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핵심인 사랑의 원리
마가복음 10:41~45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지난주에 설교 제목은 <나의 나됨으로 돌아가기>였습니다. 나의 나됨이란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영원한 나됨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루기를 원하시는 뜻을 성취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사람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욕구를 5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하위 단계의 욕구에서 출발하여 점차 욕구가 채워지면 그 위의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4번째 단계가 자기존중의 욕구인 인정요구를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먹을 것이 풍성하고 에덴동산같이 안락한 곳에서 별걱정 없이 산다 해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침울해지는 것이 사람의 욕구라는 것입니다.
이런 욕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형제가 “주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열 제자가 보인 반응에 대하여 막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본문에 쓰인 ‘화’는 ‘분개하는 것’으로 헬라어 원문에는 ‘아가나크테인, ἀγανακτεῖν’ 이라고 하는데 이는 몹시 분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 명 모두가 크게 화로 감정을 표출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격분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면 자기들도 얼마든지 그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왜 너희가 먼저 앞장서서 가로채려고 하는가에 대한 마음의 질투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 앉느냐? 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도 상좌에 앉으려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또한, 자리는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통치자의 좌우편은 대단한 자리가 아닙니까? 모두가 눈독 들이는 자리입니다. 아마도 다른 제자들도 은근히 그 자리를 노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그 자리를 요구한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한 감정이 생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자기들의 욕구에 의한 나 됨을 추구하고 이루려고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의 이런 모습에 대하여 예수님은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는 자기 것은 전혀 없습니다. 자기를 모두 비우고 초점을 내게 맞춘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맞추셨습니다.
대학교수와 전직 부총리를 지내셨던 한완상 박사님이 지으신 <바보 예수>란 책에서 진정한 예수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보이신 바보스러움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박사님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그는 바보스러운 결단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큰 부자가 될 수 있었고, 세상의 영화를 누릴 기회, 그리고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을 모으고 그들을 움직이므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이를 모두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것을 지키고 할 수만 있으면 남의 것도 내 것으로 삼는 것이 똑똑하고 지혜로운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사셨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바보처럼 말입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땅에 속한 생명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복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움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시므로 온 우주의 모든 것의 으뜸으로 세워지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장차 들어가 될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사랑이 핵심이고 이 사랑의 능력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이를 누리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더해가는 것이 땅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예수님을 본받아 천국에서 존귀한 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천국의 핵심인 사랑의 원리를 본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참사랑을 알기 위하여 거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는 참사랑은 섬기는 자가 될 때 이뤄지며 셋째는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참사랑을 알기 위하여 거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막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집권자는 자기의 의도대로 주관하고, 지도층에 있는 고관들은 자기의 아랫사람들을 자기 멋대로 부려먹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집권자들이 피지배국 사람들에게 행한 포악한 짓은 정도를 벗어나기까지 하였습니다. 게다가 종교지도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 바리새파 제사장 그룹, 사두개파, 서기관이나 랍비들도 그러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특권인 양 착각을 하여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그분의 사랑을 보이고 사랑하시고 사랑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오래 기다리시고 참으며 스스로 결단하여 사랑에 반응하도록 하였지 억지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제게 상담을 의뢰한 분이 계셨습니다.
참 단아하고 예쁜 외모를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 자기의 순결을 강제로 잃었고 마지못해 결혼하였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긴 머리가 좋으니 길러야 한다고 하였고, 투피스보다는 원피스를 입으라고 하는 등 수없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빌미로 간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화가 걸려오면 누구에게 온 것이냐 묻고 수시로 자신의 전화에서 통화 내용을 살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분은 그런 남편에게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에 더욱 사랑하고 싶어서 그렇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자기를 정당화하였습니다.
이런 집착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 사람이라고 하여 내 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어주어 상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편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여러 가지 습성이 다를 수 있고,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고치려 하지도 말고 기다려주며 상대의 장점을 살려주어 다독거리며 참아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시 103: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래 기다리고 참으시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죄의 늪에 빠졌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나를 존중한다면 상대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참사랑의 원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씀하셨습니다.
막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 가운데 스스로 자신을 높여 상좌에 앉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주인이 와서 “당신보다 높은 분들이 오셨으니 내려 앉으시지요.” 하면 얼마나 망신스러운 꽁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낮은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이 와서 “아니 이렇게 존귀한 분이 여기 앉으셨습니까? 이리로 올라앉으시지요.”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훈훈한 모습을 보일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낮은 자리에 내려와야 상대가 보이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아래로 사람을 내려다보는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누구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앞둔 청년들은 너무 잘난 사람을 구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나의 위치에서 나는 이만큼 대우를 받아야 하고, 이만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늘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눈높이에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사랑하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져야 상대가 보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습니다.
잘난 사람끼리 만나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네가 먼저 굽히고 나를 사랑하라고 서로 요구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의 관계가 이뤄지겠습니까? 평생을 함께 살면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불만만 늘어갔습니다.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는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무의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가 돋보이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나는 천국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낮은 자리로 몰리게 하신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로 참사랑의 원리는 사람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이란 헬라어 원문에서 ‘둘로스, δοῦλος’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권리와 자율권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복종시키는 노예를 말합니다. 지난 시간에 레드 오션은 치열한 경쟁으로 치고받고 하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블루 오션으로 경쟁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 아닌 나의 나됨으로 인하여 이뤄짐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가지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종의 모습으로 섬길 때 천국에 속한 사랑의 원리를 이 땅에서 실현하고 내 영혼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혼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느라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 농촌에서 목회할 때에 한 목사님의 은퇴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10여 명이 채 되지 않은 성도들이 모은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으시면서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은퇴식 이튿날 뭐가 그리 급하셨던지 40년간 머무셨던 허술한 사택에서 1톤 트럭에 남루하기 그지없는 짐을 싣고, 가는 곳도 밝히지 않으시고 훌쩍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분은 40년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 교회를 섬기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성도들의 형제, 부모와 그리고 보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밤중이라도 교인이 아프다고 하면 읍내까지 모시고 가서 치료해드릴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때로는 “무능하다, 답답하다, 주변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등 비난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오직 한 길을 달려오셨던 그 목사님은 텅 빈 배로 목회를 마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초라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분의 영혼에는 주님의 풍성함이 배여 있을 것이라 저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세상 사람처럼 치열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고 낮은 자리에 머물러 종의 모습으로 내 것을 다 잃었다 하더라도 천국의 핵심인 사랑의 원리가 내 안에서 이뤄졌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성공을 거둔 자요. 천국에서 큰 자라고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