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추워. 어디 정종 대포집에라도 가서 몸 좀 뎁혀 가지고(뜨뜻이 해 가지고) 가지." 지금도 늦가을께부터 겨울에 걸쳐 술꾼들이 하는 말이다. 그 "정종"은 위에 말한 노년층 부인네가 약주라고 하는 맑은 술(청주)을 일본식으로 빚은 것을 말한다. 우리의 맑은 술과 비슷하지만 맛은 좀 다르다. 추워지게 되면 술꾼들은 이 술을 곧잘 찾는다. 이 술이 일제 때 "正宗"(마사무네)이라는 상표를 달고 팔리기 시작했음으로 해서 그 한자 이름 따라 "정종"이라 부르게 된 것이 시작이다. 그러니 "정종"은 사실인즉 홀이름씨(固有名詞)였던 것인데 그런 유형의 술 일반을 가리키는 두루이름씨(普通名詞)로 되어 버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寶海"라는 상표를 달었건 "湖海"라는 상표를 달았건 알맹이는 "정종"이다. 종이찍개가 "호치키스"라 불리기도 한 것이 사실은 상표엣 시작됐고 나일런 또한 그랬던 것과 같은 맥락인데 "정종"은 우리로서는 쓰지 않아야 할 불쾌한 말이다. "맑은 술"이라는 말에 친근미를 못 느낀다면 "청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불쾌한 말"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일본 냄새가 난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에게 술 빚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우리들의 조상이었는데 그 발전된 기술을 되받아 들여와서는 그 상표 이름을 두루이름씨로 쓰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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