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구미 비박, 강원도 화천 2008.6.28-29
호기심인지, 도전인지, 나이가 왠만큼 먹었으니 이젠 조용히,그리고 편하게 사는 길을 찾을 만도 한데 성격이 성격 탓인지 하루라도 뭔가 새로운 도전을 찾아야 힘이 생기고 사는 맛도 나니 나 자신도 내 성격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몇년전 암벽등반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나이 들만큼 들었는데 왜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을 스스로 자초하느냐고 주위로부터 만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워킹산행을 하면서 인수봉이나 선인봉 등의 깎아지른 암봉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바위의 야성이 마약처럼 나를 유혹하는 걸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암벽등반을 시작한 후 바위를 오를 때 맛보는 짜릿한 도전감, 정상을 오른 후 느끼는 성취감, 그리고 일반 위킹산행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멋진 암릉경관의 매력에 빠지다 보니 바위타는 걸 아직도 멈출 수가 없다. 암벽등반 자체에서 난 삶의 참뜻과 세상사는 법도 많이 배우는 것 같다. 그곳엔 도전의 보람과 함께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고 정상에 오른 후의 겸손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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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또 조금 색다른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소위 '비박(Bivouac)' 경험이다. 비박은 야영 즉 자연속에서의 노숙을 뜻한다. 숲속, 계곡, 또는 능선에서 침낭 하나로 몸을 덮고 별과 계곡물소리, 짐승소리를 벗삼아 밤을 보내는 여유,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는 것, 이것이 비박이다.
대학 다닐 때 캠핑경험은 여러번 있었지만 제대로 된 비박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악회에서 알게 된 동료로 부터 비박의 성격과 재미에 관한 얘기를 듣고 나도 비박 좀 해보고싶다고 했더니 이런 저런 요령을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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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텐트, 침낭, 침낭카버, 매트리스, 버너, 코펠 등 기본장비를 갖춰야 되고 배낭도 최소 80 L이상 되는 것을 구입해야 한다. 남자의 경우 통상 100 L 배낭을 사용한다. 비박은 혼자 다니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박전문모임에 가입하는 게 좋은 데 가입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산속이나 계곡에서 밤을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신분이 확실해야 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일반산악회와는 달리 서로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정도의 사회적 수준도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통상은 기존회원의 추천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이미 침낭이나 버너, 코펠 등 기본적인 등산장비는 갖추고 있기 때문에 텐트 등 몇가지만 추가로 구입하면 되었다.
내 첫번째 비박지는 강원도 화천의 오지중의 오지인 '비수구미 계곡', 지금은 자연휴식년제로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곳, 그래서 더욱 자연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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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원도 춘천을 거쳐 화천, 평화의 댐 방향으로 가다보면 해산터널이 나오고 터널을 지나면 해산령 표지석이 나온다. 해산터널은 해발 700미터 높이에 위치하고 직선 1,986미터로 국내에서 두번째 긴 터널이다. 그리고 해산령은 1,000미터 고지로 화천과 파로호 사이에 놓인 준봉이다.
직진하면 유명한 '아흔아홉구빗길'이고 오른 쪽에는 철문 너머로 비수구미마을로 내려가는 비포장 숲길이 보인다. 이곳이 '비수구미계곡'인데 2006년 6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일반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우리일행은 이곳사정을 잘 아는 리더의 안내를 받아 비수구미계곡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서인지 전에 있던 길도 황량하고 숲이 원시림처럼 살아있다. 약 30분쯤 내려갔을까. 리더가 왼쪽 숲을 헤치고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후 일행 전체를 따라오라고 외친다. 숲속을 헤치고 조금 들어가니 멋진 계곡이 보이고 10여명이 야영하기에 좋은 평평한 숲이 나타난다. 계곡 옆에는 취사를 하기에 좋은 넓은 장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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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일행은 서울에서 3시경에 출발하다 보니 3시간 반 정도 걸려 현지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
비박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는 밤에 비가 온다고 했다. 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 텐트를 칠 수 밖에 없다. 원래 진정한 비박은 텐트없이 그냥 야영하는 것인데 상황에 따라 텐트는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다만, 지리산 등 국립공원에서는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텐트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대피소 예약이 안돼 근처에서 노숙이 필요한 경우에는 침낭카버와 침낭, 매트리스, 비닐 등 만으로 밤을 지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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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계곡옆 공터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전에 준비물에 대한 역할을 분담했다. 비박의 경우에는 짐이 많기 때문에 일행끼리 준비물을 서로 분담하는 것이 좋다. 우리 일행은 13명이었는데 나는 쌀 한끼 13인분 및 간단한 행동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가장 쉽고 간편한 것을 분담시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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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하는데는 일반적으로 개인장비로 대형배낭(80-100L 정도 크기)과 함께 텐트 또는 비비색(또는 침낭카버), 침낭, 매트리스, 헤드랜턴, 스틱, 세면도구, 물티슈, 행동식,식수,롤휴지, 간이의자 등이 필요하고, 공동용으로 버너, 코펠, 타프, 정글도, 토치, 야외등, 후라이팬, 카메라와, 쌀, 밑반찬, 고기, 주류와 음료수, 과일 등을 준비한다.
리더를 비롯한 일행 대부분은 비박경험이 많은 회원들이라 능숙한 솜씨로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 쌀밥에 상겹살을 굽고 준비해온 상추쌈에 쌈장을 얹어 저녁식사를 했다. 한쪽에서는 김치찌게도 끓여 진수성찬을 이루었다. 여기에 양주와 와인까지 곁들이니 숲속계곡의 여름밤이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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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옆 숲에서 떨어진 안전한 공터에는 나무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한쪽에 톱날, 다른 한쪽은 칼로 만들어진 정글도를 이용, 죽은 나무가지들을 잘라 불속에 넣고, 개스연결 토치로 불을 붙였다. 우리들은 식사후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커피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감자를 구어먹기도 하였다. 틈틈이 구성진 노래로 캠핑의 멋을 돋구기도 하였다.
