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가장 필요하지만 빈털터리
경자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0년 1월 3일(토) 새해 처음 문을 열었습나다.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하지만 노숙하는 우리 손남들이 견디기는 참으로 힘든 계절입니다.
침낭을 비닐 봉지에 넣어 들고 있는 손님입니다. 침낭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으니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있습니다.
1월 1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고프니 저절로 발길 가는데로 왔더니 민들레국수잡이랍니다. 라면 끓여서 식은 밥이나마 먹은 손님이 20명이 넘었습니다.
시루향기에서 우리 손님들 걱정에 떡국떡을 두 말이나 해서 가져 오셨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떡국보다는 밥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국에다가 떡국떡을 조금씩 넣어 국으로 드시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설날 전후로 어느 곳으로 가든지 떡국만 먹게되어서 그렇습니다. 설날에는 이팝에 고깃국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광주 가톨릭대학교 율리아노 신학생이 한 달간 민들레국수집에서 실습을 합니다. 참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빈털터리입니다.
'손님, 지금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요?'
오백원 동전 하나.
천원 한 장.
만원 한 장 있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손님은 돈 한 푼 없다고 합니다.
어떤 손님은 지난 육개월 동안 천원 한 장 써 봤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은 대부분이 빈털터리입니다.
입을 여는 것부터 배우기
"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말하기를 그렇게도 어려워할까요? 그 원인은 일을 하다 보면 말은 쓸데없는 무용지물이며, 때로는 작업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오로지 기계에 달라붙어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말하는 경우는 다만 기계가 고장이 나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뿐이다.
'자, 오늘은 입으로 산보나 해 봅시다. 입을 좀 벌려보세요. 더 벌려 보세요. 자 이제는 혀로 입 속을 한번 휘둘려 보세요. 이번에는 오른손가락으로 잇몸과 혀와 양볼을 문질러보세요. 다음은 두손으로 또 한번 그렇게 해 보세요.'
입이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력을 가진 기관이라는 사실을 의식했다."(인생이 학교다).
"손님, 여기에서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가 밥값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지 않으면 500원 내셔야 합니다.
손님들이 모기소리만큼 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럼없이 식사 마치고 나가면서 큰소리로 '고맙습니다' 감사를 표시하기 시작합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는 손님들이 책을 읽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발표하면 독서장려금으로 삼천원을 드립니다. 돈이 필요한데 말하는 것은 무섭습니다. 처음에는 벌벌 떨면서 작은 목소리로 글을 읽습니다. 좀 더 지나면 자기 글을 꼭 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서 내리면서 요금을 내려고 하면 받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독후감을 발표하고 삼천원을 받다가 말을 할 줄 알게 되어서 취직했다는 분입니다.
손님들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억압이 봉해버린 입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6년생 남자 어른입니다. 노숙을 합니다. 지하도에서 지내다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어서 요즘은 버려진 빈집에서 잡니다. 불을 피우고 싶지만 그러면 금방 들킨다고 합니다. 귀신이라도 나오면 외롭지 않을텐데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노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민들레국수집에 밥 먹으러 오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여인숙 방값도 내지 못하게 되어 거리로 나와서 지내면서부터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민들레희망센터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지하도에서 지내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 한 데 씻을 수 없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합니다. 센터에서 씻고 속옷도 새로 갈아 입히면 다시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찜질방 표를 주어 며칠 찜질방에서 잠을 잡니다만 다시 노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삼천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좋은 구절을 공책에 베끼게 하고 그 것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삼천원을 드립니다. 어떨 때는, 사실은 아주 추운 날에는 스스로 찜질방 표 하나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자물쇠를 채운 듯 고맙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인사도 안 하던 이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을 삶으로 살기
사랑을 삶으로 산다는 것.
1976년 11월 어느 날 만수동 수도원 문을 열고 들어가서 2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오랫 세월을 감옥에 갇혀 살다가 세상에 나온 이들과 어울려 살다가 2003년에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식당입니다.
배고픈 이웃은 누구든지, 마음껏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서 따스하게 밥 한 끼 먹기 어렵고 밥 때가 됐지만 돈 한 푼 없을 때,
‘민들레 국수집’은 환한 웃음으로 찾는 이를 반겨줍니다.
그렇다보니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나 끼니 때우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이들 찾아옵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이빨조차 없어 오랜 시간 식사해야 하는 관계로 여타 무료식당에서도 푸대접 받는 사람들도 이곳을 찾습니다.
가정이 해체되어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열세 살 소년부터 여든이 넘은 어르신까지 손님 연령대도 다양합니다.
'
민들레 국수집’은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여섯 개가 전부입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매일 300명에서 400여명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두세 번 들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치 보이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집입니다.
덕분에 오랜 세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손님들께 어묵탕을 대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