" 하면서
할아버지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이 밝아왔다.
종지기 노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종 탑 밑으로 갔다.
그리고 줄을 힘껏 당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힘차게 줄을 당겨보아도 종이 울리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잡아당겨도 여전히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급히 뛰어왔다.
" 노인장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종을 울리지 않나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하고 독촉을 했다.
그러나 종지기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글쎄 아무리 줄을 당겨도 종이 안 울립니다."
"뭐요? 종이 안 울린다니?
그럴리가 있나요?"
집행관은 자기가 직접 줄을 힘껏 당겨보았다.
그러나 종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다.
"노인장! 어서 빨리 종 탑 위로 올라가 봅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급히 종 탑 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의 추에는 가엾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소녀 하나가 매달려
자기 몸이 종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 날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목숨을 대신해서 죽은
이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그 사형수 형벌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어린 딸을 부둥켜안고
슬피 우는 그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은
보는 사람 모두를 함께 울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문 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 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 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 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높은 사랑, 하도 귀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 받고 미워하고
특별히 고상한 사랑을 받고 배신한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죠.
어렸을 때 제 어머니가 제게 일러준 이야기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그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이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답니다.
이 아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어요.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새처럼 전화도 안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종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 애인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얘 아무개야!"하였더니
그 애인이 남자에게 묻기를 "저 여자 누구야?"
이 남자, 이 아들 하는 말이
"어, 그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있던 식모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말씀 하시더만요.
"사랑을 배신하지 마라."
사랑에 대한 배신은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 아들이 살아서 뭘 하겠어요.
성경은 이런 죄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옛 날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 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니다.
개성에 거우동을 하게 됐는데
온 방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 내가 나라 임금의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 도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 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그리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 십리 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 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 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이렇게 해 드렸어요.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
그 때에 그 어 머니를 업고있던 그 사람 좀 불러들 여라."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나서 "
너는 효자다."
그래서 금 백 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또 불러서 상을 "금 백 냥을 주라"
그랬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님이여,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효도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습니다."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 "
흉내내었더라도 좋은 거니 줘라"
결국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 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가정들이 불화 하게 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며느리를 얻으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특히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갈등은 전체 가정들이 모두 겪고 있는 아픔입니다.
이 문제는 서양의 가정들도 모두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 며느리의 문제는 갈등을 내포한 채 삶이 시작됩니다.
새 가족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렐만한 기쁨의 일인데도
양가정의 독특한 문화가 극복도지 못하고
시부모라는 고질적인 문화가 극복되지 못해서
자녀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이 갈등이 문제는 시작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를 이렇게 비교해서
그 원인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 듣고 자신의 가정환경과
그리고 지금 처해진 여러분의 처지에서 한번 깊이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시어머니가 미울 경우입니다.
이런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눈에 밉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시어머니들은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빼 놓고 아들과 소곤소곤 상의할 때,
세 며느리 중 한 며느리만 편애하고 사랑할 때,
당신의 구 세대적 사고방식만을 막무가내로 고집할 때,
용돈을 주고 보약을 해 드리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을 때,
며느리가 시집살이 때문에 살이 빠졌는데도 아들에게만 얼굴에 살이 빠졌다고 할 때,
아들집에 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는 시어머니,
이런 경우가 며느리들이 볼 때 시어머니가 싫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 관계를 악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들입니다.
다음은 시어머니 눈에 며느리가 미울 때입니다.
이런 때 며느리가 밉습니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빈손으로 왔을 때,
늙은 시어미를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릴 때,
시어머니의 생일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때,
직장 다니는 며느리가 돈 줌 번다고 시어미가 하는 살림을 간섭할 때,
휴가 갈 때 자기들만 갈 때,
직장 다니는 며느리 밥 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그냥 놔둘 때,
며느리가 아들인 남편을 종 부려먹듯 할 때,
이때 시어머니의 눈에서 열 불이 난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세 번째는 시어머니가 좋아지는 경우입니다.
며느리들에게도 시어머니가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게 “피곤하지 열심히 해라”하고 격려할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앉아서 남편들 흉볼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장난칠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 일을 함께 상의해 줄 때,
며느리 생일날 조금이라도 용돈을 줄 때,
아이 키우느라고 수고한다 하면서 우유 값을 주실 때 등입니다.
