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을 올려다보는 일, 꿈을 꾸는 일
―곽은주의 시 세계
권온
폭발적인 시적 열정
곽은주는 누구보다도 시작(詩作)에 열중한다. 그녀가 시인으로서 등단한 시기는 2020년이다. 그동안 곽은주는 3권의 시집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하였다. 그녀는 2021년에 시집 숲은 너에게 동화가 있느냐고 묻는다를 출간하였고, 2023년에 시집 금강 랩소디를 간행하였으며, 2024년에는 시집 풋사과 머뭇거리다를 펴내었다.
곽은주는 교사로서의 오랜 생활을 은퇴하고, 인생의 2막에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녀의 시심(詩心)은 쉽게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를 닮았다. 2026년에 4번째 시집 우체국 가는 길을 출간하는 곽은주의 시적 열정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이 글은 곽은주 시 세계의 핵심에 다가서려고 노력할 예정이다. 이번 시집의 주요 시편들을 점검함으로써, 우리는 시인의 최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고, 그녀가 조성하는 언어의 춤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곽은주가 걸어가는 길은 일차적으로 시를 향한 길이고, 시를 위한 길일 테다. 독자들로서는 그녀가 생성하는 시의 길에서 보다 새롭고, 보다 진지한 시의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름다운 편지로서의 시와 음악, 주술, 마술, 마법으로서의 시
곽은주는 4번째 시집을 펴냄으로써, 불과 6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시집 4권을 연속적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그녀의 시를 향한 이토록 지독한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필자는 무모하리만치 폭발적인 곽은주의 시적 열정을 시인의 구체적인 시들 속에서 찾아보고 싶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것들의 정화를 위해
먼저 검은 구름이 나의 죄를 상세하게 알렸다
우레는 무섭게 혼을 내더니
번개로 몰아붙여 하얗게 떨었다
장대비는 후회의 눈물로 꽂혀
놓쳤던 얼굴들
아쉬움의 강 이루고
순례길 향하여 가더니
파도에 낱낱이 드러내며 부서졌다
한 번은 하얗게 쓸고 가기를 바라던
아끼는 찻잔, 수 놓은 커튼 어쩌면 화단
그것들 허영의 바닥에 깔린 소원
빈손 향한 카타르시스였다
―「깊은 장마」 전문
‘비’ 또는 ‘물’은 이 시에서 긴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대상이다. 곽은주가 설정하는 ‘비’ 또는 ‘물’은 “장마”, “장대비”, “눈물”, “파도”, “강” 등의 어휘로 구체화된다. ‘장마’의 ‘빗방울’이 시적 화자 “나”의 ‘눈물’과 연결되는 대목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시 「깊은 장마」에서 독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어에는 “정화”와 “카타르시스”가 있다. 시적 화자 ‘나’에게는 “허영”과 연결된 “죄”가 있었을 것이고, ‘나’는 “후회”를 피하기 어려웠을 테다. ‘나’는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위해서 “순례길”의 여정에 접어들 수 있고, “빈손”이라는 목표에 다가설 것이다. “구름”, “우레”, “번개” 등이 불러오는 ‘장대비’ 앞에서도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정화와 카타르시스의 단계를 거친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감미롭지 않다 해서
죽음이 감미로운 것은 아니다
구름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
바라보는 여름 저녁
호수를 가로지르는 물결
쓰디쓴 미소 떠나 물살 저어오는 배
긴 볕 아직 남아
수련잎 찰랑
간혹 검고 차가운 오필리아가 고혹적으로 누워있어
죽음이 달콤한 손짓 해도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몸
물살의 날개
너의 호흡
일지도 않은 바람 살랑여 하늘거리는
빛으로 가득 찬 발코니의 여름
사라지지 않는 얼마나 완벽한 색채인가
―「호수에서의 여름」 전문
곽은주가 이 시에서 주목하는 바는 “사는 것” 또는 ‘삶’일 수 있다. 그녀에게 삶 또는 ‘사는 것’은 “죽음”과 대비되어 이해되는 대상이다. 시인에 의하면 ‘죽음’은 “달콤한 손짓”과 연결되는, “고혹적으로 누워있”는, “검고 차가운 오필리아”이다.
