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in 서울] 우면∙양재, 마곡 등 ‘기업 R&D 특구’
삼성전자 모바일연구소 R5 오디오 특수 실험실 / 삼성전자 제공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기업도 인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차세대 먹거리를 생산하는 연구개발 인력은 단연 서울을 선호하니 기업들도 앞다퉈 서울에 ‘R&D 센터’를 짓고 인재 모시기에 혈안이다. 국내 인재뿐만이 아니다. 한국으로 몰리는 글로벌 인재들도 서울을 넘버원으로 꼽는다. 사람 탓만 할 수 없다. 연구개발비 비중도 서울과 인천, 경기를 비롯한 이른바 수도권이 압도적이다. 서울이 글로벌 R&D 메카로 자리 잡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LG화학 오창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라인 / LG그룹 제공
서울에 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 건립이 한창이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일대와 강서구 마곡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서초구 우면산, 양재 일대에는 이미 294개 기업이 R&D센터를 건립했거나 공사 중이고, 마곡단지는 55개 기업이 분양을 받아 대규모 R&D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비싼 부지 매입비를 부담하면서 서울에 R&D센터를 건립하는 이유는 단연 인재확보 차원이다. 연구인력들이 지방보다 서울을 선호한다는 것. 물론 근무지를 따라 지방근무도 고려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인센티브나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글로벌 인재들은 단연 서울이 우선 고려지역이다.
근무지는 생활과 거주의 근거지가 된다.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는다면 그 요구는 더 커진다. 문화와 복지, 교통의 중심인 서울은 떠나기 어려운 생활의 중심인 것이다. 특히 대학이 밀집해 있는 서울과 수도권 출신들에겐 선후배와 친구들이 있는 서울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인적 교류의 단절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서울에 R&D센터를 짓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차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이종산업 간 융복합 연구가 가능하고 본사를 비롯한 다른 부서와 협력해야 할 때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또 제품에 대한 반응을 볼 수 있는 가장 큰 시장도 서울이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대규모 R&D 단지가 입주한다는 소식에 지역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마곡지구 현장 부동산 관계자는 “매수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시세에 보통 1000만원에서 4000만원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고 인기가 높은 6, 7단지 로열동은 프리미엄이 1억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마곡산업단지 인근 중소형 아파트는 대부분 분양을 마쳤고 상가문의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서초구 우면 일대도 삼성이 R&D센터를 짓는다는 소식에 낙수 효과를 기대한다. 삼성이 들어오면 다른 기업도 들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R&D센터가 완공되면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종사자 등 1만 명의 인재가 상주하게 되고 인근에 LG나 KT, 현대기아차그룹 등 대기업 중심의 7만 명 배후 수요가 있다”면서 “서초보금자리주택 지구와 오피스텔도 잇달아 들어설 예정이어서 지역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우면에 들어설 삼성전자 R&D센터 조감도 / 서초구 제공
▲우면 R&D센터 한국판 실리콘밸리 되나
개발제한에 묶여 비닐하우스만 즐비하던 서울 서초구 우면산 일대가 대규모 공사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서초구는 지난 2005년부터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내에 첨단 R&D단지 건립을 위해 서울시와 건설교통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2010년 R&D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받았다. 이 일대는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신분당선, 양재대로와 고속버스, 시외버스터미널, 양재화물터미널 등 교통과 물류기반이 이미 들어섰고, 2016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과 강남구 수서동을 잇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와 우면산을 관통하는 서초터널이 완공되어 교통망이 확충된다.
삼성전자는 우면동 우면초등학교 인근에 서초동 삼성사옥 2.2배(약 5만9822㎡) 크기의 아시아 최대 규모 연구개발(R&D)센터를 짓기로 하고 2015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1조3000억원을 들여 지상 10층, 지하 5층 규모의 건물 6개동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수원과 구미, 기흥 등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연구인력 1만 명을 우면 R&D센터에 재배치해 융복합 연구개발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우면 R&D센터’는 기존의 딱딱한 연구소가 아닌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에 친환경 콘셉트를 적용해 첨단 연구소로 만들 예정이다. 우면산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자연 친화적인 명품 산책길과 조각공원 등을 조성해 기존마을 등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주변 주택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10층 높이의 방음막을 설치하는 등 공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쟁 입찰을 통해 SH공사에 2000억원을 주고 부지를 매입했다. 당초 건물 고도 제한이 4층까지여서 기업들이 외면했지만 용적률이 240%에서 360%로 건물은 4층에서 10층 이하로 건축기준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2010년 9조3800억원에서 2011년 10조2900억, 2012년 11조8900억원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컨설팅회사 부즈앤캠퍼니가 발표한 R&D 투자기업 중2위를 차지했고 IT분야에서는 독보적 1위다.
