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축구의 변방 토고는 그동안 5개 팀이 1개조로 나뉘는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대체로 4위권에 머물러 왔으며, 심지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본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해왔다. 그랬던 토고가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스웨덴을 제압하고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세네갈을 제치고 아프리카 1조 예선 1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 합류했다. 게다가 토고의 공격수 아데바요는 아프리카 예선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으며, 토고 국민들조차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나이지리아에 이어서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독수리 군단으로 불리우는 토고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제2의 나이지리아, 제2의 세네갈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토고가 가장 무서운 점은 그들이 국제 무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토고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것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 국가 대표로 활약했던 스테판 케시이다. 그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어시턴트 코치로 활약했으며 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에 실패한 뒤 해임됐다. 그는 토고로 자리를 옮겨 토고 대표팀을 작은 나이지리아로 키워냈다. 나아지리아 태생의 아데바요와 올루파데는 케시 감독의 토고 대표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토고는 아프리카 1조 예선 첫 경기였던 잠비아와의 경기에서 0:1로 패할 때까지만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고, 그들의 패배 소식은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15일 뒤에 펼쳐진 1조·예선 2차전 경기의 결과는 모두가 그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들 1조에서 무난히 본선행 티켓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됐던 세네갈을 3:1로 완파했다. 엠마뉴엘 아데바요가 전반전에 선제골을 넣었고 주니오르 세나야가 후반전에 추가골을 넣었다. 만회를 위해 총공세를 펼친 세네갈은 파페 디오프가 한 골을 만회했고 총력전에 나섰으나 세나야에게 역습을 당하며 오히려 한 골을 더 내주고 말았다. 이후 토고는 라이베리아 원정에서 0:0으로 비겼으나 홈에서 콩고와 말리를 연파했다. 말리 원정에서 패배를 추가했으나 홈에서는 반드시 설욕했다. 토고는 자신들에게 첫패를 안겼던 잠비아를 홈으로 불러들여 4:1로 제압했다.
세네갈은 토고를 홈으로 불러들여 월드컵 본선행의 사활을 건 한판승부를 펼쳤다. 세네갈은 말썽군 엘하지 디우프까지 대표팀에 불러들이며 총력을 기울였으나 전반 11분만에 아데캄니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하지만 세네갈은 4분만에 마마두 니앙이 동점골을 넣었고, 15분에 앙리 카마라가 역전골을 넣었다. 하지만 토고의 영웅 아데바요는 끝내 세네갈의 희망을 꺾었다. 후반전에 아데바요는 동점골을 넣었고 경기는 2:2로 끝났다. 토고는 라이베리아를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꺾었고 콩고 원정에서 3:2로 승리하면서 세네갈에게 어떠한 희망도 남겨주지 않았다.
아프리카 예선에서 1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른 장신 공격수 엠마뉴엘 아데바요는 겨우 21살의 나이의 어린 선수이지만 토고 축구의 선봉장이자 에이스다. 190cm의 장신에 긴 팔, 다리를 갖춘 아데바요는 헤딩 능력이 탁월하고, 장신임에도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슈팅력이 빼어나다. AS모나코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데바요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토고로 이주했으며, 은완코 카누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토고의 유소년팀에 선발되어 스웨덴에서 개최된 세계 대회에 출전했으며,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FC메츠에 입단하게 된다. FC메츠로부터 체계적인 유소년시스템 아래 성장한 그는 17살의 나이에 메츠의 성인팀에서 주전으로 도약한다. 2002/2003시즌에 그는 장신을 이용해 13골을 기록하며 프랑스 2부리그에서 득점 2위를 차지했으며, 이러한 그의 활약은 유벤투스와 아스날 같은 명문 클럽들의 관심을 모았으나 그는 당장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 AS모나코로 이적한다. 모리엔테스, 프르소, 농다, 체반톤, 사비올라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린 나이에도 출전 기회를 잡으며 활약한 그는 2004년에 토고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토고 국가 대표로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 8회 (1934, 1938, 1950, 1954, 1962, 1966, 1994, 2006)
월드컵 본선 최고 성적: 8강 (1934, 1938, 1954)
월드컵 본선 통산 전적: 27위 (22전 6승 3무 13패)
FIFA 랭킹: 36위 (2005년 11월 기준)
감독: 쾨비 쿤 (스위스)
주목할 만한 선수: 알렉산더 프레이 (렌느,프랑스), 요한 보겔 (AC밀란,이탈리아)
주목할 만한 신인: 필립 센더로스 (아스날,잉글랜드)
12년 만에 본선 무대로 돌아온 스위스의 기적
