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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악천재도 흔치않다.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8세에 줄리아드 음대 예비입학 자격이 주어졌으며 10대에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이미 10세 때 링컨 센터와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 무대에 섰으며 세계 최고의 재즈뮤지션과의 협연이 줄을 이었다. 뉴욕 대형 매니저먼트사의 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고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해 마이클 잭슨 방한 콘서트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연주했다. 1998년엔 10대들이 선정한 문화예술인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대 초반 유진박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악기인 전자 바이올린으로 클래식은 물론, 재즈, 록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공연으로 벼락스타가 됐다.
<데뷔 초기인 20대 유진박>
하지만 이런 추락은 더 흔치않다. 황금 같은 20대를 보내다 점차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났다. 30대에는 곱창집이나 유흥업소, 동네시장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악사'로 전락하고 허름한 모텔방에서 생활하면서 볶음밥이나 짜장면 등으로 허기를 채웠다. 때론 매니저에게 구타당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44)이야기다. 그는 '바이올린 천재'라고 불리었지만 심한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고 있는 정신적으로 병든 연주가였다. 이런 병은 예술가들에겐 상대적으로 흔한 병이었다. 구스타프 말러는 26년간이나 우울증을 앓으며 프로이트에게 정신 치료를 받았고 매독에 걸린 슈베르트는 사망하기 전까지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우울증에 시달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재즈 아티스트 찰스 밍거스 역시 우울증 병력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겐 발병률이 5%도 채되지 않지만 예술가들은 38%에 달한다는 연구결과(존스흡킨스대학 케이 재미슨교수)가 있다.
하지만 불같이 화를 잘냈고 완벽주의에 괴팍했지만 성공한 예술가들에겐 조력자가 있었다. 가족이든, 스승이든, 제자든, 아니면 후원자든 예술가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하지만 음악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충동적이고 순진무구한 유진박 주변엔 '마귀'들만 우글거렸다. 재미교포라 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고 국내 실정도 몰랐기 때문이다. 검은 속을 감추고 친절하게 다가오면 어느새 그를 의지했다. 마귀들에게 이런 유진박은 앵벌이로 써먹기 좋은 훌륭한 먹이 감이었다.
과거 소속사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던 유진박(44)이 바뀐 매니저에게서 또 착취를 당했다는 보도는 별로 놀랍지 않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는 유진박의 현 매니저 김모(59)씨를 사기와 업무상 배임, 횡령 등 혐의로 지난달 23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40대 유진박>
이번에 사기혐의고 고발된 김씨는 2년 전 방영됐던 '인간시대'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김씨는 유진박을 국내에서 데뷔시켰으나 한동안 각자 다른 길을 걷다가 15년 만에 상처받은 유진박을 만나 매니저로 활동해왔다. 당시 인간시대에서 나온 유진박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젊은 시절 반짝이던 눈빛은 생기를 잃었고 과식으로 몸이 불어났으며 머리는 성글어 야구모자를 쓰고 다녔고 연주 실력은 예전만 못했다. 유진박이 사소한 일로 흥분하고 어깃장을 놓을 때마다 김씨가 살갑게 다독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씨는 "항상 유진이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악어의 눈물'처럼 거짓이 담겨있는 말이다. 센터는 고발장에서 매니저 김씨가 유진박 명의로 약 1억800만원어치 사채를 몰래 빌려 쓰고, 출연료 5억600만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유진박의 부동산을 낮은 가격에 팔아치워 시세 대비 차액만큼 손해를 입힌 혐의도 있다고 센터는 고발장에 적시했다. 고발장 내용이 사살이라면 그를 동생처럼 돌봐주는 척하면서 그를 발가벗겨 거지로 만든 것이다.
이 사건을 처음 제기했던 MBC는 당초 유진박 관련 인간시대같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고 고발프로그램으로 제작방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소년시절 유진박은 뉴욕타임스 문화면에 실릴만큼 천재성이 농축된 보기드믄 뮤지션이었다. 그가 매니지먼트사라는 안정된 시스템에 들어가 예술혼을 불태우거나 또는 조력자를 잘 만났으면 바이올리니스트로 더욱 큰 성공가도를 달렸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중년의 쇠락은 막았을지 모른다. 그는 초년성공이후 거의 20년간 착취와 앵벌이, 사기를 당하고 상처받으면서 인생을 소비해왔다. 아마 그도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깨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과연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재기는 가능할까. 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조력자를 찾지 못하는 한 뮤지션으로 뿐만 아니라 자연인 유진박 으로서도 평탄할 것 같지 않다.
천재뮤지션의 근황을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봐야 하는 것이 씁쓸하다.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