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피난살이 하시던 그 엄혹한 환경에서 만난 곽노필 엄덕문 두 지우들의 간증 그리고 범냇골 움 막집의 삶.
원리원본이 집필되는 간증! 몇번이고 읽으시면서 아버님의 그 심정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엄덕문 씨의 이 같은 증언은 그 당시 아버님이 얼마나 눈치를 보시면서 더부살이를 이어가셨는지 알게 된다.
엄씨는 아버님의 언행을 통해서 ‘문 선생은 내 친구가 아니고 내 선생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위대한 성인이고 또 철인(哲人)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버님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하였고, 모든 일에서 아버님을 우선하고 공손하게 대하였다.
엄씨는 피란민 냄새가 나는 점퍼 모습의 아버님에게 최고의 예로 대하였다. 엄씨가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은(銀) 그릇을 잘 닦아서 아버님이 쓰시도록 하고 아내의 식기를 엄씨가 사용하였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엄씨가 몇 번이나 아버님이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보아온 것도 그 요인 중의 하나였지만, 그 이상으로 아버님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엄씨는 아버님을 ‘재림한 예수’로 믿고 있었다.
이즈음 아버님은 부산의 제3 부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밤에는 부두에서 일하고 낮에는 남의 집 처마 밑이나 산에 올라가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서 쉬었다.
아버님이 흥남수용소에서 제자가 된 김원덕(金元德) 씨와 만나서 그의 집에서 생활한 것이 1951년 4월 하순이다.
아버님은 이 집에서『원리원본』을 1951년 5월 11일부터 쓰기 시작하셨다.
이『원리원본』은 5권의 노트와 같은 것에 연필로 가로쓰기로 쓴 것이다. 아버님께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사상을 정리한 것이었다. 이 책을 다 쓴 것이 다음 해인 1952년 5월 10일이었으니 딱 1년 걸려 쓴 것이 된다.
아버님이 『원리원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일을 엄덕문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 장짜리 갱지에 연필로 썼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썼을까요. 난필(亂筆)로 너무 빨리 쓰기 때문에 옆에서 김원필 선생이 연필을 깎고 있었는데 다 깎은 연필을 문 선생에게 드리면 또 계속하여 써서 연필을 깎는 것이 쓰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노동일을 하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떠들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했다. 방 칸막이로 두 칸을 만들었는데, 창은 가운데에 하나 밖에 없으니까 뚝 뚫려서 방은 두 개지만 하나 같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더 산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집터를 찾고 그 곳에 움막집을 짓게 된 것이다. 그곳이 범냇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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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버님 부산 피난살이 & 범냇골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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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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