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20~21] 무등산에서...
반야심경에 이르기를, 부처는 비할데 없이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으니 무유등등(無有等等)의 존재라 하였다. 산도 그리하여 무등(無等)의 이름을 얻은 것이니 1187m의 산을 이르는 수사로는 더할 바 없겠지. 조화옹의 신령하고 빼어난 기운 한데 모아놓았고 산의 남북으로 밤과 새벽이 갈렸구나. 시성(詩聖) 두보가 태산(太山)을 굽어보며 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읊은 심사가 또한 그에 다르지 않으니 산도 어느 날엔가는 시성을 만나 무등에 걸맞는 싯구도 한 줄 얻었으면. 더불어 욕심일진대, 겨울이 소리없이 제 길 가는 날에 산에 드는 나도 비할데 없는 한줄 시흥은 아니어도 마음의 좁은 길 하나 얻었으면.
신선대. 무등산관리사무소를 비껴 산에 들어 꼬막재를 거쳐 사면을 휘둘러 한참을 걸을 참이다. 그리 신선대를 거쳐 규봉암에 닿아 석간수 보시를 하고 장불재에서 허리 한번 펴고 입석대로 인왕봉 올라, 갈 수 없는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 조망하고 서석대로 내려서서는 아무곳에서나 하룻밤 노숙하고 중봉을 거쳐 늦재로 내려설 것이다. 그 밤에 별과 달과 바람 벗삼아 겨울의 혼신에 취하고 나누는 소주 한잔의 산사람 정에 마땅히 취할 것이다.
규봉암에서. 막 바랑 메고 탁발 나서는 스님이 길손 위해 내어 놓은 석간수가 곧 불심이다.
인왕봉 전경. 산은 좌우로 서석대와 입석대가 호위하는 형상으로 참 잘 생겼다. 저 파란 하늘의 기운에 어제 내린 옅은 눈의 겨울은 이제 더이상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입석대. 누가 잠들어 있는 걸까. 추상 같은 바위는 금새라도 잠을 깨어 일어나 긴 칼을 휘두를 것만 같다.
길을 내는 사람은 뒷전. 길 내어진 백마능선이 시선을 붙든다.
장불재. 장불재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의 삼재봉 그리고 꼬막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광주와 화순의 경계가 된다. 광주의 산이라는 범칭에 애교어린 샘을 하는 듯 장불재 한 켠 화순군수 명의의 안내문이 있다.
인왕봉. 무등산의 정상 세 봉우리는 각기 천지인의 이름을 가져 삼재(三才)봉이라 불린다. 인왕봉은 사람의 봉우리라니 이름값 하느라 그중 왕래가 가능한 봉이다.
천왕봉. 무등산의 상봉이다. 자태가 예사롭지 않은데 군시설지역으로 통제라니 아쉬움이 있다.
인왕봉의 남쪽 조망. 광주와 화순을 경계하는 산너울이 아름답다. 와중 불현듯 바랑 메고 길 나서던 규봉암 스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지인의 공양에 노잣돈 고맙다 하던 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탁발 나서는 그의 우보와 파안에서 거창한 개오가 아닌 주는대로 먹고 되는대로 쉬는 자유가 떠오른다 .
서석대와 우측의 중봉서 동화사터로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광주 시내.
사면을 꾸준히 잇는 질척이는 봄의 산길을 내내 걸었더니 허기도 지는데 지역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삼합이 더욱 보챈다. 무등의 깊은 맛은 알지 못하고 표현은 더욱 서툴지만 알싸하니 자극하는 향이 산정의 흥취를 더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석양. 노을이 진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게츠비>에서 읊조린 것 처럼 곧 은빛 후추가루를 뿌려놓은 듯 총총한 별들이 숨쉬는 밤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여명. 상서로운 기운. 제임스 조이스가 <The Dead>에서 말한 것 처럼 제 심장이 늑골에 부딛히는 소리가 들릴 듯한 고요의 새벽이 지날 즈음이다.
용추봉. 조망이 더없이 시원하지라 언제고 저 자락에서 하룻밤 묵어갔으면 싶더라. 한참을 머물러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내쳐 발길 잇는다. 중봉을 거쳐 동화사 터를 지나 늦재로 내려설 것이다.
중봉. 그리하여 이름도 중봉이던가. 천왕봉을 잃은 산은 근사한 조망의 중봉이 구실을 한다.
중봉에서 바라본 천지인 삼재봉과 중봉에 닿는 억새평전의 길. 세찬 바람의 중봉에서 나는 한참을 길을 잇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화려했던 가을 억새의 노래도 순결했을 겨울 눈꽃의 노래도 겨울 가고 봄 오는 길목의 처절한 눈물 흔적을 지울 수 없다. 루쉰이 저 길 보았다면 어땠을까. 루쉰이 저 길 걸었다면 어땠을까.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내 저 길을 이어 걸음 내딛는다. 그곳엔 이미 길이 나 있었다.
