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반공(反共) 국가였다. 그 후 1960년대 초기에 동아시아에는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다. 1961년 한국에는 박정희장군이 군사 쿠테다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1965년 필리핀에는 반미주의자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장군은 군 시절 공산당에 가담한 전력이 있어 우려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정책을 이어받아 '반공을 국시(國施)'로 삼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농경정책을 산업화정책으로 탈바꿈하면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산업화 경제정책은 미완성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까지 3대가 이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발전의 한 시대로 보아야 한다. 공산주의 이념자들로부터 끝없는 음모와 선전 선동으로 공격을 받으면서도 강력한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경제발전에 성공한 것이다.
박대통령의 서거로 전두환 대통령으로 승계되면서 반공이념을 지향하고 경제정책을 완성시킨 것이다. 사회주의 이념자들이나 정권을 탐욕하는 자들은 독재정권이라 비판하지만 '옥동자를 낳으면서 피를 흘지않고 낳을 수 있느냐'는 속담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수를 썼다 해도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북한 김정일이나 김정은처럼 국민들을 배 골리면서 탄압하지 안 했다.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480 양곡(미 잉여농산물) 원조를 받아 보릿고개를 면하게 했고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는 경제성장률 연 12%의 고도성장과 2,5%의 저물가시대를 열었다. 그 덕에 박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300만 달러의 차관을 모두 갚았고 노태우 정부는 러시아에 차관을 빌려준 최초의 채권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은 지금도 전두환 대통령시대가 가장 살기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1950년대 한국전쟁의 특수효과를 노려 연 14,5%의 경제성장과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이때 우리나라 장충체육관도 필리핀이 무상으로 지어준 것이다. 그 후 필리핀은 1965년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와 반미주의로 일관했다. 그후 수빅만에 주둔한 미군철수 후 외국인 투자 기피와 부패로 인해 경제 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이 철수하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필리핀령 인스카보라섬을 강점했다.
필리핀이 빈국으로 전락하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십만여 명이 해외로 나가 파출부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7일 필리핀 파출부 100명이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필리핀 정부 공인 자격증을 보유한 24~38세 여성들로 4주간 특화교육을 받고 9월 3일부터 내년 2월까지 6개월간 한국가정에서 아동 돌봄 및 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고 월 238만 원을 받는다.
서울시의 시범사업은 내년 2월까지 진행되며 내년 본사업은 1200명이 추가 입국해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아세아 경제 대국이었던 필리핀이 지금은 파출부 수출국으로 전락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렇듯 국가 지도자를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興亡成衰)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범죄자를 지도자로 추종하는 정신나간 세력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지만 언제까지 영광을 누릴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세계 경제불황과 맞물려 우리 경제도 추락하고 있다. 이재명, 조국 같은 좌파 범죄자 일당들은 국정은 뒷전이고 정쟁만 일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