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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으려 선택한 길
범상스님
경북 울진 출생, 1997년 출가. 2005년 『문학공간』으로 등단.
시문집 『탁발』, 시집 『용봉산 心에 새기다』 등.
현, 용봉산 석불사 주지.
가끔 출가 동기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부처님 가르침이 너무 좋아서, 출가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라고 답한다. 그 마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으며 내일 그리고 또 내일도 그럴 것 같다.
행정구역상 예전에는 강원도였지만 지금은 경상도 맨 끝자락으로 편입된 두메산골 경북 울진, 태어날 때 각인되어 평생을 함께한다는 나의 고향이다. 번성했을 때도 40여 호를 넘지 않은 작은 마을, 새마을운동으로 강제되기 전까지 장마가 져야 겨우 물이 흐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위쪽에 자리한 곳, 아랫마을로 불리는 동네 사람들과는 잔칫날조차 터놓고 왕래하기를 꺼리던 그런 곳이었다.
동네 이름은 중리(中里), 당연히 있어야 할 상리(上里), 하리(下里)는 없었다. 행정구역은 아주 좁아 논과 밭은 모두 다른 마을에 있었다. 새마을운동으로 도로를 넓히고, 천재지변으로 유실될 때면 위아래 동네 분들이 마당 밖 경계선까지 와서 울력하는 다소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일부 어른들은 종갓집을 찾을 때 종손(宗孫)이라는 말보다 애써 종군(宗君)이라 치켜 불렀고, 우리 집안은 양반이 아니라 종반(宗班)임을 강조하시며, 동네 위계질서의 기준은 나이보다 항렬이 우선되었다. 나 역시 낯선 손님이 사랑에 들 때면 절을 올리고 옆에서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술상만 놓고 물러 나와도 괜찮은지를 어머님께 물었다. 이런 분위기에 더해 관청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조금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능소(陵所)에 발고 할 놈이라며 호통을 치셨다.
이런 연유를 중학교 다닐 때쯤에서야 확실히 알았다. 우리 집안은 전주(全州)를 본관으로 하는 왕족으로서 왕실의 대사(大事)가 있을 때면 문중 대표가 종친부의 일원으로 참석하셨다는 걸, 그리고 가까운 삼척 활기라는 동네에 이성계의 5대조이자 추존된 목조(穆祖)대왕의 아버지 이양무 장군의 묘소-준경묘, 부인의 영경묘-가 있고, 거기에 능(陵)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소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청의 일은 고을의 원님이나 현감이 아닌 요즘으로 말하면 국가 최고위층과 직접 소통하는 특별한 창구가 있었던 셈이다.
집안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드러내놓고 절에 다니는 분들은 없었고, 일 년에 한두 번 탁발 나오신 스님들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절에 처음 가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소 먹이러 갔을 때였다. 또래 몇몇과 놀이 삼아 들른 옆 동네 까꾸산[覺求山-깨달음을 구하는 산]의 작은 절 성주암이었다. 처음 보는 화려한 단청과 불상을 보고 “야 정말 멋있다”라며 떠들고 있는데 뽀얗고 예쁘게 생긴 여자 중(당시의 표현)이 “얘들아! 부처님은 거룩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떡을 주었다. 그 후 어느 스님이 큰아버지께 글씨 받으러-지금 생각해 보면 공덕비를 세우는데 붓글씨가 필요했던 것 같다-오신 것을 본 게 고등학교 이전까지 절에 관련된 것의 전부였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작은 감동의 사건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며 외삼촌이 사준 국어대사전, 맨 뒤쪽 부록에는 세계 위인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중에 만해 한용운이 유독 마음을 확 끌어 잡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솟아나는 동경심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조국의 완전한 독립은 통일로 이루어진다. 그 중심에 일본과 제국주의를 적이 아니라 제도해야 할 어리석은 중생으로 보았던 만해의 실천행이 있어야 한다. 만해의 일생은 일체, 즉 우주 만물은 서로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다는 불일불이(不一不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인류 절멸의 무기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현대 기술문명, AI(인공지능)의 미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이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류의 행복이라” 규정했던 만해의 세계에는 맞서 싸워야 할 적은 없다. 다만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름이 다른 수많은 나’들이 있을 뿐이다. 