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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제9기 성지순례 안내 봉사자 강의 요지문(2006년 2월 13일 월요일)
제1강 : 순교자들의 영성(靈性)과 성지 안내 봉사자의 자세 - 역할
최창화 몬시뇰 / 중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제9기 성지 안내 봉사자 양성교육 요지문
<제1강>
순교자들의 영성(靈性)과 성지 안내 봉사자의 자세-역할
최창화(토마스 데 아퀴노) 몬시뇰 / 위원장
Ⅰ.서언
한국 교회의 자랑이요 문화 유산이며, 가장 소중한 신앙 전통의 으뜸은 순교자들의 모범과 그 정신이다.
순교는 하느님 은총에서 비롯된 완전히 자유로운 행위이며,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이고, 복음적 증거로서 헌신과 신뢰를 통해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는 최상의 영신적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순교는 역설적으로 육신의 죽음에 앞서서 영원한 생명 즉 부활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뜻을 따르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생명의 문화,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증거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순교자들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어 추앙받고 있으며, 그 표양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표양을 본받고 따르며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받아 일상의 삶과 믿음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구현해야만 한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삶이 묻어나는 성지를 안내하는 봉사자들에게는 순교자들의 생애를 이해하고 묵상하며 실천적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봉사자로 태어나는 것이며, 봉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순교자들은 어떻게 믿음살이를 살아왔는지 알아보기에 앞서서 순교의 의미와 순교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한국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영성 靈性]을 고찰해 보며, 특별히 성지 순례자들을 안내하는 봉사자들은 어떠한 목적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Ⅱ.순교의 의미와 순교자는 누구인가?
1.순교(殉敎)의 의미
순교(殉敎, martyrium)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는 일로써, 엄격히 말해서 다음 세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첫째,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둘째,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셋째,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학적으로는 신앙을 위해서 칼날 아래 목숨을 바치는 혈세(血洗, 피 흘림) 즉 “적색(赤色) 순교”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교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교가 아니더라도 순교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이자 성서학자이며 주석가인 오리제네스(Origenes)는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들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구세주의 뒤를 따르는 행위를 ‘양심의 순교’라고 불렀고,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행위를 ‘백색(白色) 순교’라고 불렀으며, 또한 고통을 극복하고 속죄하는 행위를 ‘녹색(綠色) 순교’ 등으로 불렀으나 진정한 의미의 순교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바침으로써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인 동시에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며,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그 분을 증거하는 행위인 것이다.
가톨릭에서 순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순교가 다른 삶의 실재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 순교를 통한 죽음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순교자의 생명을 일치시킨다는 진리 때문이다.
그래서 순교자와 그리스도의 유사점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순교자는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빼앗는 박해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확신을 지닌 체 죽음을 맞이한다.
둘째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한다. 그래서 교회는 초기시대 이래 순교자를 공경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 속에 순교의 의미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하고 되새긴다.
이처럼 순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께 자기를 봉헌하는 행위이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운명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때부터 순교를 혈세(血洗)라 하였다. 순교는 최상의 은혜이며 사랑의 최고 증명일 뿐 아니라 성세성사의 상징을 실재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며 함께 부활하기 때문이다.(로마 6, 3-11)
한편 가톨릭 교회는 2세기 중엽부터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들을 증거자(confessores)라 부르고 피로써 증언을 낸 자들을 증인(martyres)이라 불러 양자를 구별하였는데 이는 죽음 자체가 지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다.
2.순교자(殉敎者 martyr)는 누구인가?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으로서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증인’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만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스테파노와 바오로 사도에게 적용되었고, 묵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증인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 밖에 묵시록에는 예언자의 신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내는데 위험한 시대에 증언을 한 증인들이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를 처음으로 증인이라 부른 것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예수를 직접 본 사람들과 교제가 있었던 폴리카르포(69?~155?) 주교의 순교전(165년경)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순교자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곧 하느님의 아들의 그것 임을 피흘려 증거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순교자란 피흘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의 실재성을 입증하는 자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교회내 순교자들의 특수한 지위를 확인하게 되었다.
순교자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초인적 용기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때문에 가능하다. 순교는 모든 죄를 없애주는 행위이므로 제2의 세례이며 순교자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순교자는 죽은 후 바로 천국의 영광을 누린다.
신앙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순교자는 악의 세력을 쳐 이긴 승리를 증거하고 다시는 고통이 없는 부활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완덕(完德)에 이른 자이며 이들로 인하여 역사상 그리스도 교인의 숫자가 놀랍게도 증가하였으며, 테르툴리아노는 “순교자는 그리스도 교인의 씨앗이다” 라고 말하였다.