우리는 “사는 것이 감미롭지 않”을 수 있다는, 1연 1행의 곽은주의 언급에 동의한다. 삶에서 감미로운 순간은 극히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 감미로운 것은 아니다”라는 1연 2행은 독자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죽음이 감미로움과 단절되어 있는 반면 삶은 감미로움과 감미롭지 않음 사이에서 방황한다. 인간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에서 감미로운 순간들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이번 시에서 “구름”, “호수”, “볕”, “빛”, “수련잎”, “물살” 등 ‘자연’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기꺼이 포섭한다. 그녀에게 사는 것이란 “사라지지 않는”, “완벽한 색채”를 꿈꾸는 일이고, “구름으로 충분한 날”을 즐기는 일이다. 우리는 곽은주의 이 시를 읽으며 “호수에서의 여름”을 수용하고, “빛으로 가득 찬 발코니의 여름”을 음미하는 것이 삶이자 인생임을 깨닫는다.
육천 원짜리 백반집 기다리다 객쩍은 남자
왜케 옛날 노인네들 애를 많이 낳으셨대
정이 좋았나벼 하니
두견일랑 살던 첩첩 산골 할매
쭈그렁 주름에 웃음기도 없이
나 살려고
실한 청국장을 박박 긁어 먹고
송기떡 한 봉 사 들고 오며
애를 어찌 나 살려 낳을까 아리송한데
니 안 낳으려고 간장도 퍼먹고 별짓 다 해도 니가 살았지
하던 엄니의 땀 흐르는 적삼이 흐늘흐늘
떼구르르 굴러도 보았다는 막막한 언덕길
꺼칠한 물박달나무
시뻘건 황토 언덕에 꽂혀
병원도 먹을 것도 없는 넓은 하늘
니가 살려고
내도 니도 칡꽃 마냥
피는 줄도 모르는 넝쿨뿌렁인갑디
―「고령 장날」 전문
이 시의 등장인물로서의 “남자”는 “고령 장날”에 갔다. ‘남자’는 “육천 원짜리 백반집”의 “첩첩 산골 할매”에게 “왜케 옛날 노인네들 애를 많이 낳으셨대/ 정이 좋았나벼” 라고 질문한다. 남자는 “나 살려고”라는 ‘할매’의 참신한 대답에 놀라면서 기억 속 “엄니”를 생각한다.
‘엄니’ 또는 어머니는 언젠가 아들에게 “니 안 낳으려고 간장도 퍼먹고 별짓 다 해도 니가 살았지”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여자의 삶을, 여성의 인생을 생각한다. 곽은주가 바라보는 여자의 인생은 “나 살려고”와 “니가 살았지” 사이에서 움직인다. 엄마로서의 ‘나’와 아이로서의 ‘너’는 각자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나’는 ‘너’를 낳지 않으려고 간장도 퍼먹고, “떼구르르 굴러도 보았”으나, “니가 살려”는 노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쩌면 “옛날” 여자들은 애를 많이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 또는 상황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 애를 낳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여자는 애들을 낳았고, 태어난 애들도 스스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을 테다. 시인에 의하면 “내도 니도 칡꽃 마냥/ 피는 줄도 모르는 넝쿨뿌렁인” 셈이다. 이 시는 피는 줄도 모르는 채, 그냥 피어난 꽃 같은 존재로서의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곽은주의 눈부신 헌사이다.