유럽 축구에서 스위스가 가지는 위상은 미미한 수준이다. 스위스 축구는 초기 월드컵 당시 선전을 보였고 자국에서 열렸던 1954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으나 이후 60년대에 본선에 진출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데 그쳤으며, 90년대 들어서 조금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엄밀히 따진다면 스위스 축구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바로 지금이다. 쉬포자와 샤퓌자라는 두명의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90년대에 첫 부흥기를 맞이한 스위스 축구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만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맥없이 패했다. 이후 국제무대에서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던 그들은 2000년에 들어서 젊고 유능한 재능 있는 선수들을 하나둘씩 배출하면서 유럽 무대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2002 유럽 17세 이하 선수권에서 스위스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들의 눈부신 미래를 예고했고, 유로2004를 통해 그들은 국제무대의 중심에 다시 등장했다. 비록 잉글랜드와 프랑스에게 크게 패했으나 크로아티아와 무승부를 이뤘으며 경기력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터키에게 월드컵 4강의 저주를 내리다
유로2004 무대에서의 변변히 못한 성적표로 스위스 축구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스위스 국가 대표 출신의 스타이자 스위스 21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었던 쾨비 쿤 감독은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스위스 축구의 기적을 이끌었다. 스위스는 터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를 치르기까지 A매치에서 14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4조 예선에서 4승 6무의 성적으로 2위를 기록한 스위스는 터키와의 플레이오프와 더불어 3차례의 평가전에서도 무패를 달렸다. 이 기록에는 유럽 최강 프랑스를 상대로 한 두 번의 무승부와 아일랜드와의 2무승부도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에게 예선 탈락의 위협을 안겨준 스위스 축구는 플레이-오프에서 난적 터키를 만나 본선 행에 암운이 드리웠지만 기적을 이뤄냈다. 오래전부터 준결승에 진출한 팀들 가운데 결승에 실패한 두 팀 가운데 한 팀은 다음 대회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는 묘한 징크스를 이어온 월드컵 무대에서 2006년의 희생양은 터키가 됐다.
스위스는 홈에서 가진 1차전에서 전반 말미에 센더로스, 후반 말미에 베라미의 골에 힘입어 2-0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지옥의 원정으로 불리우는 이스탄불 원정에서 스위스는 전반 2분만에 프레이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으나 내리 3골을 내주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후반 말미에 슈트렐러가 만회 골을 넣었고, 경기 종료직전 툰카이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4번째 골을 내주며 2-4로 패햇지만 1,2차전 합계 4-4 동률을 이뤘고, 원정경기 다득점 원칙에 의해 본선 티켓의 주인공이 됐다.
스타 플레이어
스위스 축구는 유럽 무대에서 활발한 활약을 펼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공격진과 미드필더, 수비진의 중심 축으로 보유하고 있다. 2004/2005 시즌에 프랑스 리그에서 2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한 알렉산더 프레이는 유럽 예선에서도 7골로 팀내 최다득점과 더불어 득점 공동 5위에 올랐다. 미드필드진의 튼실한 엔진 요한 포겔은 PSV 에인트호벤의 2004/2005 챔피언스리그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명으로 이탈리아의 명문 AC밀란에서 활약하며 빼어난 수비력과 압박 능력을 선보인다. 수비진에는 2002년에 유럽 17세 이하 선수권에서 스위스의 우승을 이끈 센더로스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센더로스는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의 주전 스쿼드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세트 피스시에 공격 능력도 우수한 수비수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 12회 (1930, 1934, 1938, 1954, 1958, 1966, 1978, 1982, 1986, 1998, 2002, 2006)
월드컵 본선 최고 성적: 우승 (1998)
월드컵 본선 통산 전적: 9위 (44전 21승 7무 16패)
FIFA 랭킹: 5위 (2005년 11월 기준)
감독: 레이몽 도메네끄 (프랑스)
주목할 만한 선수: 티에리 앙리 (아스날,잉글랜드),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주목할 만한 신인: 지브릴 시세 (리버풀,잉글랜드)
잃어버린 최강의 위상을 되찾겠다, 아트사커 프랑스
자국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3:0으로 완파하며 월드 챔피언에 오르면서 유럽 축구와 국제무대에서 프랑스 시대를 열었던 레블뢰 군단은 4년 만에 그 자리를 다시 브라질에게 내주며 급격히 추락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2000에서의 우승,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으로 이어진 프랑스 축구의 상승세는 브라질조차 막을 수 없었고, 브라질은 FIFA 랭킹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두 번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으며, 유럽축구 100년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선정되기까지 한 지네딘 지단과 잉글랜드 무대에서 왕의 칭호를 받으며 믿기지 않는 기록을 만들어간 만능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가 이끄는 프랑스 대표팀에 실패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2002 월드컵에서 곧바로 터져 나왔다.
