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은주 시집 {우체국 가는 길} 출간
곽은주 시인은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고, 시집으로는 {숲은 너에게 동화가 있느냐고 묻는다}, {금강 랩소디}, {풋사과 머뭇거리다}가 있다. 곽은주는 교사로서의 은퇴하고, 현재 세종시에서 시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곽은주 시인의 {우체국 가는 길}은 네 번째 시집이며, 그의 시적 열정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곽은주가 걸어가는 길은 일차적으로 시를 향한 길이고, 시를 위한 길이다. 독자들로서는 그가 생성하는 시의 길에서 보다 새롭고, 보다 진지한 시의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훤칠한 굴참나무 그늘
작은 냇물 따라
돌의 고요처럼
가랑잎은 땅을 끌어안고
징검다리 하나씩 건너며
억새 쓰러져 덮인 채
한 곳으로만 멈추어 흐르는 소리
가막살나무 빨간 열매 달고
말갛게 바라보는데
아직 받는 이 쓰지 못한 봉투
징검다리 하나씩 건너며
흐르다가
망설이다가
―「우체국 가는 길」 전문
곽은주의 입장에서 이 시는 이번 시집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는 시의 제목과 시집의 제목을 동일하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가다’, ‘건너다’, ‘흐르다’, ‘망설이다’ 등의 동사들과 깊은 관련성을 맺는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과시하는 이번 시는 “길”과 “땅”과 “징검다리”와 “한 곳” 등 다양한 대상이나 공간을 지향한다.
무엇보다도 시인이 주목하는 공간은 “우체국”일 수 있다. 그녀는 “아직 받는 이 쓰지 못한 봉투”를 들고서 우체국으로 향하는 것일까? 봉투 속에는 특별한 편지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로서는 아직 쓰지 못한 편지, 이제 곧 써야 할 편지를 상상하게 된다. ‘받는 이’를 독자로서 이해하고, 편지를 ‘시’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편지로서의 시가 이렇게 탄생한다.
자줏빛 풀 걸어오면
깊고 고운 들꽃일 거다
줄기 서걱거리는 갈색 마른 풀 걸어오면
깊고 고운 들꽃일 거다
빨간 열매 아니라도 실망은커녕
가슴 두근거릴 거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해도
가슴 두근거릴 거다
사실 이미 다 사위어졌다 해도
서성이며
이미 다 떨군 빈 가지라 해도
서성이며
기다릴 거다
―「깊은 가을 더 깊어질 것이다」 전문
곽은주는 이 시에서 다양한 동사들을 도입한다. 그녀는 ‘깊어지다’, ‘걸어오다’, ‘두근거리다’, ‘서성이다’, ‘기다리다’ 등 다채로운 동사들을 수집한다. 시인이 다양한 동사들을 수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사람일 수 있다.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인물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전진하는 삶, 조금씩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곽은주의 시를 읽어야 할 테다.
시인은 반복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는 “~풀 걸어오면”, “~ㄹ 거다(~ㄹ 것이다)”, “해도”, “서성이며” 등의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이 시의 리듬감을 극대화한다. 곽은주는 작품의 음악성을 최대화함으로써, 이 시를 주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시 「깊은 가을 더 깊어질 것이다」를 읽으며 깨닫는다. 인내심을 갖고 서성이며 기다리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깊어지는 순간에 도달할 것이다.
누군가 길을 낸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짐승이 걸어가고/ 바람도 햇빛도 길을 걸었고/ 방황하며 맴돌아/ 제 자리 도는 잠자리/ 잠자리 따르던 사람도 묵묵히 걷는다// 처절해서 전설이 되었듯/ 모래와 번개에도 길이 있잖아/ 바꾸어 걷지 말고/ 하나의 길/ 하나의 길을// 사람이 따라가는 길/ 풀 옷 입은/ 바람이 앞서가며 휘파람 분다
―「길」 전문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시와 문학과 예술 영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곽은주의 좋은 시는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아낸다. 시 「길」은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아내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시인이 이번 시에서 주목하는 대상은 “길”이다. 그녀에 의하면 ‘길’은 “사막”과 대비되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사막’은 생명이 부족하거나 부재하는 곳이다. 반면 ‘길’은 생명과 생명이 공존하거나 생명과 생명이 소통하는 곳이다.
곽은주에 의하면 ‘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과 자연을 포괄한다. ‘길’은 “바람”, “햇빛”, “모래”, “번개”, “짐승”, “잠자리”, “사람” 등이 “방황하”고, “걸어가”는 공간이다. 시인에 따르면 사람은 “묵묵히 걷는다” 우리는 “바꾸어 걷지 말고/ 하나의 길/ 하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긴요한 것은 쉼 없이, 묵묵히 걷는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 “바람이 앞서가며 휘파람” 부는 환상적인 풍경과 조우하게 될 테다.