이런 경우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고마움과 친근감을 느끼며
마음으로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며느리가 예쁘게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예쁘게 보입니다.
시어머니를 어른으로 인정해 줄 때,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그 짐을 받아줄 때,
시어미를 엄마같이 대해 줄 때,
때때로 “어머님 고맙습니다”하고 카드를 보내줄 때,
시어머니에게 검소한 며느리,
둘이 잘 살아가는 며느리 등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부모나 자식이나 한 가지를 꼭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식의 입장입니다.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이 맺어준 특수한 관계라는 것과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이 결국 내가 복을 받고 살아가는 가장 큰 비결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점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
런데 오늘 세상의 젊은 부부들은 이 점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만 살면 행복한 줄 알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살면 결국 내가 늙었을 때는 내 아이들도 나에게 그렇게 합니다.
심은 그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옛 날에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늙은 어머니를 밥만 축낸다고 산 속에 버리려고 지게에 지고 갔습니다.
산 속에 어머니를 버리고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가
“할머니 어디다 두고 왔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산에 버리고 왔다”고 하니까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지게 잘 보관하세요”
“왜 그러느냐” “
잘 보관해야 나도 그 지게로
이 다음 아버지 늙으면 갔다 버릴 것 아닙니까”하고 말하더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무 소리 못하고 다시 가서 어머니를 모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은 강조합니다. “
네 부모를 즐겁게 하고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래야 내가 또 자식으로부터 그런 즐거움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입장입니다.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도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시어머니들에게는 이 생각이 부족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며느리가 아니고 딸입니다.
내 자식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며느리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식구들끼리 이야기하다가도 며느리가 들어오면 말을 그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여러 동서들 앞에서 한 며느리 흉을 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쓸데없는 고집을 피웁니다.
며느리가 해 주는 일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아들하고만 속닥속닥합니다.
그리고 집안 일을 상의하는데 며느리를 소외시킵니다.
시부모가 그렇게 처신하면
오늘 며느리들은 모두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런 모습을 그냥 소화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가 한번 두 번 쌓이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버립니다.
모든 문제는 상대적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들은 부모에게 즐겁게 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관계의 조화는 피차가 노력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피차가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무엇이 더 소중한 일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 “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되고 행복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면 내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기쁘시게 할까?” 하는
이 두 가지 마음 중에 어느 쪽이 더 무겁습니까?
아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자식들의 사랑과 효심은 점점 식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고려장 하듯이 비록 산 속에는 갖다 버리지 않으나,
제주도나 해외에 여행 갔다가 부모를 버리고 오거나
양로원이나 기도원에 갖다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늙은이는 서럽다네”
늙으면 섧다네.
눈 어두워 그렇지.
돋보기 안경 쓰고
확대경 손에 드나
그래도 안보여 두 번, 세 번 살핀다네.
늙으면 섧다네.
귀먹어 그렇지.
남의 소리 반타작.
묻기 뭣해 지나고,
재빠른 전화 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다네.
늙으면 섧다네.
무시당해 그렇지.
수에도 치지 않는 젊은이의 풍조로다.
무언가 저들끼리만 쑥덕쑥덕 하누나.
늙으면 섧다네.
짝 잃으니 그렇지.
백년해로 약속 어겨 어느 한 쪽 먼저 가니
남은 쪽 외로움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늙으면 섧다네.
병들어 그렇지.
내 몸은 내 몸이나 내 맘대로 못하니
옆에서 돌보지 않으니 꼼짝못해 답답하지.”
한 아버지가 큰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혔는데
형벌은 그 아버지를 서서히 굶겨 죽이는 벌입니다.
장년 아버지인 범인에게 어린 아이가 먹는 것만큼 먹을 것을 줍니다.
아버지는 영양실조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
그의 딸이 면회를 옵니다.
물론 밖으로부터 먹을 것을 줄 수 없습니다.