동화사 터의 조망. 맑은 샘에 발을 씻는 일 꽃위에 속옷을 말리는 일 산을 등지고 누각을 짓는 일 거문고를 태워서 학을 삶는 일 꽃을 마주하고 차를 마시는 일 솔 숲 사이에서 길잡이가 벽제하는 일 당시인 이상은이 말한 여섯의 살풍경인데 이제 나는 그에 조망 좋은 곳에 수행처 마련하는 일을 보태야겠다. 저만한 조망이면 필시 수행이 쉽지 않을 것이다. 벽면수행도 한다는 참에 하물며 터 좋은 수행처는 마뜩치 않다.
짙어가는 봄향에 유쾌한 걸음, 취한듯 갈짓자 . 문득 우러른 하늘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
원효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능선. 내 걸은 삼재봉과 장불재 그리고 앞서의 중봉 능선이 봄햇살 속 아름답게 연이었다.
******* 무등산을 걸어 무등의 삶을 생각는다. 산이거나 수행자라면 모르까 곱씹어도 범인의 삶으로는 별로다. 웃으며 계룡산 떠나도 흥이 남아 있어 말 앞에는 다시 속리산이 버티고 있음을 기뻐한 삼연을 쫓고 인생 백년이 채 되지 않는데 천년의 근심을 품고 산다 탓하고 금술잔으로 하여금 공연히 달만 쳐다보게 하지 말라한 이백을 쫓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니 세상사 아옹다옹 하여도 하시라도 밝을 것을 말한 L. M. 몽고메리를 쫓아야지.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예정한 설악 일정이 폭설로 입산통제가 되어 무등산 다녀왔는데 인근 담양 나들이 겸하여 좋은 휴식이 되었습니다. 이리 2월 가고 3월 오는가봐요. 모두들 따뜻하게 봄 맞으세요~~~
자칫 밋밋했을 무등산이 팬다님의 후기로 인해 특별하게 다시 태어나는듯 합니다. 멋집니다~
도심의 산이라 대접이 소홀한 것도 사실인가 봅니다. 군시설과 방송사 시설등에도 잘 견디는 산이 고맙지요^^
광주 무등산을 찾은 지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눈앞에 우뚝 서있던 입석,서석대를 보고 느낀 엄청난 무게감이 지금은 아련합니다. 견줄것이 없는 무등이지만... 아마 견줄 마음도 없을 겁니다. 팬다님처럼^^ 즐거운 후기와 멋진 글... 항상 행복하네요... 봄날 따뜻한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20년이라면^^ 최근엔 4년전에 찾았었는데 그대와도 많이 다르더만요~~~~
사진후기와 멋진글 잘보고잘읽고갑니다. 항상건강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3년전 설산을 기대하고 갔건만 장맛비처럼 비가 내려 생쥐가 되어 중도에 하산한 기억이....인적은 없고 시야는한치앞을 볼수가 없엇으니....이번주말 가볼까 했드만 빨리오라시는 엄명이....팬다님의 멋진후기로 대신해얄것 같습니다~잘 보고 갑니다~
그런 추억이~~~ 곧 기회 또 있으시길요^^
스콧->엘라....헤헤
팬더님은 미네징거...^^
과찬입니더^^ 미네징거라니.... 휴~
이번엔 무등산까지.... 팬다님 나와바리는 경계가 없군요. ㅎ 무등처럼 마음에 차별이나 경계가 없어서인 듯도 합니다.
욕심인가 봅니다. 100대 명산이니 200대 명산이니... 여하간 발길 닿는 대로 꾸준히 다니고는 싶네요^^
발걸음이 누비셨을 산야를 상상해보며, 미소짓는 아침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
예^^ 춘삼월 즐겁게 맞으세요~~~
무등산 아래 산수동에서 큰아이를 얻은날 금줄을 걸어주신 아버님
팬다님 글보니 저하늘 어데선가 훠이훠이 날아다니실것 같습니다.
팬다님 사진과 글은 책한권 만들어도 충분할것 같습니다.
요즘은 책을 소량 주문해도 제작이 가능한 시대이니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보시지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고향 같은 산이네요. 과찬 고맙습니다^^
아직 무등산은 가보지 못했지만 팬다님의 후기로 보니 꼭 가고 싶은 곳이네요. 늘 좋은 산행기 감사^^
영알 매니아인 선바위님 가시면 고향 온듯 익숙할테고 선바위(입석)도 많으니 형제를 만나는 기쁨도 있을 듯^^
작품과도 같은 멋진 후기입니다. 올해는 무등산을 꼭 가보야겠습니다.
과찬입니더~~~ 행복한 3월 맞으세요~~~
스승님으로 모셔야 겠어요.^^ 앞으로 후기 올리려면 부담 되겠는데요~~~
반지님~ 간혹 올려주는 귀한 말씀 새기고 있어요~~~~~
조망도 좋고 사진 또한 예술 입니다~~정성에 담긴 후기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즐거운 산행 되세요.^^
예~ 고맙습니다. 진산님도 춘삼월 행복하게 맞으세요^^
멋진 구경꺼리와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학시절 두번, 다시 찾을때도 되었는데 아직 연이 닿지않네요~^^,
그 시절엔 또 어땠을까요? 추억 있다시니 좋습니다^^
무등산 간지 2년전 겨울 90년대 중반까진 방목 소들이 많았는데.. 삼합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