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도(三士道)와 삼근기(三根氣)
티베트 불교에서는 불교를 세 단계로 구분하니..
선행을 통해 천상(=천국)에 태어나고자 하는 불자의 길을 하사도(下士道)라 했고,
윤회 세계를 벗어나 해탈을 목표로 하는 불자를 중사도(中士道)라 하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닫고 보살행을 행해 성불을 향하는 불자의 길을 상사도(上士道)라 했다고 봅니다.
여기서 초심은 상사도(上士道)의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이치를 근본교설에서 찾으니..
법과 존재에서.. 법이란 ‘존재처럼 보이나 존재가 아닌 것’이라고 정의(定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금강경>을 보면.. 4방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은 존재화가 되었을 때 가능하지요.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하고자 하는 말씀이.. 존재가 될 수 없는 법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임을 안다면..
왜 허공 예를 드는 지 이해가 되리라 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근거 역시 나나 네가 존재화 되기 전 상태를 보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삼사도라는 표현보다 삼근기라는 표현이 익숙한데..
둘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근기(根氣)라 하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능력처럼 보여 근기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삼사도 하면 우리가 어떻게 수행을 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즉 교리에 대한 이해와 수행을 해가면서..
처음에는 하사도에서 출발했다 하여도 중사도로, 더 나아가 상사도로 높여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 보면 근기라는 표현보다 사도(士道)라는 표현이 훨씬 불교적인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이명박씨의 종교적 편견은 타고난 근기처럼 보여 고치기가 쉽지 않겠으나,
그의 잘못된 행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바로 나아가도록 하는 자세는..
하사도로, 중사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득이 되는 보살행임을 잊지 맙시다. ^^()
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본문과 좀 빗겨간 이야기인데 허공에 대하여 잠시 말해봅니다. 1. 아비달마의 대표적 세친은 허공을 무위법에 넣었습니다.맞습니까? 함께 생각해봅니다.
도교의 무위(無爲)자연이란.. 인위적인 아닌 자연처럼 자연과 어울린 삶이니.. 요새 환경보존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도교의 무위와 불교의 무위는 같은 의미입니까?
부처님께서.. 유위(有爲)란 생주이멸(生住異滅)이요, 무위(無爲)란 불생,부주,불이,불멸이라 하셨는데.. <잡아함 239경 참고>.. 여기서 부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는 무위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
허공이 무위인지 어떤지는 여기서 드러날 것 같습니다.^^()...
상사도를 강조하다 보니.. 하사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사도도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세간의 입장에서 보면 상사도보다 하사도가 더욱 가까우며, 하사도 세계(=천국)가 동경되고 있음에 관심을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
2. 일체에 허공을 넣은 외도는 ajivika파로 알려진 막탈리고살라도 소개합니다.그는 지,수,화,풍,허공, 득수,고,락,생,사, 영혼등의 12요소설을 세워 세계와 인간을 설명합니다.
3.세친은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허공을 무위법에 포섭시켰습니다.허공=무위=열반으로 동일시 했습니다. 허공은 공간입니다.선정지 공무변처에서는 공간의 정체를 자각하여 버리게 됩니다.세친의 생각은 생각해볼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방편을 알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는 스승님에 말씀^^ 너무도 귀한 말씀 이라고 생각 합니다. 진리를 모르고 방편을 이야기를 한다면 방편에서 방편을 진리라고 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라고 하신말씀이 생각남납니다.
상당히 중요 한 과제라고 생각 합니다.물론 깨달으신 분들깨는 모두 방편 이겠지마는 저의 같이 학인으로써는 아주 중요 한 교제라고 생각 합니다
육입을 알아야 무위법을 설명 할수 있다 라는 말씀 을 들은 생각이 나내요.유위법은 밖에 보여 지는 놈이 있고 안에 보고 있는 놈이 있있다고 하는 너와 내가 둘인 것으로 이해 합니다.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의식하고의 색수상 행식의 오온의 실상을 안에 눈이 있어 보는 것이 아니고 밖에 꽃이 있어 보는 것이 아닌 눈과 꽃이 동시에 있어야 보여지게 된다는 것을유인의 법이라고 알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배우고 있는 꽃과 내가 둘이 아닌 눈과 꽃이 동시에 있어야 보여 지게 되는 유위 법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말씀 하시는 유위법은 보여지고 들려 지고 느껴지고 생각하고 의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무위법은 온우주 법계의 현상들이 무상하여 연기되 현상이라고 하는 우리의 실상을 나타내는 연기된 현상이 아닐까요?
그리고 위의 본문의 허공은 헤아릴수 있는가는 허공은 우리가 허공이라고 인식한 허공며 허공이 있어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 각합니다,허공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의식이 허공이라고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