우면동과 인근 양재동 일대 반경 3km 내에는 연구인력 800명 규모의 LG 우면 R&D캠퍼스(전기전자 기초소재)와 연구인력 600명 규모의 KT연구개발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또 지난 2009년에는 연구인력 3500명 규모의 LG 서초 R&D센터(CTO조직, 디자인센터)가 들어섰고 인근 강남권에는 연구인력 2000명 규모의 LG강남R&D(TV), 양재에도 현대기아차 본사에 자동차 IT 분야 연구원 2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등 서울 내 다른 지역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지어 본사를 이전하고 양재동 사옥을 2015년부터 연구시설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서초구에는 876개(대기업 49, 중소기업 827)의 크고 작은 기업 연구소가 입지하고 있어 이 일대를 과학도시 특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에 들어설 LG사이언피스 조감도 / LG그룹 제공
▲강서구 마곡, “차세대 융복합 산업단지로 조성”
강서구 마곡지구는 서울의 마지막 남은 대규모 개발지구로 꼽힌다. 그동안 인근 김포공항 때문에 논이나 주택 등만 있던 이곳이 변하고 있다. 마곡동과 가양동, 공항동, 내외발산동 일대에 336만5000㎡, 여의도 면적 1.3배,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6배에 달하는 주거, 산업단지, 대규모 공원 등이 조성되고 있는 것. 서울시는 “마곡 R&D산업단지는 미래지향적 성장산업이 집적되고 쾌적한 연구환경을 완벽하게 갖춘 차세대 융복합 산업단지로 조성되고 있어 R&D 계획이 있는 기업들이 원하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마곡산업단지에는 2014년 4월 현재 LG, 대우조선해양, 이랜드, 에쓰오일, 코오롱 등 55개(대기업 31, 중소기업 24) 기업이 계약을 완료했다. 지금까지 산업단지의 분양 대상 면적 73만887㎡ 가운데 39만500㎡,54%가 매각된 상태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LG는 2020년까지 17만여㎡(약 5만3000평) 부지에 ‘LG 사어언스파크’를 조성하기로 하고 3조원 이상 투자한다. 이곳에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주력 10개사 R&D센터를 건립해 2만여 명의 연구인력을 상주시킨다는 계획이다. LG는 이미 기업 환경이 동종 산업 내 경쟁에서 벗어나 이종산업 간 결합이 활성화된 컨버전스 시대에 돌입함에 따라.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전자분야, LG화학과 LG생활건강 등 화학분야, LG유플러스와 LG CNS 등 통신서비스 분야 계열사들이 한데 모여 제품 및 기술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서로 역량을 융복합해 차별화된 제품이나 기술 등을 창출하기 위한 R&D 단지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에너지 솔루션과 친환경 자동차 부품 등 차세대 성장엔진 사업분야에서 융복합 시너지 연구와 미래 원천기술 확보의 장으로 ‘LG 사이언스파크’를 육성할 방침이다. LG는 마곡산업단지가 해외 접근성이 뛰어나 글로벌 핵심 인재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고 무엇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6만1000㎡ 부지에 2017년까지 7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공학 연구시설인 ‘R&D 엔지니어링센터’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대우해양조선은 서울본사와 거제조선소, 강남과 당산동 연구소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설계 및 R&D 연구인력들을 한데 모으고 인재 확보도 좀 더 쉽게 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2020년까지 조선과 해양, 플랜트, 에너지 분야리를 아우르는 세계 최고의 종합중공업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이랜드그룹도 2015년까지 섬유와 친환경, 식품원료 및 신재생에너지의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이랜드R&D센터’를 개발한다. 이랜드는 이곳에 대지 면적 3만2099㎡에 지상 8층, 지하 4층으로 연면적 18만5818㎡ 규모로 R&D센터를 건축한다. 이랜드는 글로벌 패션 사업을 중심으로 의∙식∙주∙미∙휴∙락의 6대 사업 영역에 걸쳐 R&D 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도 정유 및 석유화학 하류부문 사업의 핵심역량인 R&D 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마곡산업단지에 석유화학 기술센터를 짓기 위해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에쓰오일은 2012년 기준 매출액이 34조7000억이 넘는 외국투자기업으로 2019년까지 연면적 10만㎡ 규모의 TS&D(기술서비스&개발) 센터를 건립하고, 석유화학 기초소재 관련 연구를 기반으로 자동차, 가전제품, 정보기술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소재개발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코오롱은 코오롱인터스트리와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글로텍 등 3개 업체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1만8502㎡를 분양받았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1만5638㎡ 규모로 입주한다.
호서텔레콤은 IT 인프라 구축 및 디지털 방송장비 전문기업으로 관련 분야의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확보하고, post-hd급 방송장비를 중점적으로 개발해 방송장비의 국산화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유한테크노스도 수출입 물류 프로세서에 RFID를 적용한 국제물류 통합 플랫폼전문회사로 관련기술의 첨단화 및 차세대 대체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의 스마트 글로벌 물류 IT솔루션 전문기업으로 발전한다는 목표다.
이 밖에도 마곡지구에는 55개 기업이 R&D센터를 세워 약 7만 명이 근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