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왕, 평화의 나라
이사야 11장 1-9절(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오늘 본문은 장차 올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평화의 나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 말엽 유다는 앗시리아의 팽창정책과 애굽과 블레셋의 동맹이라는 정세 속에서 고초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략과 전쟁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듯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평화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평화에 대한 꿈은 유구합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평화의 꿈이 아득히 오래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절망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 한 싹에 주목합니다.
이사야 11장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줄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잘려진 나무의 그루터기를 뜻합니다.
이새의 후손이 잘려진 나무와 같게 되는 것, 곧 다윗 왕조가 잘려서 무너지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다윗 왕조를 향해서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한 다윗 왕조는 잘려 나가고 어지러운 세상에 새로운 왕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실패와 몰락의 그루터기에서 한 싹, 새싹이 돋음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싹은 여리고 연한 싹입니다.
다윗 언약의 성취자로 오실 메시아, 연약하고 미천한 모습으로 오실 메시아입니다.
이렇게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다윗 왕조의 왕들과는 다릅니다.
메시아에게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부어집니다.
여호와의 영이 풍성하게 강림합니다.(2절).
이사야 11장 2절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메시아는 세상의 왕과는 다른 통치를 보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모든 판단의 중심으로 삼고 행함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3절).
이사야 11장 3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메시아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은 화려함에 가려진 비루함을 보지 못하게,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지만, 메시아는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4-5절).
이사야 11장 4-5절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공의로 허리띠를 삼고,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신 메시아께서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 때에 강자와 약자가 함께 있어도 누구 하나 해를 입거나 상함이 없는 평화의 나라가,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집니다(6-8절).
이사야 11장 6-8절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 곳곳에 빈틈없이, 작은 한 생명도 소외됨 없이, 모두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평화의 나라는 이루어집니다(9절).
이사야 11장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 앞에 나아오며 이스라엘의 흩어졌던 백성들도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완전한 평화, 샬롬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나라를 위해 오실 평화의 왕이시며, 이 땅에 오셔서 몸소 평화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2,000 여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레바논 백향목과 같이 우뚝 솟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루터기에 돋아난 연한 싹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평화를 맛보고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심으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세상,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을 어린 아이가 끄는 세상,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굴 앞에서 노는 세상, 이 세상이 평화의 나라입니다.
세상에는 이리, 표범, 사자, 곰, 독사에 속한 사람들이 있고,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아이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꿈꾸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꿈꾸신 세상이 이 모두가 함께 평화로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강하다고 하여 연약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힘과 권력으로 횡포를 부리지 않는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오실 평화의 왕, 언젠가는 이루어질 평화의 나라를 기대하고 있는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오려면 영의 눈으로 보고, 영의 귀로 듣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듣는 성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대하며 평화의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까?
평화의 세상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없다면 세상의 역사는 로마의 평화, 거짓 평화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평화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해서도 안되고, 잊혀져서도 안되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꿈입니다.
평화의 나라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꿈을 믿음의 삶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 절기에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세상이 익숙하고 편해서 내심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불편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에 길들어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반대로 나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 여겨 소외되고 위축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뒤집어 보고, 익숙했던 것들을 조금씩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릴 것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살아보면 진정한 평화의 나라를 꿈꾸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 거짓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를 그 자리로 인도할 것을 믿으며, 평화의 나라를 꿈꾸고 기대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는 마지막 때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우리 안에 허락하셨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이뤄지는 평화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평화의 기운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 심어짐을 통해 오늘 바로 여기에서 평화의 나라를 일궈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그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