배고파 견디기 어려운 아버지를 보자
이 딸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몸에 젖 밖에는 없으니깐
아버지에게 면회 올 때마다 아버지로 하여금 젖을 빨게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굶어 죽기 직전에
가끔씩 면회 오는 딸의 젖을 먹고
간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년을 계속하는 동안
이 소문이 왕에게 알려지자
그 딸의 효심에 감복하여
범인인 그 아버지를 특별 사면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감동 깊은 이야기를 들은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려서 러시아의 박물관에 진열케 되었다
68세 전신마비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101세의 박옥랑(朴玉郞.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는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를 거울삼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朴 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 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뒤 딸은 불구가 된 것입니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업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60년을 살아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朴할머니는 딸을 언니 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으나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 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습니다.
" 딸의 상태가 악화된 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습니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습니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습니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습니다.
'얄미운 행복/
어느 곳에 숨었는지/
저 산 넘어 숨었을까/
저 바다 건너 숨었을까//
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
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딸이 몇 년 전에 지은 '얄미운 행복'이란 시의 일부입니다.
어렵게 한 마디씩 뱉어내는 시구를 어머니가 공책에 받아 적은 것입니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朴 할머니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습니다.
박할머니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52만원씩 나오는 돈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합니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朴 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
"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
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교육학자인 쿠주마 박사가 젊은 엄마로서
직접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계로 내어보았는데,
한 살,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 한 일은 32회의 기저귀를 갈았고,
71회의 숟가락을 아기의 입으로 날랐으며,
화장실 변기에서 노는 아이들을 13회 밖으로 끌어냈고,
옷에 음식물을 흘리거나 똥을 싸서 18회 옷을 갈아 입혔으며,
그네를 밀어준 것만도 623회였으며,
세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데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은 1만 8천시간이었다. 고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눈을 다쳤는데
결국 실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아들의 성격이 삐뚤어져가고 거칠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얘야, 오늘 내가 안과에 다녀왔는데
사형수들이 죽을 때 기증한 눈으로 이식수술을 하면
네 눈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수술할까?”하고 물었습니다.
안과에 와보니 과장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식 수술 후에 퇴원할 무렵이 되니
사람의 모습이 기둥같이 눈사람 같이 보이더니
온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한쪽 눈에 붕대가 감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왜 붕대를 감으셨습니까?”
“응, 너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몇 일 동안 잠을 못 자고 간호를 했더니 눈병이 났구나”
예감이 이상한 이 아들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붕대를 풀어보니
글쎄 어머니의 오른쪽 눈을 빼서 아들 눈에 이식 시켜주고
어머니는 대신 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한 고등학생에게 물었답니다.
“3강 5륜이 무엇이냐?”
그 학생의 대답이 3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이고,
5륜은 올림픽의 5륜이 상징하는 다섯 대륙을 말한다고 했답니다.
촌년 10만원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 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제촉 해 도착했으나,
이 날 따라 아들만큼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 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 부자 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 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삿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아들네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 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감 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 판사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 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 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게다”며
수화기를 내 팽기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 소문이 날꺼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 며칠을 무척 힘든 인내심이 요구 됐다.
그런 어느 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 들어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 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라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 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데 간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 딸의 오줌 소리는 은 조롱 금 조롱하고,
며느리 오줌 소리는 쐐한다.
- 딸의 오줌 소리나 며느리의 오줌 소리나 다 같지만,
상대방이 예쁘고 미운 데 따라서는 듣는 사람의 감정이 달라진다는 뜻.
주자십회(朱子十悔)
열 가지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뉘우쳐도 소용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유비무환(有比無患),
망양보뢰(亡羊補牢) 등과 통한다.
1.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이미 늦으니,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풍수지탄(風樹之歎)과 같다.
2.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가까이 있을 때 가족에게 잘해야지,
멀어진 뒤에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3.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젊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젊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과 같은 말이다.
4.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
편안할 때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뜻이다.
5.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
쓰기는 쉽고 모으기는 어려우니,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6.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뜻이다.
7.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
도둑을 맞고 난 뒤에는
고쳐도 소용없다는 속담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와 같은 말이다.
8.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
여색을 밝히다 건강을 잃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9.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니
항상 조심하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10.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
손님이 왔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접하지 않다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아들아!
