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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이가 큰 기적을 만든다"
사무엘상 17장 26-37절
오늘 본문은 성경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다윗과 골리앗 하면 다들 들어봤다고
고개를 끄덕이죠.
사실 저는 일 년동안 할 주일 설교를
미리 라인업을 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시리즈 인데요,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에 이어
두 번째 인물인 다윗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주 전에 기름부음 받은 사건 기억하시나요?
소년 목동이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죠.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살던 곳은
해안에서 가까웠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왔죠.
그 소식을 듣고 사울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출격합니다.
그 중엔 다윗의 형들도 있었어요.
이스라엘은 20세 이상이면
군대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징집 대상이 되어
끌려나온 거죠.
이 두 나라의 군대가 마주한 곳이
바로 ‘엘라 골짜기’입니다.
만약 엘라 골짜기를 블레셋이 점령한다면
그대로 유다 산지를 넘어와
예루살렘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여기에 진을 치고 기다렸죠.
이쯤에서 우리가 잘 아는
거인 골리앗이 등장합니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었다고
나왔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2m 90cm정도 되는 키입니다.
적게 잡아도 2m 60cm니까
어마어마한 거인이었죠.
그런데 키만 큰 게 아니었어요.
전신무장을 하고 나왔는데
갑옷의 무게만 약 55kg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놋 투구와 놋 단창,
방패는 따로 든 자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어마어마한 몸집과 무시무시한 무기가
골리앗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헐크라고 해야할까요?
이걸 이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요?
골리앗의 겉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탈영병도 있었어요.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은 뭘하고 있었나요?
사람을 시켜서 대신 싸울 자를 찾아보라고 하며
텐트 속에 쥐죽은 듯이 숨어 있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왕이면 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나를 따르라”해도 모자랄 판에 숨어 있다뇨?
이 얼마나 무능한 왕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신가요?
우리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일을
만나기 마련이에요.
그게 보이는 대상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제가 처음 제 인생에 골리앗을 만났던 때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저희 어머니와 제 동생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시던 날이었어요.
그날 저녁 어머니가 휠체어에 앉아서
큰 병원으로 엠블런스를 타고 가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동생과 어머니는 환자로서 병원에 가셔야 했고,
아버지는 보호자 신분으로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셨죠.
저는 교회 집사님 댁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날 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계속 눈물이 나는 겁니다.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 고사대회와 찬양대회에서
상을 받고 오는 길이었는데,
지금 제 앞에 주어진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거든요.
도저히 이 상황에서 해답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습니다.
‘혹시 엄마가 평생 못 일어나면 어쩌지?
동생이 장애인이 되면 어떡하지?
아빠는 엄마 없이 못사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교통사고라는 거대한 골리앗이
저를 너무 두렵게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외웠던 말씀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몇 시간 전만 해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저였는데,
더 이상 찬양이 나오질 않았어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 저는 한 없이 작고
무능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겐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지고 물가가 오르니
지갑이 얇아지는게 걱정입니다.
대출은 받았는데 금리가 오르니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은 또 어떤가요?
아무리 좋은 것을 해줘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미안한 감정만 올라오는 게 부모의 마음이죠.
그러다보니 오히려 반항하는 아이를 보며
사랑보단 훈계가 먼저 나갈 때가 많아요.
‘넌 왜 너 해달라는 것만 많니?
엄마가 해준 건 몰라?’라며 속이 상하죠.
직장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두렵고 숨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골리앗을 만납니다.
그리고 골리앗 앞에 두려워 떨고 있죠.
때론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작은 차이가 큰 기적을 만든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제 다윗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간식을 전해 주러 온 다윗은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터에 온 10대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보며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함께 본문 26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17: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여기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뭐라고 합니까?
‘할례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하죠.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반면 이스라엘 군대는 어떤 군대라고 합니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주무시는 하나님도 아니고,
여행 떠나신 하나님도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며 기적을 베푸시는
전쟁에 능한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중요한 차이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정체성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누군지 알았어요.
다윗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였어요.
하나님의 군대는 사령관이 하나님이기에
두려워할 게 없었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대학원 시절 반별로 축구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상금도 있었고,
그걸 위해 몇 주씩 준비하는 반도 있었어요.
그런데 소문이 들리는 겁니다.
옆 반에는 대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하던 전도사님이 있다더라.
그러니까 또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옆 반에는 프로 축구 4부리그 출신도 있다더라.