미국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여 위협하고, 북한은 불가피한 생존전략으로 핵을 만들었다는 이 엄연한 현실은 아마 내가 현재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이라는 지역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만해가 실천했던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가르침을 더욱더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며 애써 떠드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과 인연을 다하는 그날까지 만해가 그러했듯이 자신들을 절대 선(善)으로 규정하는 선민사상에 기인한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 즉, ‘원주민은 사람이 아님’을 전제로 하는 서구의 일방주의와 유일신의 배타적 폭력과 침탈의 문제를 밝히고 불이(不二)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감히 전생에 불연(佛緣)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은 달라졌고 후손들 역시 세월 따라 변했지만, 집안의 예법과 어른들의 의식은 별반 달리진 게 없었다.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사촌들 오 남매와 여기에 우리 누이 둘까지 성당을 다닌다는 이유로 천주교인들이 몰려와서 장례미사를 했다. 참다못한 아버님께서 내일은 오지 마시오. 당신들이 오래 지체하는 통에 문상객을 맞이할 수 없으니……. 사촌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출가 후 아버님과의 첫 대면! 첫 마디! 가 “쌍놈이 되어서 왔구나” 하시며 애써 외면하셨으니-물론 그날 저녁 부자간의 깊은 정담을 나누었지만-과연 나의 불연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암튼 전생이든 금생이던 어디엔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언젠가부터 누이들의 등쌀에, 더 정확히 말하면 누이 집에 얹혀살고 용돈도 받는 처지였으니 나 역시 눈치껏 성당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초심자를 위한 교리 공부부터 이해되지 않는 허무맹랑한 소리들, 어쨌든 소정의 시험 통과 후에야 주어지는 세례받을 자격……. 매주 일요일 성당에 갔고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자존심보다는 수치심이 크게 다가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뼈만 앙상하여 가시관을 쓴 괴로운 표정, 그것도 고쟁이 바람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는 예수상은 보면 볼수록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요한복음의 가르침인 “(빵과 포도주를 놓고서)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를 근거로 행해지는 영성체 의식은 그들이 마치 식인종이라도 된 듯한 거부감을 주었다. 한술 더 해 고해성사를 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이고 불합리한, 마치 동네 양아치가 자기만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을 잘 들으면 삥을 뜯지 않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이 들렸다.
여기에 또 다른 갈등이 어우러졌다. 당시 장차 정치를 해볼 요량으로 국회의원선거 지역구에 태권도장 2개. 속셈, 미술학원 등을 운영했었다.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쳐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람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며, 노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생 역시 능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선배들은 언제나 들러리가 될 뿐 쏟아붓는 열정과 역량에 비해 주류로의 진입은 엄두조차 못 내었고, 번번이 엉뚱한 사람이 이익과 공천을 챙기는 것이었다. 과연 전생 또는 운명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떤 목적과 계획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주었거나 천재적 자질을 부여했을까? 이 세상 모든 불평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다소 유치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 뿐이었다.
이러한 내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같은 건물에 있던 입시학원 강사에게 털어놓았고, 그분의 인도로 생전 처음 법회에 참석했다. 내가 들은 첫 법문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마음이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실재라 착각하여 집착한다.”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느끼고 사용하는 물과, 물고기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물은 분명히 같지 않다. 그런데 중생들은 자신이 경험한 물에 대해서만 사실이라 애착한다. 이러한 현상은 중생들의 모든 삶에서 일어난다.’ 등등 생소하면서도 깊이 와닿는 말씀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수학 공식처럼 빈틈이 없었고, 허점을 찾아 빠져나가려 궁리를 거듭하면 할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갇힌 느낌이었다. 사성제(四聖諦)로부터 시작되는 논리의 전개는 마치 잘 쌓아 올린 벽돌담처럼 정연하여 날마다 높아가며 나를 가두어버렸다.