Ⅲ.한국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영성 靈性]의 고찰
1784년 한국 땅에 전래된 천주교는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을 때까지 100여 년간 길고도 혹독한 박해를 받았고, 1만 여 명의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복음의 씨앗이 싹트기 전인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100여 년간 크고 작은 박해는 순교자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신앙의 모범이 되었으며, 마침내 103위 순교 성인의 탄생이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과연 한국 교회 순교자들은 어떻게 믿음살이를 하였기에 순교가 가능했으며, 우리 교회의 신앙 유산이 순교신심으로 자리매김 되었는가를 전 대구 가톨릭대학교 김길수 교수의 논고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1.한국 순교자들의 모습
김길수 교수는 한국 교회 순교자들을 그리스도교적 신앙인형으로서 그 분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모범적인 모습을 찾아보았다.
1)인간의 존엄성과 평등함을 실제로 살았다.
신분 계층사회에서 수직적 권위주의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전통에 젖어 살던 조선후기 사회에서 신분의 귀천을 넘어 인간존엄성을 체험하하며 평등한 대우를 실현하는 것은 당시 사회적 인식으로는 일종의 사회체제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으로 보여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천국임을 느끼게 했다. (순교자 황일광의 생애! 내게는 두 개의 하늘나라가 있소)
2)생명의 존귀함과 유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실현
효녀 심청전은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효녀 심청의 효성에 초점을 맞추어 실상 비록 그것이 지극한 효성의 발로일지라도 인신매매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본다.
실제로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생활여건에서 남존여비 의식과 심각한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 속에서 여아의 기아가 다반사로 있던 때, 천주교는 영해회(嬰孩會)의 운영과 생명의 주재자이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생명의 존엄함을 크게 계몽해 나갔다.
이와 함께 버려진 시신의 매장 같은 사랑의 실천은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큰 일깨움에 기여하였다. (영해회 운영과 자선사업의 실천)
3)효와 충을 승화시킨 천주 공경의 영성을 가졌다.
교회의 은총박사라고 알려진 아오스딩 성인께서는 일찍이 자연의 본성을 역행하는 은총은 없다고 하셨다. 한국인이 자연이성으로 아름답게 일구어 온 충과 효는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데 위 순교자들은 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충과 효의 정신을 승화시켜 하느님 아버지를 대군대부로 모시며 섬기었다. 지극한 효성과 충성으로 가장 큰 임금이요 가장 으뜸이 되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인간의 본성의 승화로 만유 위에 천주님을 공경하는 올바른 신심을 가졌다. (대군대부의 신앙과 무군무부의 박해 논리)
4)죽음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서도 불타는 순교에의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 치명함으로써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하느님 나라로 가고자 했다.
순교를 위한 죽음은 곧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로 알고 있었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생명에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알며 열망하고 기뻐하였다. (순교자들의 형장에서 보여준 태도와 심문 중의 응답에서 볼 수 있는 생사관)
5)순교자들은 영적 희열을 체험하는 삶을 살았다.
순교자들은 한결같이 신락(神樂)이 도도했다고 한다. 죽음의 형장에서 끊임없이 예수님과 마리아를 부르고, 인내의 한계를 넘는 형벌과 심문, 죽음의 고통 속에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는 영적 기쁨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체험하는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
순교자들에게서는 인간적 영웅성보다는 주님의 현존을 굳게 믿었음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Ⅳ.성지 순례자들을 안내하는 봉사자의 자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순교자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뜻을 따르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생명의 문화,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증거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어 추앙받고 있으며, 그 표양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표양을 본받고 따르며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받아 일상의 삶과 믿음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구현해야만 한다.
더욱이 순례자들에게 순교자들의 믿음살이가 묻어나는 성지를 안내하는 봉사자들은 신앙에 대한 제2, 제3의 증거자로 거듭 태어나야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성지 안내 봉사자들의 역할과 자세는 지난해인 2005년 11월 21일(월)~23일(수)까지 의정부 한마음 청소년 수련원에서 “성지순례, 하느님께서 오늘 아시아에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던 제2차 성지순례 사목 아시아 대회에서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님의 “성지순례, 하느님께서 사랑과 생명을 주시는 곳, 인간 생명이 수호되고 가정이 성화되는 곳”이라는 주제 강연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성지순례 사목 아시아 대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포한 교황 권고「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999년 11월 6일)와 관련하여 특별히 아시아 전역을 통하여 수백 개의 성모 성지와 순교 성지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단지 가톨릭 신자들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모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다종교, 다문화 안에서의 복음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써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가 마련한 국제회의로 2년마다 한 차례씩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며 열린다.
