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3-5-5. 노송 이서우
계해년(개도50년 1923년) 11월에 시좌侍坐 하였더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몇 해 전 경신년(개도 47년 1920년) 봄 2월에 오겸수, 오희지 등이 침입하여 강도질을 한 후에 오히려 부족하여, 어떤 자가 대전 경찰서에 밀고 하여 말하기를 ‘이 아모가 상해 임시정부에 내통한다’ 하는 고로 정사복 경찰관 사오 명이 와서 대전에 가기를 청하거늘, 동행하여 구즉면 방골 불무산 위에 이르러 나는 중방리(현 금천리 2구)방면으로 향하여 왔으되, 경관들이 일절 묻지 않고 일행이 신탄을 향하여 갔느니라” 하시다.
그 당시에 성사께옵서 어느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후에 과연 49일이 된즉 마땅히 무사히 해결되리라” 하시더니, 과연 49일만에 강도 오희지 등이 체포되어 허위로 고발한 사실이 판명되어 해를 입은 증인으로서 공주 지방법원 검사국에 출두하라는 통지가 있어 자연히 해결되니, 아는 자들이 모두 성사님께서 신인이라고 말을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