대회 우승후보 0순위로 손꼽혔던 프랑스는 대회 직전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심한 강행군 끝에 한국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며 지단을 잃게 됐고, 개막전에서 두 번이나 골대를 맞추는 불운 속에 세네갈에게 0:1의 충격패를 당한다. 이어서 우루과이와 경기에는 앙리가 퇴장당하는 불운 속에서 0:0으로 비겼으며, 지단이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을 감행한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0:2로 완패를 당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씁쓸하게 귀국길에 올라야했다. 유로2004에서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던 프랑스는 더욱더 체면을 구긴다. 잉글랜드와의 첫경기에서 경기 종료 3분 동안 지단이 보여준 마술로 승리를 거뒀으나 경기 내내 졸전을 펼치며 끌려다녔고, 크로아티아와 2:2로 비겼다. 스위스를 상대로 앙리가 두골을 몰아치며 시원스런 승리를 선사했으나 8강에서 그리스에게 0:1로 패하며 맥없이 퇴장했다.
본선 진출 실패의 위기에 봉착한 프랑스, 지단의 복귀로 부활
유로2004의 실패로 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2000의 영웅들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세대 교체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프랑스는 4조 예선에서 강력한 경쟁상대로 여겨졌던 이스라엘, 스위스,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차례로 0:0 무승부를 거두면서 승점을 확보하지 못한채 조 선두로 도약하지 못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세 번의 무기력한 무득점 무승부가 모두 프랑스의 홈에서 펼쳐진 경기였다는 점이다. 원정길은 프랑스에게 더욱더 험난한 여정이 될 것. 레이몽 도메네끄 감독은 페로 제도와의 경기를 앞두고 댚팀 은퇴를 선언한 지네딘 지단을 비롯해 클로드 마켈레레, 릴리앙 튀랑, 실뱅 빌토르를 모두 대표팀으로 복귀시킨다. 지단을 주장으로 올드 스타들을 모두 불러들인 프랑스는 지단의 대표팀 복귀 자축골과 더불어 페로 제도를 완파했고, 앙리의 환상골로 아일랜드 원정에서 승리를 따냈으며 스위스 원정을 1:1로 마치고 사이프러스를 4:0으로 완파하며 간신히 본선 직행 티켓을 따낸다. 예선 초반, 흔들리던 프랑스가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프랑스는 2위에 오른 스위스, 3위 이스라엘과의 승점 차가 겨우 2점 밖에 나지 않았으며 4위 아일랜드와도 3점차의 승점으로 간신히 직행 티켓을 사수했다. 단 한경기라도 실수했더라면 프랑스는 본선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월드컵에서 거둔 프랑스 축구의 영광
프랑스 축구는 1938년에 처음 월드컵을 개최해 8강에 올랐으나 대회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대회를 보냈다. 20년 뒤엔 1958년에는 클레르 퐁텐이 13골을 몰아치며 월드컵 사상 한 대회 최다골 득점왕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40년 뒤인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월드 챔피언에 올라섰다. 프랑스 축구는 80년 대에 이미 한차례 영광스러운 시절을 보냈는데, 미셀 플라티니가 이끌던 프랑스는 1984년에 유럽 챔피언에 올랐으며, 82, 86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 두 대회에서 모두 독일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스타 플레이어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이 즐비한 프랑스 대표팀에서 단연 최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아스날의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와 은퇴를 번복하고 대표팀에 돌아온 20세기 최고의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이다. 이 두 콤비는 이미 98프랑스 월드컵에서 활약하며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유로2000에서 유럽 챔피언에 올라 국제 무대에서 누릴 수 있는 영예를 모두 누렸다. 티에리 앙리는 프리미어 쉽에서 왕으로 불리우며, 폭발적인 드리블링, 화려한 발재간, 환상적인 킥력, 창의적인 패싱을 두루 겸비한 만능 스트라이커로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어린 나이에 98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활약했으나 프랑스 월드컵에서 그는 조연에 불과했다. 티에리 앙리는 자신이 주연으로 활약하며 FIFA컵을 들어올리길 소망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7회 (1954, 1986, 1990, 1994, 1998, 2002, 2006)
월드컵 본선 최고 성적: 4위 (2002)
월드컵 본선 통산 전적: 28위 (21전 3승 6무 12패)
FIFA 랭킹: 29위 (2005년 11월 기준)
감독: 딕 아드보카트 (네덜란드)
주목할 만한 선수: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이동국 (포항 스틸러스,한국)
주목할 만한 신인: 박주영 (FC서울,한국)
대한민국, 독일에서 4강 신화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은 2002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오르면서 아시아 축구 사상 최고의 업적을 이뤄냈다.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한국은 ‘붉은 악마’, ‘태극 전사’라는 애칭으로 불리운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체력적으로 우수하고, 빠르며 조직력이 뛰어난 팀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에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세계의 축구 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최국의 이점과 히딩크 감독을 잃은 한국이 독일에서는 실패를 맛볼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2002년에 한국축구가 보여준 잠재력과 2004년에 독일과의 경기에서 거둔 3-1 승리를 비롯해 최근 유럽 팀과의 잇따른 평가전에서 보여준 좋은 경기력은 2006년에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게 하고 있다.