장봉훈 주교님은 “아시아의 하느님 백성들이 성지순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체험하고, 그로 인해 인간생명이 수호되고 가정의 소중한 가치가 보존되기를 희망한다.”고 전제하면서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데 있다. 순례자들이 사랑과 생명을 주는 성지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순례의 여정에서 강렬하게 체험하게 해야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다음 세 가지 신학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가, 구원론적 관점 : 구원의 기원에 대한 기념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하느님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였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구원을 계획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셨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의해 주도된 심오한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고, 사도들의 활동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유일하고 결정적인 과거의 구원사건과 관련하여 볼 때 순례지는 하느님께 속해있는 구원의 기원에 대한 기념이며 기억이다. 순례지는 역사 속에 드러난 하느님의 활동을 기념하는 장소요, 하느님의 구원의 결정적인 역할을 회상하는 장소이다. 또한 순례지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하느님의 주도적 사랑을 생생하게 기념하고 상기시키는 자리이다.
“순례지는 과거의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효과적으로 기념해 주는 가시적 표징으로서, 모든 세대에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선포하며”,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몬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곳이다.
따라서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구원론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눈으로 순례지를 바라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순례지에서는 과거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 그 순례지와 어떻게 특별한 관계가 있었는지가 순례자들에게 증언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주도적인 사랑과 놀라운 은총으로 구원의 삶과 교회적 친교를 드러내는 새로운 생명과 구원이 그 순례지에 특별히 주어졌다는 사실이 증언됨으로써, 순례자들로 하여금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성지를 찾아 온 순례자들을 감사와 찬미, 사랑과 나눔의 삶으로 인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순례지 방문은 깊은 신앙 체험을 하며 자선의 풍부한 열매를 맺도록 순례자들을 이끌어주는 특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 교회론적 관점 : 하느님 현존의 장소
구약과 신약은 한 목소리로 순례지가 과거의 구원에 대한 기념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하느님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임을 증언하고 있다. 순례지는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며 계약이 늘 새롭게 실현되는 장소이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현존의 장소인 순례지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 가운데 쉬지 않고 활동하신다.
순례지는 탁월한 하느님 말씀의 장소이다. 성지순례 사목자(봉사자)는 이점을 유념하여 순례지가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특별한 장소가 되게 해야 한다. 순례지가 일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장소로서 순례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신앙을 깊게 하며 하느님 은총을 체험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야 한다.
특히 순례지와 관련된 특별한 메시지를 통하여 순례자들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며 관상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순례지는 특별한 성사적 만남의 장소이다. 이러한 성사적 만남은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로 이루어진다. 이 두 성사는 되풀이 되는 하나의 ‘의식’이 아니라 구원사건이며,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성사의 은총은 순례자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변화되며 신비와 친교인 교회에 일치하고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성지순례 사목자(봉사자)들은 성실한 고백의 자리가 되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한다. 또한 성찬례가 모든 순례지 체험의 중심이고 핵심이며, 교회의 영적인 전 재산을 내포하고 있는 은총의 사건임을 명심하고, 성찬례 거행에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한다. 이리하여 순례자들이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다시 태어남으로써 친교이며 신비인 교회를 새롭게 체험하도록 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다. 종말론적 관점 :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언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순례지는 그리스도 신앙의 종말론적 차원인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예언이다. 순례지는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미래에 실현되고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 곧 우리의 본향에 대한 예언이다.
인간의 손으로 이룩한 순례지는 하느님과 어린양이 바로 그 도성의 성전이며(묵시 21, 22)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뵈올 인생과 역사의 목적지인 천상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묵시 21, 4)
그러므로 순례지는 희망에 대한 예언적 징표요 기쁨으로 부르는 초대이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은(로마 5, 5 참조)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한다. 순례지는 이 땅을 뒤덮고 있는 죽음과 고통,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케 한다.
본 고향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그리스도인의 순례 여정을 지탱시켜 주는 버팀목이 된다. 또한 순례지는 약속된 땅을 순례하는 우리의 교회에 회개와 쇄신을 촉구한다.
순례지 사목(봉사자)은 희망 안에서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며 믿음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사상인 하느님 나라의 최고성을 증언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말적 차원, 곧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증언하는 가운데 신자들의 윤리적, 정치적 소명이 꽃피게 해야 한다.
역사 안에서 인간 계획에 대한 복음적이고 비판적인 양심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증진시키고, 윤리적 가치 특히 생명과 인간 존엄성, 정의와 평화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Ⅴ.결론
한국 교회의 순례지는 대부분 순교자와 연관되어 있는 순교성지이다. 스스로 찾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의 신앙은 한국 교회의 귀중한 신앙의 유산이며 맥(脈)이다.
한국 교회는, 특히 성지순례 사목자(봉사자)들은 이 순교 신앙을 오늘 이 시대에 어떻게 지키고 이어갈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 특히 정의와 평화,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꽃피게 하기 위해 이 시대의 순교의 의미와 삶을 모색해야 한다.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데 있다. 순례자들이 사랑과 생명을 주는 성지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아버지의 집을 향한 순례의 여정에서 강렬하게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지순례 사목(봉사자)은 세 가지 신학적 차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