훤칠한 굴참나무 그늘
작은 냇물 따라
돌의 고요처럼
가랑잎은 땅을 끌어안고
징검다리 하나씩 건너며
억새 쓰러져 덮인 채
한 곳으로만 멈추어 흐르는 소리
가막살나무 빨간 열매 달고
말갛게 바라보는데
아직 받는 이 쓰지 못한 봉투
징검다리 하나씩 건너며
흐르다가
망설이다가
―「우체국 가는 길」 전문
곽은주의 입장에서 이 시는 이번 시집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는 시의 제목과 시집의 제목을 동일하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가다’, ‘건너다’, ‘흐르다’, ‘망설이다’ 등의 동사들과 깊은 관련성을 맺는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과시하는 이번 시는 “길”과 “땅”과 “징검다리”와 “한 곳” 등 다양한 대상이나 공간을 지향한다.
무엇보다도 시인이 주목하는 공간은 “우체국”일 수 있다. 그녀는 “아직 받는 이 쓰지 못한 봉투”를 들고서 우체국으로 향하는 것일까? 봉투 속에는 특별한 편지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로서는 아직 쓰지 못한 편지, 이제 곧 써야 할 편지를 상상하게 된다. ‘받는 이’를 독자로서 이해하고, 편지를 ‘시’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편지로서의 시가 이렇게 탄생한다.
자줏빛 풀 걸어오면
깊고 고운 들꽃일 거다
줄기 서걱거리는 갈색 마른 풀 걸어오면
깊고 고운 들꽃일 거다
빨간 열매 아니라도 실망은커녕
가슴 두근거릴 거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해도
가슴 두근거릴 거다
사실 이미 다 사위어졌다 해도
서성이며
이미 다 떨군 빈 가지라 해도
서성이며
기다릴 거다
―「깊은 가을 더 깊어질 것이다」 전문
곽은주는 이 시에서 다양한 동사들을 도입한다. 그녀는 ‘깊어지다’, ‘걸어오다’, ‘두근거리다’, ‘서성이다’, ‘기다리다’ 등 다채로운 동사들을 수집한다. 시인이 다양한 동사들을 수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사람일 수 있다.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인물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전진하는 삶, 조금씩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곽은주의 시를 읽어야 할 테다.
시인은 반복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는 “~풀 걸어오면”, “~ㄹ 거다(~ㄹ 것이다)”, “해도”, “서성이며” 등의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이 시의 리듬감을 극대화한다. 곽은주는 작품의 음악성을 최대화함으로써, 이 시를 주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시 「깊은 가을 더 깊어질 것이다」를 읽으며 깨닫는다. 인내심을 갖고 서성이며 기다리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깊어지는 순간에 도달할 것이다.
누군가 길을 낸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짐승이 걸어가고
바람도 햇빛도 길을 걸었고
방황하며 맴돌아
제 자리 도는 잠자리
잠자리 따르던 사람도 묵묵히 걷는다
처절해서 전설이 되었듯
모래와 번개에도 길이 있잖아
바꾸어 걷지 말고
하나의 길
하나의 길을
사람이 따라가는 길
풀 옷 입은
바람이 앞서가며 휘파람 분다
―「길」 전문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시와 문학과 예술 영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곽은주의 좋은 시는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아낸다. 시 「길」은 단순하고 소박한 구도 속에서 바른 방향을 찾아내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시인이 이번 시에서 주목하는 대상은 “길”이다. 그녀에 의하면 ‘길’은 “사막”과 대비되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사막’은 생명이 부족하거나 부재하는 곳이다. 반면 ‘길’은 생명과 생명이 공존하거나 생명과 생명이 소통하는 곳이다.
곽은주에 의하면 ‘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과 자연을 포괄한다. ‘길’은 “바람”, “햇빛”, “모래”, “번개”, “짐승”, “잠자리”, “사람” 등이 “방황하”고, “걸어가”는 공간이다. 시인에 따르면 사람은 “묵묵히 걷는다” 우리는 “바꾸어 걷지 말고/ 하나의 길/ 하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긴요한 것은 쉼 없이, 묵묵히 걷는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 “바람이 앞서가며 휘파람” 부는 환상적인 풍경과 조우하게 될 테다.
