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줄이고 맛은 높혀야...
아마 재활용반찬의 원조는 단무지가 아닐까 싶다. 이물질이 묻은 것은 물에 씻으면 그만이고, 씻겨지지 않는 것은 반으로 잘라서 사용한다. 가지런하지 않은 단무지는 십중팔구 그렇다고 보면 된다. 단무지는 주로 분식집이나 중국집에서 내 놓는다.
지금으로부터 17년도 더 된 시절의 일이다. 맛객은 작가의 꿈을 키우면서 낮에는 중국집에서 알바를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상왕십리 경찰병원 옆에 있는 000의 사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식재를 아꼈다.
단무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접시에다 몇개씩만 담으라고 직접 시범도 자주 보였다. 짠돌이 사장님답게 단무지 재활용은 필수였다. 덕분에 단무지통에는 질서정연하게 놓인 단무지 위로 흐트러진 것이 같이 있었다.
사장이 단무지를 담을 땐 항상 흐트러진 것부터였다. 난 아니었다. 언제나 새 단무지부터 담았다. 물기를 닦은 접시에다 반듯한 단무지를 놓고 살짝 누르면, 사선으로 누워진 단무지가 무척 싱그러워 보였다.
내가 주인의 눈치를 봐가면서까지 새 단무지부터 내 놓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자신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손님도 맛있게 먹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그 믿음은 적중했다. 내가 내놓는 단무지는 다시 남겨서 돌아오는 비율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사장이 내 놓는 단무지는 반대였다. 그러니 다시 재활용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 재탕은 재탕을 부른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식당 밥 먹기가 두렵다는 반응들이다. 앞으로는 절대 식당밥 안 먹겠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이해한다. 그동안 내가 먹은 음식들이 재탕이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할테니까. 그렇다고 과민반응만이 능사는 아니다. 현대인의 식생활은 이미 외식으로 바뀌었고, 특히 직장 일을 하면서 식당 밥을 외면하고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은가.
개선책을 찾아야한다. 혹자는 일본처럼 반찬마다 모두 돈을 받자고 한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에서 보자면 “너 한번 망해봐라” 라는 말이나 다를 바 하나 없다.
맛객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님이 반찬을 남기지 않으면 된다. 농담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반찬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양을 줄이고 맛은 높혀야 한다. 지금부터 그 방법을 제시해본다.
■ 원가상승으로 인한 가격상승만 능사일까?
일년 새 한국식당의 메뉴판은 걸레가 되었다. 음식값 올리는 게 유행이 되었고 메뉴판마다 가격을 수정한 자국일색이다. 원가부탐으로 인해 올렸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꼭 가격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가격대신 음식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원가가 오른 만큼 양이나 가지수를 줄이는 것이다.
◁ 반찬 가지수가 많으면 아무리 적게 담는다고 하더라도 남겨지기 마련이다
목포의 한 낙지 전문점은 가격표에 싯가가 없다. 가격은 못박아놓고 시세가 떨어지면 더 주고 비싸면 덜 주고 하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싯가보다 훨씬 합리적인 방식이다.
한국식단은 너무 풍족한게 문제이다. 더군다나 과잉영향으로인한 비만과 성인병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음식의 양을 줄이는 걸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맛객은 지난 2007년 8월에 이미 ‘싸고 양 많은 집, 꼭 좋은 식당일까?’ 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한 바 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제 양 많은 집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집은 "혹시 재탕음식 내놓는 집은 아닐까?" 의심해볼 일이다. 식당은 무엇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어쩌다가 불신의 훈장을 달게 되었을까? 씁쓸한 현실이다.
■ 즉석음식을 추구하자
맛객의 경험상 식당밥은 12시 이전에 가야 가장 맛있다. 만든지 별로 안된 반찬들에는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반찬들을 먹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훈훈해짐을 느낀다. 맛도 맛이지만 여기에는 무언의 신뢰가 있어 더욱 맛깔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반찬만큼은 절대 재탕이 아니라는 믿음. 식당들은 이런 믿음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 국밥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파를 썰고 마늘을 칼등으로 다지기 시작한다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찬을 조금씩 즉석에서 만들어 내놓는 일이다.
일손이 바쁜데 그때그때 반찬 만들시간이 어딨어? 라고 항변한다면 식당일을 때려 치우길 권한다.
그 정도의 열의와 정성도 없이 장사를 하는 업주에게 보여줄 곳이 있다.
전주 남문시장 안에 있는 조그만 콩나물국밥집이다. 이집의 할머니는 국밥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커다란 도마에서 파와 고추를 썰고 칼등으로 마늘을 다진 후에 밥을 만다. 미리 썰어두고 마늘은 기계로 갈아오면 편할텐데 왜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 편식이 재탕음식을 만든다
식탁에는 만인이 좋아하는 반찬이 있기 마련이다. 또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반찬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반찬은 금세 동이 나고 만다. 아니 추가해서 먹기 위해 더욱 그 반찬만 집중공략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외친다.
“아줌마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누가 인정 많은 한국인 아니랄까봐 추가주문시에는 처음보다 더 많이 가져온다. 이제 그 반찬만으로도 식사는 해결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다른 반찬은 저분질 한번 가지 않는 것도 있다. 고스란히 주방으로 들어가 재탕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 인식을 바꾸도록 하자. 한 반찬이 떨어졌으면 나머지 반찬에다 먹는 것이다. 건강도 챙기고 반찬도 남기지 않고, 나아가 음식물쓰레기 문제도 해결되고.
이상으로 재탕음식 해결책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업소의 양심이 아닐까. 그나저나 식당 앞에 이런 문구가 걸리지나 않을까 싶다.
"저희 업소는 재탕 음식을 절대 내놓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싸고 양 많은 집, 꼭 좋은 식당일까?
2008.8.31 맛객(블로그= 맛있는 인생) http://blog.daum.net/cartoonist
|
출처: 맛있는 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