매일이 너무나 좋았다. 불교를 배운지 채 석 달이 안 되어 살고 있던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법당을 만들었고 조석예불을 올렸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출가를 결심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결심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 저녁 스님이 되겠다며 무작정 쌌던 가방을 아침에 일어나서 막상 어디로 갈지 막막하여 풀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절도 몰랐고, 불교는 더욱 몰랐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분명한 길이 있어 하루에도 몇번씩 다짐을 하면서도 결행을 할 수 없었던 나날이 이어졌다. 때로는 벌여놓은 일들이 많음을 핑계 삼아 자신과의 적당한 타협을 시도하면서 말이다.
해가 바뀌었고 다시 한번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 밑바닥에 놓지 못하는 집착과 두려움이 남아 있음을 보았다. 그것마저 내려놓았더니 거짓말처럼 채 한 달이 안 되어 네 개의 학원의 인수인계가 끝났다. 20대 꿈 많은 청년이 사업을 한다며 겁 없이 빌렸던 대출금을 갚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사업의 실패가 아니라 잘나가고 있을 때 정리했다는 점 등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잘된 새로운 출발이었다.
성급한 공부에 비치는 출가라는 현실! 거기에는 내가 찾으려 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길바닥으로 뛰쳐나왔다. 수년간 태권도장과 학원을 운영했던 그 동네, 그 길바닥으로 말이다. 탁발-무소유 출가자인 승려를 ‘걸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공부하는 선비’라는 뜻으로 걸사(乞士)라 의역했고 그 행위를 탁발이라 한다.-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불자들마저 회색 옷 입은 거지의 동냥 정도로 취급하는 그 길을 나는 구도의 열정으로 용기 내어 선택했다.
굳게 먹은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 정작 동네로 나서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 끙끙대었고 마침내 탁발은 동냥이 아니라 복전(福田)으로서 당당해야 하고, 수행자는 복전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다다랐다.
새로운 수행, 거처 앞 매일 들리던 구멍가게를 필두로 과거 학부형들의 사업장과 막내 동생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거치며 시작된 탁발. 두어 시간가량 지났을까? 불현듯 ‘나를 비롯한 일체중생의 모든 행위는 먹고살려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되고 있구나’하는 글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생각에 웃음이 비실비실 터지며 머리통이 없어진 듯 시원해졌다. 너무도 신기한 경험에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고 웃음을 참아 봤지만, 한참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길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가게 개시 전에 재수 없게 왔다며 뿌리는 소금이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질 때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장사가 잘되기를 빌었고, 전철역 광장에서 시주함을 발로 걷어차는 사람들과 어느듯 친구가 되고, 노숙자들을 불러 모아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술집 앞에서 막아서는 문신을 한 덩치 큰 양반들에게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고 다가설 때면 “아따! 스님 우리보다 더하요~”하면서 어이없는 웃음으로 돈을 내밀던 순진한 천진불(天眞佛)들 모두 나의 스승들이었다.
세존께서 때가 되어 옷을 갖추어 입으시고 성중(城中)에 들어가 차례로 음식을 얻어 오신 뒤 공양을 마치시고 자리를 펴고 앉아 선정에 드셨으니……. 탁발의 즐거움은 매일의 감동이었고 세상을 보듬어 안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눈물은 연속되었다.
이제 막 시작한 태고 보우스님의 법향이 서려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청송사 불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나는 또다시 걸망을 메고 민중 속으로 거룩한 이름의 탁발을 떠나련다.
- <불교와 문학> 2023년 가을호 中
첫댓글 감사합니다.
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