아시아 축구 사상 최고의 업적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 가장 많이 출전한 나라로, 아시아 축구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으나, 터키와 헝가리를 상대로 각각 7:0과 9:0의 참패를 당하며 씁쓸한 첫 경험을 치렀다. 이후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할 때 까지 오래간 월드컵 본선의 꿈에 실패해왔던 한국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국/일본 월드컵에 이어 2006 독일 월드컵까지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부터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치르면서 가진 14경기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나 자국에서 열린 2002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첫 경기였던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오랜 한 풀이에 성공한다. 한국은 목표였던 첫승과 더불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을 격파하면서 사상 첫 16강(본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다. 이어서 한국은 16강전에서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결승 무대에 올라선 한국은 아쉽게 독일과의 경기에서 패했으며, 3/4위전에서 터키와의 경기에서도 2:3의 패배를 당하며 4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것은 아시아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험난했던 월드컵 예선
2002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 대표팀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예상외의 고전을 펼쳤다. 한국은 히딩크 감독이 팀을 떠난 이후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감독을 해임시켰는데, 바로 포르투갈 대표팀 출신의 파울루 코엘류와 나이지리아 대표팀 출신의 요하네스 본프레레이다. 박성화 감독 대행의 뒤를 이어 감독직에 오른 코엘류는 2004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베트남과 오만을 상대로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했는데, 한국 축구는 베트남을 상대로 64년만에 패배를 당했으며, 몰디브와의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에서 0:0으로 비기는 충격적인 결과와 함께 경질됐다. 이후 2004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앞두고 나이지리아 올림픽팀에 금메달을 안겼던 네덜란드 출신의 본프레레 감독이 새로이 한국을 맡았으나 아시안컵 8강에서 이란에게 패해 탈락했으며,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본선행을 성공시켰으나 사우디를 상대로 두 번의 패배로 간신히 2위를 차지했다는 이유와 개선되지 않는 경기력, 팬과 협회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이유로 사임하고 말았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성공을 위해 마지막 총력적을 펼친 한국은 유로2004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했으며, 2002 월드컵의 영광을 함께했던 핌 베어백 코치를 다시 불러들였으며,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홍명보를 코치로 내정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한국 축구는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이후 빠르고 창의적인 숏패스을 이용한 공격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2005년을 마무리하는 두 차례의 유럽 강팀과의 평가전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국인 스웨덴과 2:2 무승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2:0 승리를 거두며 2006 독월 월드컵을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스타 플레이어
한국 축구는 2002 월드컵의 주역 선수들이 그대로 팀 전력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K리그에서 성장한 재기넘치는 신예 선수들을 통해 젊은 피를 수혈했다. 2002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환상적인 결승골을 기록하며 PSV로 이적해 유럽 최고의 선수로 자리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된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엔진으로 활약한다. 파괴적이고 창조적인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내 한국 축구 공수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박지성에 이어 토트넘으로 이적한 이영표는 왼쪽 측면에서 활발한 플레이를 펼치며, 아시아 예선에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오른 이동국은 2002 월드컵 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설욕하기 위한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 그는 본프레레 감독 부임 이후 한국 축구가 만들어낸 대부분의 골들을 자신의 발로 만들어냈다. 또한,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정환과 울버햄프턴의 영웅으로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설기현, K리그 최고의 스타 박주영이 한국의 공격진에 합세하고 있으며, 2002 월드컵의 영웅 골키퍼 이운재 들이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출중한 공격진을 자랑하지만 홍명보와 김태영이 은퇴한 수비진은 아직까지 좀더 담금질이 필요하며, 한국팀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첫댓글 헉 한준희님 오셨나? ㅋㅋ 좋은정보 ㄳ ^^
주목할 '신인' 시세에서 피식...
대한민국 파이팅!!!!
주목할신인이 다 공격수인데..스위스만 수비수네..ㅋ
왜 시세가 신인 이지 ? ㅋ
신인이... 시세라..ㅠ 음.. 뭐야~ 우리나라 이동국.. ㅠ;; 나라면.. 차라리.. 이영표를 썼겠네요..ㅠ
토고는 언론에서 그만 띄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