대학시절 유네스코학생회에서 멤버쉽트레이닝을 갔을 때 캠프화이어를 하면서 모닥불 주위에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포크댄스를 즐기던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그때의 학우들 얼굴도 떠올랐다. 나도 한곡조 학창시절 불렀던 '안녕, 친구여'를 불러보기도 하였다. 숲속의 여름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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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날씨만 좋으면 더 오래 캠프화이어를 즐기고 싶은데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텐트속으로 기어들었다. 잠속에서도 굵은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배낭꾸릴 때 무게가 걱정되어 최대한 가벼운 텐트를 샀는데 비가 쎄게 쏟아지니 결국 문제가 생겼다. 플라이가 없는 텐트였는데 방수가 잘 안되는 것이었다. 잠결에 침낭이 축축한 걸 느끼고 4시경 잠이 깼다. 아니나 다를까 침낭커버는 물론 침낭까지 젖어있었다. 비박 첫밤부터 제대로 초보로서의 신고식을 치룬 것이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다른 텐트들을 둘러보니 나만 제외하고는 모두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귀경하면 우선 텐트부터 바꿔야지. 다행히 새벽부터 비가 멈춰 더 이상 고생은 면했다. 비온 후의 계곡과 숲은 너무도 싱그럽고 풍요했다. 맑은 물이 바위틈 사이로 폭포처럼 흐르고, 숲은 목욕한 신부처럼 청아했다. 기지개를 펴고 잠시 숲속을 산책하니 나도 한그루 나무가 된 듯 했다. 옷을 입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이 숲에서는 낯선 동물이었다. 뭔가 걸치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어색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거추장스러운 가식을 벗어던지고 나도 맨몸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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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는 간단히 누릉지끓인 것과 라면으로 때웠다. 다시 짐을 꾸리고 주위 청소를 한 뒤 비수구미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최근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비포장 숲길을 따라 전진했다. 길옆에는 이름모를 나무들과 꽃들이 여기 저기 자기들만의 세상인듯 멋대로 피어 있었다.
숲이 마치 원시림같이 울창했다. 걷는 것 자체 만으로도 너무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비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날씨까지 맑아졌으니 우린 운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우린 순례자들처럼 숲길을 계속 헤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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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옆에는 계곡이 이어지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바위와 돌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계곡과 물, 그리고 숲이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선경(仙景)이라 할 만했다. 선경이 따로 있었던가?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면 그곳이 선경이요 무릉도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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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쯤 내려가니 마을이 나타났다. 비수구미마을이다. 비수구미마을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남은 오지중의 오지마을이다. 비수구미(秘水九美)란 이름은 '신비한 물이 만든 아홉가지의 아름다움'이란 뜻이란다.
비수구미마을에는 현재 단 세 가구만 산다. 비수구미는 한때 1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취락을 이루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 화전민 정리사업 때문에 모두 떠나고 지금은 단 세가구 만 남았다.
평화의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육로가 없어 화천의 구만리로 장을 보러 나가야 하는 격리된 곳이었으나 평화의 댐길이 생기고 난 후에는 평화의 댐 아래 수하리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선착장에서 마을 민박집에 전화하면 보트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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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구미마을 끝에 이르면 파로호 최상류가 나타난다. 낮은 다리가 있어서 우리일행은 걸어서 건넜으나 물이 차면 모터보트로 건너야 하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 왼쪽 비포장강변길을 한참 걸어가면 산중턱에 평화의 댐으로 가는 지방도로가 보인다. 큰 도로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우린 선발대 두명을 먼저 보내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해산령 쉼터에 세워 둔 차를 가지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중간 길옆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기다렸다. 거의 한 시간 쯤 기다렸을까? 기다리던 차가 왔다. 차량에 분승, 마지막 목적지인 평화의 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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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은 비수구미마을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해산터널에서 약 2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평화의 댐은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금강산댐 붕괴나 집중호우시 발생되는 홍수조절용으로 만든 댐이다. 높이 125미터, 26억 3천만톤 규모로 국내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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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2월 착공해 1989년 12월 1단계 공사를 마치고 2002년 9월 2단계공사를 시작해 2005년 12월에 공사를 완료했다. 총공사비 3,995억원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 사연이야 어떻든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일종의 방어용 댐으로 평소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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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옆에는 비목공원이 있다. 가곡 '비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목공원은 전쟁에서 싸우다 이름없이 죽어간 병사들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공원에는 기념탑을 비롯하여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씌운 나무십자가가 10여 개 서 있고 주차장 입구에는 '비목' 노래비가 있다.
매년 6월 3일부터 6일까지 '비목'의 탄생과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비목문화제'가 열려 진중가요 부르기, 시낭송 등의 추모제 행사와 비목깎기대회, 주먹밥먹기대회, 병영 체험, 군악퍼레이드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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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 노랫말에 얽힌 사연이 전해 온다. 1960년대 중반 평화의 댐에서 북쪽으로 14km 떨어진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명희라는 청년장교는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를 발견하였다. 한명희는 돌무덤의 주인이 전쟁 당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목'의 노랫말을 지었고 그 후 장일남이 곡을 붙여 1970년대 중반부터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었다. 돌무덤 위에 세워진 비목을 바라보면서 엄숙한 마음으로 노래 '비목'을 조용히 불러본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