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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다(1)
마태복음 23장 1-36절 /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1)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14(없음) 15(2)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16(3)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17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19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4)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25(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26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6)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7)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병행구절. 막 12:38-40)
마태복음 23장 1-36절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 중에서 셋째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21:23-26:16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이 중에서 본문인 23:1-36은 예수께로 모여들어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과 예수님과 곁에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악행, 특히 위선과 외식에 대한 경계 및 겸손과 섬김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 첫 절인 시작에서의 ‘그때에’는 특별한 시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앞서에서 계속 진행되어온 유대 지도자들과 가진 논쟁에 있어서 예수님의 논리적인 질문과 답변에 그 누구도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함이 확인(22:46) 된 바로 그때에(22:46) 유대 지도자들의 위선과 외식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두를 지켜 본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교훈임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본문은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36절에 이르는 비교적 긴 구절입니다만, 마가복음은 12:38-40인 아주 짧은 3절로 간략히 요약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누가복음은 마가복음보다는 길지만 마태복음에 비해서는 대략 반 정도의 분량인 15절(11:49-44, 46-52; 20:46-47)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과 함께 서기관들을 조심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만, 마가복음에서는 서기관들을 조심할 것으로만 기록하고 있으며,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만 언급하시고 있는 표현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비해 마태복음은 36절에 이르는 긴 구절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일부인 1-7절의 내용에 의해서 설명 드립니다.
마태복음 23장 1-7절 /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첫 절을 시작하는 ‘이에’는 앞서 22:41-46에서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다윗이 그리스도를 어찌 대했는지를 ‘다윗의 주인 그리스도’를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 가르치신 ‘그때에’를 뜻합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시며 그들을 본받지 말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서기관들을 ‘삼가라’”(막 12:39; 눅 20:4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가라’는 ‘조심하라’, ‘주의하라’, ‘경계하라’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주의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자기들이 말한 율법을 따르는 실행에 있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악용하여 자신이 모세가 되는 자리에 앉는 행동을 하였습니다.1) 이런 그들은 자기들도 감당하기 어려워 할 수 없는 무거운 요구를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며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을 정죄하지만 자기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한 가지 율법에 수천 가지 규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참조.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율법의 짐이 의도하는 바인 죄로 인해 짊어지는 짐은 613개에 이르는 세부적인 계명을 만들어 낸 것에서 보듯이 그 종류와 수는 무한정이다. 필자 견해).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무거운 규례의 짐을 만들어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게 하지만, 장적 사람들이 그 짐을 지고 나르는 데에는 자신들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산다. ①그들은 기도할 때 이마나 팔에 매다는 성구함(경문)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거룩하게 꾸미고2) ②잔치에 가면 윗자리에만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만을 찾는다.3) ③나서면 거드름을 피우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랍비'라거나 스승이라고 불러 주기를 바란다.4)(마 23:5-7)
이는 마가복음에서도 보게 됩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 ①그들은 긴 예복을 입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②그들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만 찾으며 잔칫집에 가서도 윗자리에만 앉으려고 한다. ③그리고 과부들의 재산을 염치없이 삼켜 버리면서도 자기들이야말로 친절한 사람인 듯이 꾸미며 ④대중 앞에서 길게 기도하여 경건한 체한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 큰 벌을 받을 것이다.(막 12:28-40)
여기에서 보는 대로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 외에 한 가지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부들의 재산을 염치없이 삼켜 버리면서도 자기들이야말로 친절한 사람인 듯이 꾸민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것을 누가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차 있는 까닭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은 깨끗이 씻지만 속은 여전히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차 있어서 더럽다.(눅 11:39)
이런 탐욕스런 자들에 대하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사 29:13)을 인용하여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공경도 없이 단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는 것에 유대교를 이용하는 종교적인 사람일 뿐임을 알려줍니다.