고통 그쳐 눈뜨는 아침 파랑새가 난다/ 폭설 치는 3월/ xy 수치에 간직된 파랑새 난다//
아픔과 추위여/ 함몰되어/ 입술 창백해지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바람 스칠 때 아픈 심장이여/
함몰되어/ 길을 파묻고/ 주먹만 한 시간을 펼쳐/ 가만히 서성이게 하는 폭설/ 순백의 얼굴로 찌르는 얼음 결정체여/ 함몰되어//
고통 잠잠히 물러난 아침/ 좌표의 오류를 건너온 프로메테우스 불꽃의 화학식/ 파랑새가 난다/
소중한 것은 마침내 날개가 있다
―「마이신 폭설」 전문
새로움을 향한 도전은 예술의 숙명일 수 있다. 시의 새로움은 발견이나 발명에서 유래할 수 있다. 곽은주의 시 역시 새로움을 향한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녀의 이번 시는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면모를 제공한다. “마이신 폭설”이라는 표현은 독자들의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이신 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폭설’이 “얼음 결정체”로서의 눈을 강조한 단어라고 할 때, ‘마이신 폭설’은 폭설을 강조한 표현일 수 있다. 시인이 선택한 ‘마이신 폭설’은 ‘얼음 결정체’로서의 눈을 거듭 강조하는 특별한 표현인 셈이다.
곽은주의 ‘마이신 폭설’은 “고통”, “아픔”, “추위”, “오류” 등의 현상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매섭고 폭력적일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폭설’ 또는 ‘얼음 결정체’의 주위에 “마이신”, “xy 수치”, “좌표”, “화학식” 등 낯선 영역의 표현들을 배치함으로써, 새로움을 장착한 시를 생산하였다. 특히 그녀가 선택한 “파랑새(가) 난다”, “소중한 것은 마침내 날개가 있다” 등의 표현은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진정한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풀이 있어 생명 잃지 않듯/ 그리움 있어 좌절하지 않는다// 얼음이나 뜨거운 불이 옭아맸어도/ 붓끝에 머문 침묵 싹 틔워// 풀이 씨앗 날리듯 그리움 희망이 된다/ 꽃잎 반짝임// 작아도 너무 작은/ 누군가 그리워 지켜낸 별이다
―「별꽃」 전문
이 시의 제목으로 사용된 “별꽃”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석죽과의 두해살이풀이다. 곧 곽은주에 의하면 ‘별꽃’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잡초이다. 별꽃은 원래 평범한 풀이나 잡초일 수 있으나, 이번 시에서 시인이 탐구하는 별꽃은 평범한 풀이나 잡초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곽은주의 ‘별꽃’을 ‘별’과 ‘꽃’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이 시에서 주목하는 어휘에는 ‘별’, ‘꽃’, “풀”, “씨앗”, “꽃잎” 등이 있다. 시인은 꽃, 풀, 씨앗, 꽃잎 등 식물 관련 단어들에 별을 연결함으로써, 이 시의 시공(時空)과 분위기를 특별한 방향으로 이끈다.
이번 시에서 특별한 꽃으로서의 ‘별꽃’은 “얼음”과 “뜨거운 불”이라는 대조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리움”이나 “희망”이라는 긍정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곽은주는 “붓 끝에 머문 침묵”의 “싹”을 “틔워”, “별”을 지키고, “생명”이라는 이름의 “반짝임”을 지향한다. 그녀가 생성하는 그리움, 희망, 생명의 언어로서의 시는 소중한 이들을 향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곽은주가 이번 시집 {우체국 가는 길}에서 펼치는 시 세계는 ‘자연’과 ‘인간’과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시들에서 인간은 자연과 조화롭게 등장한다. 시인의 시편에서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발산한다. 곽은주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그녀가 기록하는 개성적인 언어로서의 시는 문학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의 시는 문학이자 미술이며 음악이다.
곽은주의 시는 설명하기 힘든 주술이자 마술이며 마법일 수 있다. 시 「흩어지는 바람」에는 “먼 곳”과 “억만 겁”이 제시되고, 시 「별꽃」에는 “별”이 제공된다. 그녀가 자신의 언어로 추구하는 공간과 시간과 대상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우리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심오한 세계로 빠져든다. 그 세계는 아마도 ‘영원’이나 ‘무한’의 상태와 닮았을 것이다.
곽은주 시집 {우체국 가는 길}, 도서출판 지혜, 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