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원폭 수첩」 평설 / 강순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는 일제 식민 지배 영향 하의 한국 여성의 수난과 전통적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의 한국 여성의 실존에 대한 자각과 연민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편들은 서발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아픈 곳을 깊이 후벼 파는 송곳 같다. 나아가 아픈 지점에 찔린 송곳 끝에 묻어 나오는 붉은 핏방울과 살점 같다.
밀려오는 복통으로 잠 못 이뤄 퉁퉁
부은 두 다리 주무르는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원폭의 밤
칠흑 같은 어둠 저 너머
소녀는 실려가고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사십만 목숨이
일거에 도륙되던 그날
번쩍이는 섬광 눈부신 불길이 오르고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미치게 살 타는 비릿내
구역질 나는 거리
폐허의 거리를 트럭은 시체를 싣고
미처 숨 놓지 못한 목숨들도
마구 싣고
바다에 버리고 불로 태우고 구덩이에 묻던
원폭의 도륙보다 더 짐승 같은
도륙 속에
트럭 꽁무니에 매달려 애원하던 소녀
온몸에 불을 뒤집어쓰고
남은 숨 모두어
통곡하던 소녀
살려주세요 난 아직 안 죽었어요
학도보국대 미쓰비시 군수공장 잡역부
검은 몸뻬 목노발
검은 밥에 소금국
눈부신 꽃세월 마른버짐으로 피어나던
조선 소녀여
—허수경, 「원폭수첩 2」 전문
그는 첫 시집에서 「원폭수첩」 연작 7편을 통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소녀”가 원폭 피해자가 되어 죽게 되거나, 살아서 돌아와서도 피폭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문제가 현실 속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여기서 그는 송곳을 들고 우리 역사의 아픈 지점을 콕콕 찔러대며 핏방울과 고름과 비명을 공감각적으로 재현해낸다. 이는 이름 없이 죽어간 약자들의 아픈 서사(敍事)와 비명(非命)의 채록이다. 때문에 송곳을 찌르는 자와 송곳에 찔리는 자는 모두 슬픔과 연민의 구덩이에 빠져 우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원폭수첩 1」에서는 원폭의 고통으로 “양귀비 먹고 아련히 취하”고 싶은 심정을 호소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피력하는 일본 히로시마 지하부품공장의 원폭 피해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위의 「원폭수첩 2」와 「원폭수첩 3」에서는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원폭의 피해 현장에서 “트럭 꽁무니에 매달려 애원하는 소녀”가 작중인물로 나온다. 여기서 “조선 소녀”는 원폭 피해의 비극성을 표출하는 데 있어 시인이 그 처참함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퍼소나이다. 즉, 그의 시에서 “조선 소녀”는 가장 아픈 송곳의 비명(悲鳴)을 품고 있는 서발턴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더 약한 여성인 데다가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보호받아야 할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이 힘과 권력을 상실한 시기인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끌려가 피폭이라는 잔혹하고 처참한 현장을 몸소 체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폭수첩 3」에서 「원폭수첩 7」에 걸쳐서도 “조선 소녀”와 같은 처지의 서발턴 퍼소나들의 비명과 신음은 계속 이어진다. 그들은 “치료 한 번 못 받고 버림당한 김 씨”, “원폭갤로이더로 사지무기력증”에 걸려 뱃속의 아이를 “유산”한 “최 여인”, 피폭의 고통을 달래며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마약”이라는 진통제에 의존하는 “마약 상습복용자 마약전과 2범”, “날품을 팔고” 와서 “원폭 배냇병신 딸”의 “오줌똥 범벅” “더럽혀진 속곳을 씻”는 ““기진한 어미”, “지리산에 원폭의 식구들을 묻어두고” “백혈병 삭신”을 끌어 “외상”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피폭 피해자들이다.
이 외에도 그는 첫 시집에서 「조선식 회상」 연작시 14편,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연작시 4편 등을 통해서도 날카로운 송곳을 줄곧 거침없이 들이민다. 그리고 가장 수난받으며 가장 소외되고 배제된 서발턴 퍼소나들을 한 명씩 현재로 호명하며 애도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나 조선, 근현대사가 바로 우리의 현재임을 말하는 그의 시쓰기 방식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서발턴의 통증과 그에 대한 연민을 형상화함에 있어 ‘슬픔’이라는 미학적 성취를 획득한다. 이에는 “조국”으로 대변되는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함의되어 있다. 이렇게 그의 시는 “조국”으로 대변되는 지배권력이나 공동체가 지켜주지 못한 서발턴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애도를 환기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송곳에 찔리는 고통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송곳을 든 자와 송곳에 찔리는 자 모두는 울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송곳에 찔리는 고통을 감수해 낼 때 그의 송곳도 위의(威儀)를 세워 시적인 의의(意義)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의 송곳은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애도하는 것이 사랑의 숭고한 가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결국 허수경의 시는 참혹하고 아픈 상처를 후벼파는 송곳을 든 채 슬픈 문체를 우아하게 선보이는 웅변의 방식이 된다.
-시전문지 《아토포스》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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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출생 1964년, 경남 진주시
사망 2018년 10월 3일 (향년 54세)
데뷔 1987년 실천문학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등단
강순 /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 『크로노그래프』,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 『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현재 수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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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보국대 미쓰비시 군수공장 잡역부
검은 몸뻬 목노발
검은 밥에 소금국
눈부신 꽃세월 마른버짐으로 피어나던
조선 소녀여
—허수경, 「원폭수첩 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