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5,1-4ㄱ; 히브 10,5-10; 루카 1,39-45
+ 찬미 예수님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어요? 날도 춥고 길도 미끄러운데 성당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느덧 대림 제4주일입니다. 제대 앞의 대림초 네 개가 모두 켜졌습니다. 12월이 어떻게 갔는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라는 주님 말씀이 참으로 진리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무서운 논의가 오가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우리는 미카 예언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미카는 기원전 8세기경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당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는 권력가들이 놀랄 정도로 쉽게 매수되고, 재판관들은 진실과 공정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른 판결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카 예언자는 불행이 예루살렘에 닥치고 있는 것을 내다보며,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으로부터 희망이 온다고 예언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고을은 두 개가 있었는데요, 그중 다윗이 태어난 마을을 지칭하기 위해 제1독서는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라고 부릅니다.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이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데, 사실 대단히 위험한 예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유다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혈통으로 다윗의 후손인데, 이스라엘을 다스릴 진정한 다윗의 후손이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미카의 예언은 맞았습니다.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통치하던 다윗 왕조는 바빌론에 의해 끝장이 났고, 주님의 백성은 이제 새로운 다윗의 후손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화를 가져오는 분이실 뿐 아니라, 당신 자신이 평화이신 분이십니다.
미카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은 나자렛에 살던 시골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입니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를 들은 후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갑니다. 성모님께서 이렇게 서둘러 길을 떠나신 것은, 주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오시는 성모님을 보고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여인들 가운데에서 복되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두 차례 나오는데요, 우선 판관기에서 여자 판관 드보라가 헤베르의 아내 야엘을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다”(판관 5,24)라고 노래합니다. 야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가나안의 장수 시스라를 죽인 인물입니다.
또한 유딧기에도 “그대는 이 세상 모든 여인 가운데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이”(유딧 13,18)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는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유딧에게 원로인 우찌야가 한 말입니다.
야엘과 유딧의 용기와 지혜, 결단력이 성모님과 닮았습니다. 야엘과 유딧은 주님의 백성을 괴롭히던 적장들을 죽인 여성들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시초부터 인류를 괴롭혀오던 ‘불순명’이라는 적장을 물리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사벳은 야엘과 유딧에게처럼 성모님께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며”라고 노래합니다. 성모님께서 이 두 여인처럼, 당신의 안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길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엘리사벳은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라고 외칩니다. 우리도 엘리사벳의 인사를 반복합니다. 언제일까요? 바로 성모송을 바칠 때입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엘리사벳은 이어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하고 경탄하는데요, 이 인사 역시 성모송에 들어 있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는 바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입니다.
우리는 성모송을 바치면서,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고 기도할 때, 성모님께서 당신을 하느님의 도구로 내놓으셨음을 칭송하며, 우리도 본받으려는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또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이라고 부르면서 엘리사벳처럼 깜짝 놀라야 하겠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께서 제 말씀을 들어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하고 말입니다.
엘리사벳의 인사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로써 엘리사벳은 “복되시다”는 인사를 예수님께 한 번, 성모님께 두 번 드리게 됩니다.
우리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는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되다’라고 인사할 때는 언제인가요? 세상 사람들은 이웃이 승진이나 진급했을 때, 자식이나 손주가 합격했을 때, 집값이 올랐을 때, ‘어머 웬일이니, 너무 잘됐다’ 하며 축하 인사를 합니다. 때로는 진심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모님께 ‘하느님의 도구가 되셨으니 복되십니다.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행복하십니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인사를 받고 계신 성모님만 복되신 것일까요? 성모님께 이렇게 인사드리는 우리도 복되지 않은가요? 이러한 처지가 복되다고 고백하고 있는 우리도, 이것이야말로 진심으로 축하드릴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우리도 복되지 않은가요? 우리는 성모송을 바치면서 성모님께 ‘복되시다’라고 말씀드릴 때, 그렇게 기도드리고 있는 나 자신 역시 복되다는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신 성모님의 순종 안에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순종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2독서의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히브리서의 이 말씀은 시편 40장을 인용한 말씀인데요,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으로 “주여, 이 몸이 당신 뜻을 따르려 대령했나이다.”라는 말씀으로 화답송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이 말씀을 무척 좋아해서 자주 암송했는데요, 군대에서 대령 진급을 앞둔 중령님들이 대단히 좋아하시는 말씀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여, 이 몸이 당신 뜻을 따르려 대령했나이다.”
한강 작가의 ‘흰’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은과 금,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광물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걸까? 일설에 의하면 물의 반짝임이 옛 인간들에게 생명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빛나는 물은 깨끗한 물이다. 마실 수 있는, 생명을 주는 물만이 투명하다. 사막을, 숲을, 더러운 늪지대를 무리 지어 헤매다가 멀리서 하얗게 반짝이는 수면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느낀 건 찌르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생명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는데요, 반짝이는 보석이 값비싸게 취급되던 이유는, 반짝이는 물이 생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물은 마시면 죽고 어떤 물은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반짝임이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반짝임 그 자체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 별이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마음 안에서 반짝이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멀리서 보고 자신 안에 있는 반짝임이 성모님 안의 반짝임을 알아보고 뛰노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세상이,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아직도 하느님의 부르심이 세상 안에, 우리 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지, 혹시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올 한 해 내 마음 안의 반짝임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거기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혹시 내가 드린 응답이,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신다면,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 안에 오신다는 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 한 가운데에, 그리고 우리 한 가운데 반짝이는 빛으로 오시며 우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를, 우리가 거기에 협력할 은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https://youtu.be/9U3gl1VKMb4?si=2EuGnRfE8G9YwimW
가톨릭 성가 514번 "주여 대령했나이다"
마리오또 알베르띠넬리,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 1503년
출처: File:Mariotto Albertinelli - Visitation - WGA0129.jpg - Wikimedia Commons
첫댓글 오랫만에 본당신부님 건강한 목소리로 강론을 듣게 되어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할께요 ^^
감사드립니다~~ 성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