이 소식을 듣고 다른 반들은 모두 긴장을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반이 경기를 하는 걸 보았는데
대단했습니다.
혼자서 한 두명은 그냥 제치고 골을 넣더라고요.
저는 혼자 생각했어요.
‘이번에 우리 반은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반 어떤 전도사님이
복된 소식을 전달해 줍니다.
그 말을 듣고 다들 기가 살았어요.
저희 반에는 프로 축구 2부 리그 지명까지 받은
선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전도사님이었는데,
알고 보니 평생 축구만 하던 분이었어요.
그리고 함께 축구를 했는데
메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몸짓 하나만 가지고
두 세명이 그냥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볼을 얼마나 쉽게 차던지
어떨 때는 넋놓고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전도사님이 저희 팀 주장을 맡았는데
그때부턴 어떤 반을 만나도 두렵지 않았어요.
그분께 공이 가면 무조건 해결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대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랑이 앞에서 강아지는 끽소리도 못합니다.
우리 함께 따라 합시다.
‘내가 누군지를 아는 작은 차이가
큰 기적을 일으킵니다.’
두 번째 차이는 사울 왕과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사울 왕이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 자신 앞에 세우죠.
사울 왕은 골리앗과 싸울 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등장할지 내심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보단 덩치도 있어야 하고,
용맹스러운 눈빛이라든지,
준비된 칼 한자루는 있을 거라 생각했겠죠.
그런데 텐트 안으로 들어온 인물은
뜻밖이었습니다.
몸집은 아담하고 이제 막 어린 아이의 티를 벗은
10대 소년이었죠.
더군다나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를 보고 사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함께 33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이걸 한 마디로 하면
“다윗 넌 소년이고, 쟤는 전쟁의 신이야.” 아닙니까?
사울 왕이 본 건 다윗의 용모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싸움을 해왔기에
척보면 답이 딱 나왔습니다.
소년 다윗은 블레셋의 영웅 골리앗과 싸우러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자를 내보내면 수치를 당할 게 분명했습니다.
바로 그때 다윗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본문 34-3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사울 왕은 현실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기억하지 못했죠.
그러니 지금 눈에 보이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 두려워 벌벌 떨고 있던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양을 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가 양을 물어가던 사자나 곰을 때려잡았던 때를
간증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골리앗도
그 짐승처럼 될것이라고 연결시켜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두 번째 차이를 발견합니다.
다윗은 과거를 기억하여
현재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어서 고백합니다.
우리 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지금 다윗이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지신 분이
누구라고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죠.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일하셨듯이
지금도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꾸 잊는 게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입니다.
통장 잔고는 매일 확인하면서
왜 은혜는 확인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주님은 과거에 어느 한순간에만
우리 곁에 계셨던 분이 아니라,
지금 힘들고 괴로워 눈물 흘릴 때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게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이 납니다.”
우리가 골리앗의 위협 앞에
무기를 놓고 도망가 버리면
진짜 패배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탄은 이걸 노리고 우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송곳니를 들어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살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할 때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 교회가
많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교회학교가 굉장히 타격을 입었죠.
어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 교회는
성장은커녕 점점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점점 유럽의 교회들처럼 노인들만 앉아있고,
젊은 세대는 사라지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다시 부흥의 불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미래목회전략연수소 소장이신
최윤식 목사님께서
<2050 한국교회 다시 일어선다>라는 책에서
한국 교회의 회복 전략 두 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는 ‘전도’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으로 사람을 가르쳐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시대가 전도가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의 성장이
마이너스가 된 지 꽤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도가 멈추지 않았던 교회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전도는 성도의 본분이며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는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행 5:42참고)
1인 가구와 결손 가정의 증가는
‘외로움과 상처’가 가득한 한국 사회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가 교회의 기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복음 안에 있는
‘사랑’을 증거하고 삶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부의 불평등 문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가
대두되는 이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교회가 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초대교회도 네로 황제의 폭정과
수많은 정치적 위협 앞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서도
진리를 수호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빈다.
지혜가 무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못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자꾸 이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 도다
(후렴)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온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누군가에겐 경제적인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의 아픔이 될 수 있죠.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두려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골리앗처럼 눈앞에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누군지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참된 부모는 자녀를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사나운 맹수가 ‘으르렁’ 소리내며 달려들 때
달려와 끌어 안으십니다.
그리고 이내 강한 손으로 때려눕히시죠.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잠잠히 주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작은 차이로 큰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