결혼 할 때 부모 모신다는 여자 택하지 말아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말아라
네 효도는 너 잘 사는 걸로 족 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거든
너 속상하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어미도 사람인데 알고 기분이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 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아들아!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하나 서운 할게 없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해서
네 엄마만큼은 아니겠지
아들아!
혹시 엄마가 가난하고 약 해지거든
조금은 보태 주거라
널 위해 평생을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겠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느냐?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아비 생일을 좀 챙겨주면 안 되겠니?
네 생일 한 번 잊은 적 없는데
그 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 주면 안 되겠니?
생일 상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아련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기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무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나에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를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 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 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이건 네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지 않으니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아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의 행복 을 위해 바쳐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아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아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의 어미 아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 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아비가
너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라는 걸 너희도 좀 이해 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고...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니
너희도 늙은 어미 아비의 행복이 뭔지를 알아다오
손자 기르며 손자의 얼굴 정말 보고 싶단다.
늙으면 어린애 된다는 말
그래서 손자가 보고 싶단다.
잊지 말고 귀여운 손자를 자주 보여다오
나를 나쁜 어미로 몰지 말아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내 자식을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 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사업하다 부도가 나
수년동안 매우 비좁은 단칸방에 살던 한 가족이
방이 3개가 있는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누나에게 방 하나,
아들에게 방 하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쓰는 안방...
이 사를 해서 얼마동안 신나게 사는데
열 살 난 이 집 초등학생 아들이
어느 날부터 얼굴이 침울해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소년은 답했다.
“우리 엄마가 불쌍해요.
왜 불쌍하냐?
집이 넓어져서 내 방도 생기고 누나도 방이 생겼는데
불쌍한 엄마만 아빠랑 방을 같이 써요.”
성종 임금께서 심야에 민정 시찰차 변장을 하고 .
시내에 나왔는데
어둠 캄캄한 밤중에 멀리서 어느 민가에 불빛이 보였습니다.
임금님은 저 집에 무슨 사연이 있는가 하고
그 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찾았습니다.
집 주인은 나와서 " 뉘시요" 하고 물으니 .
임금님은 지나가는 길손인데
잠시 쉬었다가 가면 어떻습니까 하고 여쭈니
주인은 그러세요 하고 안으로 안내해서 들어가 보니.
늙은 노인은 진수성찬의 상을 받아놓고 .
아들은 노래를 부르고 .
며느리는 춤을 너울너울 추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사연을 물었습니다.
집주인은 "
사실은 오늘이 아버지 생일입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부모님 후한 대접할 길이 없어서
며느리가 머리를 깎아 팔아 아버님 생일 축하 상을 차려 드리고
생일 맞은 아버님 마음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아들은 노래를 부르고
며느리는 춤을 춰서
아버님에게 기쁨의 선물을 드렸습니다.
임금은 그 주인의 효심에 감격하여 하시는 말씀.
"주인장 다음 0 월 0 일에 과거 시험이 있으니 한번 응시해 보시요."
"주인은 제가 아는 것이 있어야지요.
" 임금은 그래도 요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라고 권하고 돌아갔습니다.
집 주인은 그 날자가 돌아와. 응시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날 과거의 시제는 "
노인은 밥상을 받고 수심에 빠져 있고.
아들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고.
며느리는 수건을 쓰고 춤을 너울너울 추웠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였습니다 "
이 사연을 응시생 들이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집 주인만 답을 써넣어서
과거에 급제 벼슬을 얻고
하루아침에 부귀의 영광을 누렸다고 합니다.
[시부모님에 대한 사랑 장]
1 너희가 시부모에게 애교 있는 말로 안부전화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가리가 될 것이며,
2 너희가 세상 지식과 지혜로 교회의 집사가 됐을지라도
시부모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될 것이며,
3 너희가 네게 있는 재물로 시부모에게 용돈을 드려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시부모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참고
5 시부모가 심한 말을 할지라도 온유하며
6 남편이 시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려도 투기하지 말 것이며
7 시부모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며
8 시부모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9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올지라도 참으며
10 가사가 힘겨울지라도 끝까지 견디는 것이니라.
