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우뚝우뚝 키를 세운 것들이 보인다. 상아탑을 향한 입시 관문을 시작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취업의 문과, 기를 쓰고 닿으려는 부와 명예와 저마다 꿈꾸는 무지갯빛 문. 어찌 보면 생이란 일상의 문을 여닫으며 미지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연장선일 수도 있겠다. 문의 너머는 늘 비밀스러운 것이다.
까마득한 어느 시간 속을 더듬어 간다. 꽃잎처럼 앳된 두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다. 초등학교를 나란히 붙어 다니다 같은 여중에, 진학을, 한 단짝이다. 새 배움터에서도 머리를 맞댄 채 까만 눈을 반짝이는 호기심과 까르륵 넘어가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런데 여중 이 학년을 채 마치기 전이었던가, 한 소녀가 그만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포장마차 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도와 맏이인 그녀가 어린 동생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드넓은 세상을 향해 갓 싹트기 시작한 꿈을 여지없이 꺾여 버린 소녀에게, 포장마차 앞을 지나다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얼마나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을까. 내가 여고를 막 졸업하던 해에 훌쩍 시집을 가 버린 친구다.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손자 손녀에겐 할머니인 그녀가 올봄에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단다. 이제 부끄럽지 않은 이력을 지녔다면서 떳떳한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한 줄 글이 안겨 준 감격을 잊을 수 없다며, 현실이 꿈인가 싶다고도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살짝 들뜬 봄기운 같았다.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나는 한참 동안 그녀의 목소리를 붙들고 있었다. 너무 일찍 방향이 휘어 버린 그녀의 삶이 편안할 리 있었겠는가. 20대 중반쯤의 어느 날, 큰아이 손을 잡고 나타났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때 털어놓은 이야기는 한순간 세찬 빗물에 떠밀려 간 꽃잎의 내력처럼 아린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전문대 졸업의 학력에 여덟 살 연상이며 외모 훤칠하고 무직인 남자의 구애에, 서슴없이 뛰어들었던 그녀다,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무직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몸에 익은 포장마차 식당으로 두 아이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졌던 친구다. 그녀가 늘 바라만 봤던 학업의 문, 친구의 그 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 아련한 기억 속 풍경들이 하나씩 교차하는 영화 장면을 금방 보고 난 듯하다. 친구는 지금 복지관 아이들의 한문 강사를 하면서도 다른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그녀가 강의하고 있는 시립도서관 ‘한자 사범 반,’수강생들의 인원수를 가늠해 보며, 나는 제과점에서 소프트 도넛을 스무 명분쯤 포장했었다. 고소한 냄새가, 베어나는 도넛 상자를 쇼핑백에 담아놓고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한 시간 청강을, 했다. 내내 눈에 들어온 건 강사의 얼굴이 아니라 내 친구, 영락없는 소녀라는 것이 내게 얼마만큼의 신선함이었는지…….
그녀는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한다. 절박한 삶의 문을 하나씩 여닫으며 지치기도 아프기도 했던 긴 시간을 지나, 다시 배움의 문에 들어선 그 친구에게 문 너머는 아직도 꿈, 희망, 끈기, 간절함, 이런 것들이 살아날 듯하다. 늦공부가 쉽지 않을 법한데 마냥 즐거워하는 얼굴이 눈앞에 다시 생생해진다.
사실 누구에게나 선망하는 삶의 문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은 빗장을 단단히 지른 채 우뚝 서서 때로 냉정하기만 하다. 그러기에 난공불락인 문 앞에서 사람들은 수없이 좌절을, 하고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배우기도 한다. 더러 처절한 배신을 당하더라도 일어서는 자에게만 허락된 문이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말이 아니어도, 혼신의, 힘으로 열게 된 문의 의미를 나는 안다. 지독한 소태맛으로 다져진 내공이니 새로운 의욕과 자신감만으로도 삶이 팽팽하지 않으리.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주춤하고 섰다. 누가 출입문을 용케 들어와 광고지 한 장을 붙여 놓았다. 곧바로 떼어내려던 손을 잠시 내리며 광고지가 붙은 문을 바라본다. 한데 여태 부동의 자세로 표정 하나 없던 문이 어쩐 일인지 원색 광고지처럼 울긋불긋해 보인다. 애초에 삶이 그런 것인가. 사나운 바람에 삐걱대고 덜컹거리던 문들이 떠오르고, 여기까지 헤쳐 온 내 시간의 파노라마들이 스쳐 간다. 그 모든 걸 응축하고 있는 문은 어서 들어오라는 눈치다.
숫자판을 열어 문과 나의 은밀한 약속 번호를 누른다. 파란 불이 들어온 숫자들이 깜짝깜짝 일어나 앉더니 마침내 찰가닥, 걸림 줄이 풀린다. 가끔은 감격하고 자주 노엽고 아프며 그러면서 포근한 보금자리를 지켜 준 문이 익숙한 멘트를 보내온다.
‘열렸습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다. 언제부터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자동인 것들 속에 나를 그만 놓아 버렸나. 끈 떨어진 무력한 마음은 어디까지 곤두박질치려나. 어느 영화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좋아하는 일은 불현듯 찾아오지 않으며 서툰 사랑을 찾아가듯 애타게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것. 그러면 점점 좋아지는 게 있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행복해진다는 것이, 이 나이엔 분명해진다는 거다.
혼신을 다하는 삶에는 항상 두근거림이 있다. 그 울렁거림은 가슴 뻐근하도록 의욕과 생기를 일으키고 영혼을 자라게 한다. 문 앞에 선 사람들은 누구나 한때는 그랬다. 곡절 많고 눈물 흥건하며 웃음 또한, 한 보따리인 세상인데 문 앞에 설 때엔 누구라도 서로를 충전시켜 주는 ‘소녀 시대’이면 얼마나 좋을까. 문은 삐걱대고 여닫히며 치열함을 잃지 않는 손님을 받아들이고 싶을 터이다. 그만큼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며칠 후 그녀와의 점심 약속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친구 분 께서 대단하십니다. 늦 공부란 쉬운게 아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