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각국에서 강제적 봉쇄 또는 반강제적 권고로 시행되고 있는 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해 또는 장시간 유지되는 외출자제에 대한 갑갑함등 여러 이유로 요즘은 봉쇄를 풀어달라는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발병 이후 최근에 매일같이 빠지지 않고 접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관련 기사를 보다가 '수관기피(樹冠忌避)'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수관기피(樹冠忌避)가 영어로는 여러 표현으로 쓰이는 듯 하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Crown shyness'라 불리운다. 한자를 풀이하면 '나무의 관(가지 끝부분)이 꺼려서 피함' 정도가 되겠고 영어 역시 '관의 수줍음' 정도로 그 의미는 동일하여 즉, 나무가 성장하면서 나무 상호간에 아무리 근접하여도 서로의 수관을 침범하지 않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직관적으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무 숲에서 나무간에 서로 거리를 두어 자라나는 모습인데, 이 현상에 대해 인류가 이름 붙이기를 '기피', '수줍음' 등의 의미로 표현하였지만 이와 반대로 나무들의 사회에서 나무라는 구성원들이 마치 서로를 배려, 존중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나무는 날때부터 한자리에 뿌리를 내려 움직이지 않고 그자리에서 일생을 마치는 존재인데, 그 성장하는 과정까지도 서로간의 영역을 존중하며 상호배려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 현상을 인류가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에 아마존림에서 최초로 발견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에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나무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화학적 작용으로 인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현상이 모든 나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비슷한 수령대의 동일한 종의 나무 숲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마치 나무들 조차 질서를 알고 지켜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하나님의 창조물과 그 운영하심에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가끔 한적한 공원의 나무 밑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쉴때면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고, 또 고요한 가운데 비록 영적존재는 아니지만 바닥 곳곳의 블록사이로 삐져나온 이름모를 잡초와 그 주변을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들, 나무에 앉아 쉼없이 지저귀는 새들을 보며 너희들도 나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구나 하며 친근함을 느끼고 어떨때에는 누가 본다면 미친사람으로 오해하겠지만 너희도 하나님을 느끼니? 알고 있니? 말을 건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