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 사찰
鳳林寺
경기도 화성시 북양동 무봉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왕대에 창건되었으며,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들이 절 근처의 숲에 앉은 데서 붙여졌다. 그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봉향각·망향루(望鄕樓)·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고려 말기에 제작된 불상(보물 제980호)이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봉림사목조아미타불좌상
봉림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목조불좌상. 보물 제980호. 높이 88.5㎝. 1978년 이 불상을 개금(改金)할 때 복장(腹藏)에서 여러 권의 사경과 함께 〈조성개금기 造成改金記〉가 발견되어 1362년(공민왕 11) 이전에 조성된 무량수불(無量壽佛), 즉 아미타불임이 밝혀졌다. 얼굴은 둥글고 살진 형으로 이목구비가 중앙으로 몰려 있으며 표정에 생동감이 줄어들고 경직되어 침울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손 모양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했는데 오른손은 정면으로 들어올리고 있어 문수사(文殊寺) 금동불좌상(1346)과 장곡사(長谷寺) 금동약사불좌상의 자연스러운 하품중생인 표현과 차이가 있다. 신체는 풍만한 편이나 목과 상체가 넓고 각진 점이 특이하다. 대의(大衣)를 걸친 모습이 문수사의 불상과 같은 형식이나 왼쪽 가슴에 보이는 승각기 치레장식과 가슴에 두른 띠와 매듭이 없는 점, 어깨의 옷주름이 좀더 번잡스러워진 점이 다르다. 무릎에서 발목으로 향해 몰려 있는 주름이나 왼쪽 어깨와 배 앞에 몰려 있는 옷주름에서 과장된 표현과 도식화의 경향이 보인다. 이 상의 얼굴 모습, 신체비례와 자세의 변화, 조각기술의 쇠퇴에서 오는 옷주름의 형식화 경향 등은 조선시대 조각양식의 일면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상은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과 비교해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봉림사 들어가는 입구

봉림사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천왕상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 합니다.

봉림사 사천왕상
사천왕상은 동방에 지국천왕, 서방에 광목천왕, 남방에 증장천왕, 북방에 다문천왕
으로서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명의 대천왕상 입니다.

사천왕상을 지나면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전이 보입니다.

극락전 뒤로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대표적 건물인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락전 좌측에는 스님방. 종무서. 공양간 건물이 있습니다.

극락전 우측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약수터가 자리 하고 있습니다.

극락전 벽화에는 읽어버린 소를 찾아나서서 소를 보고 잡아 끌어서 마침내
소와 내가 하나가 되어 결국 공적(空寂)이 되고 다시 일상 으로 되돌아 가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네요.

극락전 에서 바라다본 석탑과 누각의 모습 입니다.

극락전에 모셔져있는 보물(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좌상 입니다.
높이 88.5cm 이고 고려시대 목조불좌상 으로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하면서
여러권의 사경과 함께 조성 개금기가 발견되어 1362년(공민왕11) 이전에
조성된 아미타불임이 밝혀짐.

극락전 우측에 자리한 설법전 건물 입니다.
여름에 불국정토 회원들이 앉았다가 간곳 입니다.

조금 기울어진 석탑과 극락전 모습 입니다.

여름에 이곳이 하도 시원해서 한참을 쉬고 온 너와로 지붕을 올린 정자군요.

사찰 입구에서 .....
첫댓글 내집이려니..하고 눌러앉아 살아가고만 싶습니다
언제 또 가셨어요? ...절집만 보면 왜 이리 좋은지~~ ()
그앞을 많이 지나다녀도 가볼 기회가 없네요. 일단 사진으로나마 눈도장을 찍습니다.
봉사모임 하는 묘희원 앞에 있는 곳이죠.....생각보다 산중 느낌이나서 좋았다는......ㅎㅎ
너와지붕이 있는 정자가 시원함을 느끼게 하네요....
자제정사 가는 길에 참배할 날이 오겠지요...
풍경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아담한 절이었지요 그 정자에서 언제한번 차한잔 나누어야 할터인데.. 내년 여름을 기다려야겠지요.
가봐야겠네요...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