고통 그쳐 눈뜨는 아침 파랑새가 난다
폭설 치는 3월
xy 수치에 간직된 파랑새 난다
아픔과 추위여
함몰되어
입술 창백해지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바람 스칠 때 아픈 심장이여
함몰되어
길을 파묻고
주먹만 한 시간을 펼쳐
가만히 서성이게 하는 폭설
순백의 얼굴로 찌르는 얼음 결정체여
함몰되어
고통 잠잠히 물러난 아침
좌표의 오류를 건너온 프로메테우스 불꽃의 화학식
파랑새가 난다
소중한 것은 마침내 날개가 있다
―「마이신 폭설」 전문
새로움을 향한 도전은 예술의 숙명일 수 있다. 시의 새로움은 발견이나 발명에서 유래할 수 있다. 곽은주의 시 역시 새로움을 향한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녀의 이번 시는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면모를 제공한다. “마이신 폭설”이라는 표현은 독자들의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이신 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폭설’이 “얼음 결정체”로서의 눈을 강조한 단어라고 할 때, ‘마이신 폭설’은 폭설을 강조한 표현일 수 있다. 시인이 선택한 ‘마이신 폭설’은 ‘얼음 결정체’로서의 눈을 거듭 강조하는 특별한 표현인 셈이다.
곽은주의 ‘마이신 폭설’은 “고통”, “아픔”, “추위”, “오류” 등의 현상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매섭고 폭력적일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폭설’ 또는 ‘얼음 결정체’의 주위에 “마이신”, “xy 수치”, “좌표”, “화학식” 등 낯선 영역의 표현들을 배치함으로써, 새로움을 장착한 시를 생산하였다. 특히 그녀가 선택한 “파랑새(가) 난다”, “소중한 것은 마침내 날개가 있다” 등의 표현은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진정한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올 것만 같아
곧 올 것만 같아
분수처럼 터져야 오는 봉우리
흙 꽃 번지는 벌판
넓게 울리는 함성
강 이쪽
별 하나씩 하나씩 담아
강 이쪽
머무는 기도 하나씩 하나씩 옹글 져
갈 것만 같아
곧 갈 것만 같아
별빛 아래 호올로 봉오리
별 꽃 고즈넉한 벌판
선선한 바람 스침
강 건너
놓고 갈 순간들을 노래하며
강 건너
짧은 노을 황홀히 황홀히 기쁨 져
―「강」 전문
곽은주가 이번에 주목하는 시적 대상은 “강”이다. 그녀가 이 시에서 선택한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사물이나 대상과 연결되면서 거대한 자연 현상을 이루고 있다. 시인이 주목한 ‘강’은 “바람”, “별”, “꽃”, “봉오리”, “볕”, “노을” 등과 이어지고 공존하며 소통하면서 커다란 “기쁨”을 생산할 수 있는 계기이다.
이번 시의 핵심 대상으로서의 ‘강’은 긴요한 기준이자 좌표일 수 있다. ‘강’은 ‘오다’와 ‘가다’를 가르는 기준이고, “이쪽”과 “건너”를 나누는 좌표이다. 누군가는 오고, 누군가는 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다. 누군가는 “강 이쪽”에 있고, 누군가는 “강 건너”에 있는 것이 인생의 상황이다. ‘강’은 “순간들을 노래하”는 “황홀”한 감정의 배경이다. 곽은주가 “봉오리”를 반복하고, “~것만 같아”를 되풀이하는 일은 아름답다. 그녀는 “강 이쪽”을 반복하고, “강 건너”를 되풀이함으로써, 이 시를 음악으로 만들고, 주술로 이끌며, 환상적인 마술과 마법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독자들은 시인이 조성하는 음악, 주술, 마술, 마법으로서의 시를 차근차근 즐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흐르다 무슨 꽃 되어
어느 모퉁이에선가 기어이 만나지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불어가니 꽃씨를 날려 보내야 하고
바람을 믿음으로 꽃씨를 날려 보내야 한다
정처 없이 한 톨의 죽음마저 묻어버려
새봄은 어리숙하니 먼 곳에 맴돌 뿐이어도
억만 겁 겹치어 무엇으로 필시 만나지리라
그것만이 운명은 아닐 거다
온 들에 홀로인 꽃
온 하늘 흩뿌려진 별을 담담히 맞이해야 한다
―「흩어지는 바람」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대상들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순수한 상태로 고양한다. “바람”, “꽃”, “꽃씨”, “들”, “하늘”, “별” 등의 대상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순수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이번 시는 “믿음”과 “운명”과 “죽음” 등이 구성하는 인생의 삼각형 사이에서 “먼 곳”과 “억만 겁”을 형상화한다. ‘나’와 ‘너’가 어우러지면서 “우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만나지는 것은 아니”지만에서 “만나지리라”로 움직인다. ‘우리’가 꿈꾸는 “새봄”은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희망일 것이다. ‘운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 때,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별’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테다.