이 백성이 나를 섬긴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말로만 나를 섬기고 높이며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하며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그들은 나를 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편리한 대로 생각해 내어 만든 규정에 따라서만 나를 높이고 섬기기 때문이다'.(마 15:8-9)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대해 이미 적절한 예언을 하였다. `이 백성이 나를 섬긴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말로만 나를 섬기고 높일 뿐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하며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그들은 나를 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편리한대로 생각해 내어 만든 규정에 따라서만 나를 높이고 섬기기 때문이다.' 얼마나 옳은 말이냐!” (막 7:6)
이는 시편 147:11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도다”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 것인지요. 선지자 말라기는 말라기 1:6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존중하고 종은 주인을 존중하는 법인데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높일 뿐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까닭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는 그들의 마음에 대신 가득 차 있는 것은 탐욕과 악독이었으니,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함은 없이 탐욕과 악독이며, 이는 곧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그 말에 담아 있는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의 본의(뜻)을 생각하며 이를 받들어 따르는 마음을 갖고 그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그들이 말만 하고 행치는 않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실증적인 사례들을 들어 그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는 외식에 있는 위선으로 인하여 커다란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시는 말씀을 하신 후, 그 위선적인 행동이 그들에게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큰 화가 미치는 재앙이 될 것임을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일곱 번째로 그들의 화를 입을 위선을 언급하실 때는‘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아주 강한 어조로 표현하여 거룩한 자임을 가장한 그들의 속에 있는 악함이 옛 뱀인 사단에 의하여서 되어지고 있는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그들의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실체를 끄집어내어서 드러내어 알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인데,“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하겠느냐?”라고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하여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결코 지옥 형벌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확증시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을 대하는데, 옛 유대교에 있는 것과 작금의 기독교에 있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요. 유대인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하여 장로들의 유전으로 불리는 많은 계명들을 만들어 내고 이를 엄격히 지키도록 했는데, 하나님의 율법이 뜻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에 반하는 백성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습니다. 정작 자신들은 그 짐을 지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주신 율법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가져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계명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 내도 그 계명을 만드는 인간의 본성이 악한 까닭에 계명이 지닌 의도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명과는 상관없이 탐욕에 이끌려 악하게 살아가는 자기 본성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해서 계명으로 하나님을 공경함에 있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서 이용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으므로 외식의 위선에 치중하는 악을 행하는 죄를 자신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지요. 전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율법에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가 약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니 약속하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죄로부터 깨끗함에 있게 하며, 그를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입히십니다. 이것이 깨끗하다 하시는 거룩이요 의롭다 하시는 칭의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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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모세의 자리’ ‘자리’는 ‘의자’, ‘좌석’을 의미하는데, ‘모세에게 속한 자리(의자, 좌석)’을 의미한다. 이는 모세가 앉았던 의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회당에 마련되어 있던 석재로 만든 의자에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 관례적으로 앉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이 ‘모세의 자리’를 언급하신 것은 문자적 의미에서가 아닌 비유적 혹은 은유적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즉, 모세의 자리는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위치에 있던 권위 있는 신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자리, 또한 모세처럼 입법자와 재판자의 자격으로 백성들 앞에 나서는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런데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이지만, 바리새인은 바리새파에 속한 특정 종파에 속한 자들로서 그들 대부분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2)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었으므로 ‘(율법) 선생’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해석은 율법의 언약이 지닌 메시야 계시에 있은 뜻을 밝히 드러내어 이를 가르치는 것에 있은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으로 불리는 열 가지 계명을 근거로 하여 장로의 유전으로 불리는 계명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엄격히 지킬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리새인은 서기관이 하는 율법의 해석과 가르치는 일에는 있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서기관의 율법 해석과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겨 그대로 준수하는 것에 열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열심을 백성들 앞에 나타내 보이기를 좋아하였으니, 그것이 그들의 자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고 존경받음으로 자신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인 것에 자부심, 자긍심을 가졌다. (3)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의 율법을 소지하거나 암기한 자들로서 회당에서 그 율법을 낭독할 뿐 아니라 그 율법을 전수받아 지키게 하는데, 여기에는 제5계명에서 보는 바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가르치지만, 이것의 해석을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맹세하기만 하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고르반 사상’과 같이 원율법과 다른 자의적 해석을 하는가 하면, 채소와 같이 사소한 부분에까지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율법의 근본정신인 인과 의와 신은 버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행동에 있었으며, 이혼에 관한 신명기 24:1-4의 규정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규정이 사람의 마음이 완악함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미가 5:1-3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출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지식을 오히려 그리스도를 죽이려는데 활용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선언하면서도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다윗의 주도 되신다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또한 대적하며 죽일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죽이는 악에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말은 다 행하여 지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말뿐이고 실행하지 않는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즉, 율법의 본의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율법의 정신인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실행하지 않는 불순종의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그들의 말에 있는 율법의 정신)은 따를 것이지만, 행동(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나 종교적 의무와 책임만 부과하는 잘못된 열심)은 본 받아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이 앉은 자리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없고 다만 자신들이 모세가 되어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존경만 차지하고자 하는 자리만 있을 뿐이었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경문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녔다. 그들의 경문은 율법의 계명이 새겨진 양피지를 담은 작은 상자였다. 그들은 그것을 이마에 띠로 두르기도 하였고, 또는 아침 기도 시간에는 팔에 두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들은 이러한 관행을 지켜야만 했다. 그들은 이런 관행을 출애굽기 13장 9절, 16절 등의 말씀에 근거를 삼았다. 그 경문은 그들로 하여금 주의 율법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였고, 또한 그것은 그들이 율법에 복종한다는 증거가 되었다. 나중에 그들은 그것을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부적으로 사용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경건을 돋보이게 하려고 자신들의 경문을 특별히 넓게 만들었다. 그 외에 그들의 예배용 제복도 경문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거기에 다는 술을 눈에 잘 띄도록 길게 달았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당과 잔치의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를 좋아했다. 후대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전에는 일반 배겅들의 자리와 구별된 특별석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탈무드에 의하면, 장로들은 자신들 몸의 등쪽을 두루마리 율법이 보관된 성소를 향한 채 회중들을 마주보고 앉곤 하였다. 이러한 관행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을 법 하다. 아무튼 그 당시에 어떤 종류이든지 간에 귀빈석이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4)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시장(장터)에서도 문안받기를 좋아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 앞에서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이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랍비’란 히브리 말로서 본래는 ‘나의 주’ 또는 ‘내 주인’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중에 서기관들을 일컫는 단순한 칭호가 되었다. 이와 같이 유대지도자들의 신앙심은 명예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