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8장 맞는 말, 틀린 주장
---(팟캐스트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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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천수답의-새벽묵상-욥기8장/
나쁜 의도로 하는 맞는 말은 결국은 틀린 주장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나쁜 의도는 숨기고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종 맞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쁜 의도로 시작한 맞는 말은 오히려 틀린 말보다 훨씬 위험하고 고약한 말이다.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3, 7)
이 성경절들은 우리가 자주 듣고 즐겨 암송하는 구절들이다. 그러나 이 구절들이 의인 욥의 발언 가운데 있지 않고 그의 친구들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의 발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것은 욥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려고 빌닷이 사용한 구절들이다. 말은 맞는데 틀린 주장에 사용되었다. 말이 맞다 하여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빌닷의 논리는 욥의 재난은 그와 그의 아들들의 죄로 기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틀리거나 잘못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욥 8: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욥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욥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빌닷의 조언은 마치 어느 점잖은 목사님의 설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맞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 하지만 빌닷은 맞는 말들은 했을지 몰라도 그는 가정부터 빗나간 틀린 주장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재난들이 다 죄에 대한 심판으로 닥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의 결말이 이 세상으로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간과한다. 마지막 죽을 때까지 세상적 관점으로 보면 불행하게 죽을 의인들이 많다. 침례요한의 삶은 절대 해피엔딩의 스토리가 아니다. 의인들도 병들어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고 선한 사람이 사고사로 죽기도 한다. 그러나 빌닷은 모든 재난의 원인을 죄를 지은 까닭이라고 확정함으로 그는 출발부터 틀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 다 옳은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뭐, 내가 틀린 말 했나?”라고 항변한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맞는 말을 옳지 못한 의도나 잘못된 주장을 하는데 사용한다. 빌닷이 그랬다. 맞는 말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욥 8:11~13).
그는 계속해서 그럴 듯한 이야기로 욥의 형편을 공격한다. 그가 비유한 왕골이나 마르는 풀들은 욥을 은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을 욥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 다가 아니다. 말 보다 말 속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 세상에는 말은 맞는 말이나 그 말이 사람을 죽이는 말이 허다하다. 천상유수처럼 맞는 말만 골라서 하지만 그 속에 비수를 감추고 듣는 이들로 하여금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도록 유도해서 자신을 정당화 하고 상대를 깎아 내리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사단의 영적 하수인들에 불과한 사람들이다. 잘못 하다보면 우리들의 말이 빌닷의 말 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를 먼저 순결하게 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의도가 주님의 사랑의 원칙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십시오.
우리도 듣기 좋은 말, 호리는 말에 미혹되지 않게 하시고
원수들의 그럴싸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듣고 행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