11 시부모의 지난날의 공로를 인정해 드리고 존경을 할 것이며
12 시집간 동기간과도 늘 화목하게 지내야 하며
13 사치와 낭비를 하지 말 것이며
14 식단을 짤 때에도 시부모의 식성을 고려하여 작성하도록 힘 쓸 것이며
15 시부모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때에는 당사자의 의견을
참작하여 구입하도록 해야 하느니라.
16 외출을 할 때에는 필히 행선지를 밝히고 나가도록 유의할 것이며
17 자기 잘못이 있을 때는 솔직히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18 밖에 나가 시댁 흉을 보지 말 것이며
19 노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때도 기쁜 마음으로 드리도록 할 것이며
20 항상 세대 차이를 좁히도록 노력하고 시부모의 인격을 존중해야 하느니라.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가르치는 효도 십계명>
1계명 : 신앙을 갖게 해드리는 것.
2계명 :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
3계명 : 표정을 밝게 하는 것.
4계명 :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
5계명 : 용돈을 넉넉히 드리는 것.
6계명 : 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리는 것.
7계명 :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드리는 것.
8계명 : 일거리를 찾아드리는 것.
9계명 :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리는 것.
10계명 : 등을 자주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깎아드리는 것이다.
영 국의 유명한 사무엘 존슨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여름철에 복잡한 장터에서 홀로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해도 인사를 받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립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다섯 시간이 되도록
그냥 서 있는 것입니다.
지켜보던 제자들이 "선생님, 도대체 왜 그렇게 서 있습니까?" 하니 대답을 합니다.
"사실은 50년 전 우리 아버지가 바로 이 자리에서 헌 책장사를 하셨다네.
그런데 어느 날 나더러 '내가 몸이 불편하니
네가 하루만 이 자리에서 일해다오.
약속하신 분이 찾아올 것이니
그 분에게 이 책을 드려라.' 했는데
나는 '헌책 장사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왜 그 일을 해요' 하면서 거절을 했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면서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장터에 나와 그 날 수고하셨네.
이 일이 무리가 되었던지
그 날 이후로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그래서 50년이 지난 지금
그 아들이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부탁을 거역했던 때를 생각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갑니다.
혼자 보초를 서다가 달을 쳐다보면
누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지 아세요?
흔히들 애인인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어느 훈련병을 둔 어머니가 아들의 사열식에 참석했습니다.
늠름하게 발맞추어 행진하는 아들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제기랄, 발이 맞는 놈은 내 아들 하나 뿐이야.
나머지는 하나도 발을 못 맞추더구먼.”
자기 아들이 발을 못 맞춘 줄 모르고........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만 보이는가 봅니다.
친척 중에 아기를 못 낳은 분이 계셨습니다.
아기 낳은 것을 포기하고 남자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입양한 아이를 친자식처럼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
안타깝게도 머리가 둔한 아이였습니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신문사에서 신문을 포장하는 단순노동을 했습니다.
머리가 둔하니까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충직하게 그 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입양한 후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 딸 남매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 남매는 공부를 잘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유수한 기업에 입사하여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입양한 자식은 늘 부모님 곁에서 같이 삽니다.
부모님의 안색이 좋지 않으면,
몸이 어디 편찮으시냐고 여쭙기도 하고,
생신 때나, 명절 때면 소고기 한 근이라도 사들고 들어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반면 친자식은 외국에 나가 자기 살기에 바빠
명절 때 전화 한 통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친척 분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입양한 자식을 보면서 “
네가 참 효자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효 실천 운동.
1. 신앙생활을 하시도록 하자.
1) 갈 곳이 생김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2) 기쁨과 즐거움과 활력이 생긴다.
3) 정신적, 육체적 생활이 건강하여 진다.
4) 마음에 안정과 평안이 온다.
5) 내세관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살게 된다.
2.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자.
1)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므로 표정을 보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2) 웃음은 기쁨을 주며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
3) 웃는 표정이 다정다감하며 가장 아름답다.
4) 웃음은 건강을 주며 생명을 연장한다.
5) 웃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만 주신 고귀한 특권이다.
3.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용돈을 정기적으로 드리자.
1) 경제권을 내 놓은 후 허전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2) 쓸 곳이 많다. (언제나 베풀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신다.)