풀이 있어 생명 잃지 않듯
그리움 있어 좌절하지 않는다
얼음이나 뜨거운 불이 옭아맸어도
붓끝에 머문 침묵 싹 틔워
풀이 씨앗 날리듯 그리움 희망이 된다
꽃잎 반짝임
작아도 너무 작은
누군가 그리워 지켜낸 별이다
―「별꽃」 전문
이 시의 제목으로 사용된 “별꽃”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석죽과의 두해살이풀이다. 곧 곽은주에 의하면 ‘별꽃’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잡초이다. 별꽃은 원래 평범한 풀이나 잡초일 수 있으나, 이번 시에서 시인이 탐구하는 별꽃은 평범한 풀이나 잡초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곽은주의 ‘별꽃’을 ‘별’과 ‘꽃’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이 시에서 주목하는 어휘에는 ‘별’, ‘꽃’, “풀”, “씨앗”, “꽃잎” 등이 있다. 시인은 꽃, 풀, 씨앗, 꽃잎 등 식물 관련 단어들에 별을 연결함으로써, 이 시의 시공(時空)과 분위기를 특별한 방향으로 이끈다.
이번 시에서 특별한 꽃으로서의 ‘별꽃’은 “얼음”과 “뜨거운 불”이라는 대조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리움”이나 “희망”이라는 긍정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곽은주는 “붓 끝에 머문 침묵”의 “싹”을 “틔워”, “별”을 지키고, “생명”이라는 이름의 “반짝임”을 지향한다. 그녀가 생성하는 그리움, 희망, 생명의 언어로서의 시는 소중한 이들을 향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3. 별을 올려다보는 일, 꿈을 꾸는 일
필자는 이 글에서 곽은주의 4번째 시집 우체국 가는 길을 점검하였다. 그녀는 원래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2020년에 시인으로서 등단한 이래 곽은주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그녀에게 시 쓰기는 삶의 의미 찾기와 다른 말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시인은 시를 생산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인물일 것이다. 그녀는 다수의 시편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작품의 예술성도 상당히 높아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곽은주가 이번 시집 우체국 가는 길에서 펼치는 시 세계는 ‘자연’과 ‘인간’과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시들에서 인간은 자연과 조화롭게 등장한다. 시인의 시편에서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발산한다. 곽은주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그녀가 기록하는 개성적인 언어로서의 시는 문학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의 시는 문학이자 미술이며 음악이다.
곽은주의 시는 설명하기 힘든 주술이자 마술이며 마법일 수 있다. 시 「흩어지는 바람」에는 “먼 곳”과 “억만 겁”이 제시되고, 시 「별꽃」에는 “별”이 제공된다. 그녀가 자신의 언어로 추구하는 공간과 시간과 대상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우리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심오한 세계로 빠져든다. 그 세계는 아마도 ‘영원’이나 ‘무한’의 상태와 닮았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언젠가 ‘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발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별을 올려다보는 것을 기억하세요.(Remember to look up at the stars and not down at your feet.)” 필자는 스티븐 호킹의 언급을 곽은주의 시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별을 올려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또한 별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곽은주의 시를 읽으며 별을 올려다보고 꿈을 꿀 수 있는 날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필자 : 권 온(문학평론가, 문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