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익는 마을 책 이야기
황석영 소설 『할매』
새들이 떠났다
둥지에서 조물거리던 어린 새들이 서툰 날개짓을 하더니 훌쩍 떠나버렸다. 오늘도 나는 새가 남기고 간 빈 둥지를 보고 있다. 5윌 한 달 동안 어미 새 두 마리는 우리 집 식구들을 경계하느라 시끄럽게 울어 대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월세도 안 내면서 저것들이 깍깍대고 있다고 짐짓 성난 척 농담을 하곤 했다.
5월 초 어느 날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에어콘 실외기 사이 좁은 틈에 작은 나뭇가지가 몇 개 걸쳐져 있었다. 이상하다고 갸웃거리기만 하다가 며칠이 지나니,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제법 탄탄한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물까치라는 이름의 새가 종종 베란다 틈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 아파트 뒤에는 봉황산이 있어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자주 본 터라 이상할 것은 없었다. 우리 집에 둥지를 튼 새는 우리가 흔히 보는 까만 까치보다는 조금 작고 참새보다는 큰 새였는데, 회색 몸통에 푸른 빛을 띤 날개와 날렵하게 하늘로 치켜올린 푸른색 꼬리를 가지고 있는 예쁜 새였다. 이름을 알게 되자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 집이 물까치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게 무척 기쁘고 신이 났다.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는 내 팔 때문에 출근도 못하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참이라,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겨 즐거웠다. 둥지에는 어디서 물어왔는지 하얀 솜뭉치까지 깔려 있었다. 푹신함까지 더한 그야말로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물까치는 조그만 알을 낳기 시작하여, 며칠이 지나자 알이 여덟 개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어미 새는 내내 둥지에 앉아 알을 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집 베란다의 주인은 물까치가 돼 버렸다. 우리가 화분에 물을 주거나 빨래를 널려고 베란다에 나가면 곧바로 특유의 경계음인 께엑께엑 소리를 내며 바로 윗층 베란다 난간으로 날아가, 어김없이 울음소리를 내며 집주인인 우리의 출현을 경계했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세입자인 새에게 스트레스를 안 주려 며칠 베란다에 발걸음을 못하고 거실에서 유리를 통해 건너다보기만 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여덟 개의 알들이 부화해 있었다. 어미 새는 먹이를 구하러 나갔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고, 둥지에는 눈도 아직 못 뜬 아기 새 여덟 마리가 꼬물거리며 서로 밀착한 채 포개어 있었다. 아기 새들은 내가 여는 문소리에 주둥이들을 허공을 향해 벌리며 먹이 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기대하는 먹이가 들어오지 않자 새끼들은 금새 주둥이를 접고 서로를 의지한 채 잠을 청하듯이 얌전해지곤 했다.
어미 새는 하루에도 수 십 차례 벌레를 물어다 새끼들이 벌린 주둥이에 넣어주기 바빴다. 그렇게 암컷과 수컷이 연신 먹이를 물어다 준 덕에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보름 정도 지나니, 제법 모양이 갖춰진 새의 날개를 조그맣게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조만간 떠날 시기가 됐다는 뜻이다. 기특했다. 신기했다. 둥지를 튼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날개를 파닥거리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조물거리던 게 엊그제인데 어미 품을 떠나 이제 둥지에서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5월 말 드디어 어린 새 몇 마리가 공중으로 날았다. 아니, 날았다기보다 베란다 난간 좁은 창살들을 파닥거리며 옮겨 다니다 어느새 아래로 추락하듯이 떨어졌다. 우리 집이 7층이라 제법 높이가 있는데 아래로 내려가 확인을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그 어린 새들은 어떻게 됐을까? 잘 날아가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그렇게 추락하듯이 한 마리, 두 마리 둥지를 떠난 물까치들은 아기 새도, 어미 새도, 항상 경계를 하던 수컷 아빠 새도 다시는 베란다 둥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둥지를 없애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다. 혹시나 비라도 오면 비를 피하러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할매 팽나무
새들을 떠나 보낸 후, 올해 5월 독서모임 때문에 읽었던 소설책을 꺼내 다시 읽었다. 물까치와 함께 지낸 후라 그 느낌이 달랐다. 도입부에 50쪽이 넘게 할애한 팽나무와 개똥지빠귀 새 이야기는 우리 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여 보금자리를 만들고, 아기들을 길러냈던 물까치들을 연상케 하면서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600년 동안 팽나무를 스쳐간 새들과 동물들, 그리고 한때는 서낭나무로 인간들의 소망을 담은 기도의 간절함을 기억하는 할매 팽나무, 근대에 와서는 어부들이 배를 묶어두는 계선주 역할을 담당했고, 마을의 버팀목이 되었던 600년 팽나무는 군산 하제마을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사라질 기로에 섰던 적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반발과 서명운동으로 가까스로 2021년 전북특별자치도의 기념물로 지정되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한다. 2024년 10월에는 천연기념물로 승격되면서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나, 2005년 미군기지의 탄약고가 들어서면서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를 시켜 사람은 살지 않게 되었고, 팽나무만 덩그라니 쓸쓸히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새들의 보금자리와 열매, 주민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팽나무가 미군 군사기지로부터 훼손되는 것을 막고, 하제마을을 지키려는 황석영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제마을
2026년 6월 하순, 하제마을 할매 팽나무를 드디어 만나고 왔다.하제마을을 지나는데 도로가에 길을 따라 철조망이 꽤 길게 쳐져 있어 군사시설이란 걸 짐작케 했는데, 그게 바로 미군기지 탄약고란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600년 팽나무는 굴곡진 세월을 살다 온 할매처럼 주름지고 패이고 뒤틀려 있었다. 왜 이 나무를 할매나무라 했는지 짐작이 갔다. 지금은 물이 들어온 흔적이 사라졌지만, 섬이었을 당시에는 할매나무 발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니 파도 소리를 상상해보려 눈을 감아 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과거 하제마을 어부들의 배를 지켜내느라 그 굵은 허리에 동아줄을 매고, 선박들을 정박하면서 패인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할매는 우리에게 원망도 푸념도 하지 않는다. 온화하게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볼 뿐...
책익는 마을 백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