3) 액수를 정해 새 돈으로 쓰시기 좋게 구분하여 드린다.
4) 날짜를 정하여 봉투에 넣어 자식과 같이 정성껏 드리자.
5) 부모님은 받는 기쁨보다 나눔의 기쁨을 더 원하신다.
4.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리자.
1) 예뻐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다.
2) 옷을 계절과 유행에 맞추어 색상을 밝은 색으로 해 드리자.
3) 시력에 맞는 안경을 가볍고 예쁜 것으로 맞추어 드리자.
4) 머리를 시대감각에 맞추어 자주 손보아 드리자.
5) 신발은 가볍고 신기 편하고 멋진 것으로 계절과 옷에 맞추어 해 드리자.
5.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리자.
1) 말씀을 할 기회가 생긴다.
2) 옛 일을 대화함으로 생이 즐거워진다.
3)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 정신이 맑아진다.
4) 모든 일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고가 생긴다.
5) 외로움이 없어지며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긴다.
일 본 신화에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애인을 사귀어 사랑이 깊어 가는데 애인이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의사한테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사람의 간을 먹으면 살겠다”고 그럽니다.
이 청년이 그 말을 듣고 밤중에 잠자는 자기 어머니를 죽여서 간을 빼 가지고
애인을 살리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의 혼이 뒤따라오면서 “
아들아 천천히 가거라 간 떨어지면 못쓴다.
잘 들고 가서 네 애인을 먹여야 되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가거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곧 뭘 얘기하는 것이냐?
자식은 부모를 배신하고 죽일지라도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한 때 제주도 관광이 어려울 때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제주도 관광시켜준다고 데리고 가서는
부모를 버리고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주도에 혼자 남겨진 부모님은 할 수 없이 양로원에 들어갑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얘기입니다.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집이 어디예요?”
“나 몰라 기억이 안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버릴지라도
부모는 자녀의 위신을 생각해서 끝까지 모른다고 부정합니다.
그때 기자가 한가지를 깨닫습니다. “
어머니 마음 다르고 버리는 자식의 마음 다르구나!”
우리나라 동요 시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것 같아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 더 넓은 것 같아
고훈 목사님의 시(詩)입니다.
키 작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머리로 모든 짐이고 다니셨기에.
몸 야윈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먹을 만한 것은 자식에게 다 주고
입맛 없다 하시며 허리띠를 졸라 매셨기에.
병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우리 아플 때 주님이 아픔 내려주고
내 건강 아이에게 주십시오 기도하셨기에.
정신이 없으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식구들 몫 다 챙기시느라
자신의 몫을 잃고 살으셨기에.
서둘러 이 세상 떠나
하늘로 돌아가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평생 짐 지고 사셨기에
행여 우리에게 짐이 되실까봐.
어머니
이 사랑의 빚을 깨닫지도 못하게
사랑만 주고 가셨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뭘 외우고 있나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제5계명을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
“「공격하라」와 「공경하라」는 어떻게 달라요?”
아이가 묻자 아빠는 대답을 했습니다.
“공경은 아빠 말씀을 잘 듣고 사랑하는 거고,
공격은 아빠한테 덤비고 말씀을 안 듣는 것이지.”
그러자 대뜸 아이가 말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
온 나라에 소문이 퍼질 정도로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먼 곳에서 사는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자네 아들의 효성이 지극하다고 멀리까지 소문이 들리던데 정말인가?”
“허허, 정말이고말고. 내 아들은 정말 효자일세.”
그 아버지가 아주 행복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효자인 증거를 한 번 보여주게.”
“그러지. 보여주지.”
“아들아.”“
“예, 아버님.”
“저 외양간의 소를 지붕 위로 몰고 가라.”
“예, 아버님.”
대답을 했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소는 사닥다리를 타지도 못하니 말입니다.
아들이 한참 고민을 하더니,
쌓아놓은 짚단을 풀어서 마당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됐네. 알았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아, 됐다. 그만 해라.”라고 하니,
아들이 아무 말 없이 짚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볼 때 얼마나 흐뭇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의
수형 생활에 대한 참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 너머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 다 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 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 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하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 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 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 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거스림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부모를 순종함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존재의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