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상록수를 집필한 심훈 선생의 삶을 엿보기 위해 심훈기념관과 필경사에 방문했습니다. 심훈기념관 옥상으로 올라가면 심훈 동상과 시비가 있어요. 시비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것으로, 비에는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 새겨져 있어 심훈선생의 문학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심훈선생은 농촌계몽문학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데 크게 공헌한 작가이자 시인이며, 배우, 영화감독, 신문사 기자 등 다재다능한 예술인의 삶을 사셨는데요.
그의 후손 및 여러 관계자들이 심훈 선생의 삶을 당진에서 되살리기 위해 유물을 기증하고, 이를 선별하여 한 자리에 모아 심훈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심훈기념관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요. 동절기에는 1시간 일찍 문을 닫습니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및 설날 명절은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예요. 오늘은 특별히 오경옥 문화관광해설사가 심훈선생 관련 스토리텔링을 들려줘 심훈선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시관 내부은 간결하게 시 작법 구성방식인 기승전결 4단계로 구성되어 있어 심훈 선생과 그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데요.
가장 먼저 '기 - 민족의식의 태동' 부분부터 관람합니다.
이곳에서는 심훈 선생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심훈은 1901년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출생하여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입학합니다.
'승 - 저항의 불꽃'에서는 3.1만세운동 참여와 수감생활, 좌절과 극복기를 담고 있어요.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시 3.1운동에 참여합니다. 이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하고 체포되었다고 해요. 심훈은 서대문형무소 투옥 중 '감옥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을 지어 독립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더 강화했습니다.
심훈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했는데요. 1921년 항주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해 연극을 공부하며 연극과 영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 - 희망의 빛'에서는 귀국 후 대중매체를 통한 문화 및 영화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26년 순종의 국장이 준비되고 있는 돈화문 앞에서 '통곡 속에서'를 읊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합니다.
1927년에는 영화 '먼동이 틀 때' 원작, 각색, 감독하여 단성사에 개봉합니다.
'결 - 그날이 오면'에서는 작품세계의 결정체 항일저항 문학의 최고 금자탑인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심훈은 1930년 독립의 기쁜소식을 알리고 싶은 소망을 담아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합니다. 또한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를 조선일보에 연재했으나 검열에 걸려 중단되었다고 해요.
1932년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한 후 1933년에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합니다. 1934년엔 '직녀성'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붓으로 농사를 짓는다'라는 뜻을 담아 필경사를 직접 설계해 건축했다고 해요.
그리고 1935년 장편소설 '상록수'을 동아일보에 연재합니다.
1936년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마지막 작품으로 발표하고 장티푸스로 인해 36세로 사망합니다.
상록수는 농촌계몽운동에 나선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신문에 연재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해요. 또한 일제강점기 농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농촌계몽운동 정신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상록수 속 주인공인 박동혁과 채영신은 당시 마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던 장조카 심재영과, 경기도 반월의 샘골마을에서 농촌운동을 했던 최영신이 모델이라고 해요.
디지털 자료로 심훈 선생님의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되어 있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방문하셔서 작품 감상도 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심훈기념관◇
주소: 충남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105
• 운영시간: 09:00 ~ 18:00 (하절기)
09:00 ~17:00(동절기), 12:00 ~ 13:00(점심시간)
• 입장료 : 무료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1, 설날 및 추석
• 문의 : 041-360-6883
심훈기념관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보면 필경사가 있는 넓은 잔디와 함께 조형물들이 보입니다.
필경사는 남남동향으로 'ㅡ'자형 초가지붕 아래 목조기둥으로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벽체는 황토를 발라 전형적인 농촌의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내부 평면은 1930년대 도시주택의 기능에 맞추어 생활에 편리하도록 전면과 측면에는 유리창을 달아 전통적인 세살창을 단 것보다 내부를 밝게 처리했습니다. 밖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을 각 방면에 두고 있는데 현관을 비롯하여 부엌, 안방, 그리고 사랑방에 각각 문을 두어 설계했다고 합니다.
또한 마루방과 사랑방 외부에 작은 베란다를 설치하여 화분을 놓도록 배려한 것은 설계자의 섬세한 마음을 엿보는 듯한데요.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모습은 농촌마을 경관에 어울리게 한국의 전통적인 외관을 유지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90년전 지은 건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스런 공간이었습니다.
만능 예술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짧은 생애를 사신 심훈 선생의 야국정신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서 문학으로, 예술로 만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는데요.
심훈기념관과 필경사를 관람하며, 일제강점기의 척박했던 시대에 땅에서 붓으로 땅을 일구신 심훈선생의 불꽃같은 예술혼과 문학 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