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다에 갔다. 요즈음 무엇이 바쁜 지 일주일에 두 세 번 가던 바다도 못 갔다. 마주한 바다는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흰 거품을 뿜으며 파도는 닿을 듯 밀려왔다 멀어져가며 내 마음을 씻어주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아 토요일에는 잘 안나오는 데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 나왔더니 역시 어른 아이들이 경주라도 하듯 자전거 행렬이 줄지고 개들도 뛰어다니며 신이 났다.
가족도 아닌 데 뚱보의 부고는 내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오늘 뚱보를 향한 내 마음을 파도에 실어 보내고 싶어서 왔는 지 모른다. 나는 살면서 기쁨도 슬픔도 파도에 실어 보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바다를 마주하고 한참 서서 바라보며 꺼내 놓는다. 그러노라면 파도가 싣고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돌아와 내게 속삭여준다. "괜찮아, 큰 일이 아니란다" 하면 어느 새 내 마음의 무거움이 사라지곤 한다.
거칠고 높은 파도를 타는 서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바다위를 마음껏 저어 가며 고개를 젖히고 밀려오는 파도를 기다리는 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뚱보를 기리며 바라보는 바다위로 언젠가 보았던 서퍼의 이별식이 그려졌다.
그날은 차를 세울 곳이 없게 주차장이 가득 찼다. 남편과 나는 무슨 행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왔거니 생각하고 차를 세운 뒤 한참을 걸어갔다. 멀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모래위에서 이별식을 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꽃을 한송이씩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큰 젊고 잘 생긴 모형을 안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사람들이구나 생각되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예배가 끝난 후 사람들은 피어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그들과 섞여 걸었다. 모래위에서 예배를 드린 서퍼 100여명이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로 간 서퍼들은 둥근 원을 만들었다. 잠시후 그들은 마치 음률을 맞춰 춤을 추듯 보드를 두드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보트는 때를 맞춰 물기둥을 뿜어주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힘찬 물기둥은 쌍 무지개를 만들어 하늘에 펼쳐졌다. 보드를 두드리며 한참을 빙빙 돌던 그들이 갑자기 고함을 쳤다. 인디언이 전쟁을 나가기 전 외치는 소리였다. 와와와,, 외치며 들고있는 보드를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기를 반복한다. 왼쪽으로 돌다 오른쪽으로 돌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디에서도 보지못한 이별식이다. 마지막으로 보드를 들고 헤엄치느라 손에 꽃을 들 수 없어 등 뒤 지퍼에 꽃 한송이를 꽃고 나간 그들이 일제히 꽃을 꺼내 바다에 던졌다. 피어에 있던 조문객들도 들고있던 꽃을 일제히 바다에 던졌다.
서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료 서퍼들이 마음을 다 해 바다에서 배웅하는 모습은 무어랄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바다에서 떠나는 길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리도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며 보낼까 싶어 옆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하와이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신 데 서퍼들의 길잡이가 되어 젊은이들과 어울려 함께 파도를 타며 존경받던 분이라고 했다. 많은 서퍼들이 그분의 마지막을 함께 하려고 먼 곳에서 헌팅턴 비치에 왔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죽으면 이곳에 벤치 하나 만들어주고 나는 바다에 뿌려줘. 피곤한 사람도,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게. 당신도 아이들도 내 생각나면 와서 앉아 잠시 머물다 가면 되잖아" 했다. 남편은 "여자가 10년은 더 산다는 데 무슨 소리야" 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언제 세상을 떠나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님을 아니기에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오늘 우리는 자주 앉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의 품은 언제나 변함없이 넓다. 우리의 아픔도 기쁨도 원망도 모두 받아주며 평안을 되돌려준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를 보고있으면 나는 작은 아이가 된다. 저 넓은 바다에 내 한 몸 실어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인 데 무엇이 그리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단 말인가? 오늘도 바다는 내 마음에 아픔으로 남은 뚱보와의 이별을 감싸주며 내게 감사만을 안겨준다.
첫댓글 말의 씨앗을 아시나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말만 해도 모자라는 오늘입니다
오늘 하루만 열심히 재밌게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