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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흥미돋는글
출처: https://www.fmkorea.com/7176487139
↑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만 진정한 영웅은 드물다. 성공과 임팩트에는 차이가 있다. 경력과 철학, TSMC, 전략, 핵심 가치를 고려하면 모리스 창은 산업 혁명이라는 학문이다." - 젠슨 황(엔비디아 창업자 겸 회장 겸 CEO)
현대 사회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리고 그 반도체 산업의 큰 축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대만의 TSMC다. 하청업체지만 원청보다 파워가 더 쎄다는 뜻에서 '슈퍼 을'이라고도 불리는 TSMC는 대만 정부의 거국적 지원과 창업자의 개인기가 조화되어 탄생한 기업이고, 대만 내의 위상은 한국으로 치면 삼성+SK+현대+LG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다. 현재 대만의 경제를 하드캐리하고 있는 TSMC의 창업자는 대만에서 국가원수인 총통을 뛰어넘는 위상이며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 이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Morris Chang, 張忠謀, 장충모)에 대해 알아보자.
1. TSMC 창업 전
모리스 창은 1931년 7월 10일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났다. 즉, 대만섬 출신이 아니라 중국 본토 출신이다. 모리스 창의 아버지는 닝보의 재정 관리였고 후에 은행장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배경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완전히 점령하자 모리스 창의 가족은 미국으로 떠난다. 모리스 창은 이중국적이다. 대만 국적과 함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 이주 후 모리스 창은 1949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 뒤에 MIT로 편입하여 1952년에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1953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58년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입사했고 1964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리스 창은 텍사트 인스트루먼트에서 반도체 가격을 비용 곡선보다 앞서 책정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개척하며 승승장구했고, 회사의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수장 자리와 그룹 부사장 직위까지 맡았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들어 텍사트 인스트루먼트는 반도체보다 가정용 컴퓨터, 계산기, 디지털 시계 등의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모리스 창은 자신의 경력이 더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1983년에 회사를 나온다.
2. TSMC 창업
모리스 창은 텍사트 인스트루먼트에 재직 중이던 1980년대 초에 자사의 일본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본 공장의 생산 수율이 텍사스 공장의 수율보다 2배 더 높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첨단 제조업의 미래가 아시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후 회사를 그만둔 모리스 창에게 대만 정부가 러브콜을 보냈고 대만 정부가 지원하는 공업기술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그렇게 1987년 대만 정부로부터 초기 자본을 지원 받아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를 창업한다(자본 출자 비율: 대만 정부 48.3%, 네덜란드 필립스社 27.5%, 대만 민간 기업들 24.2%). 이미 50살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3. 이건희의 러브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모리스 창: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무너진 건 플라자 합의, 엔화 평가절상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큰 요인은 삼성의 이건희였다."
모리스 창이 TSMC를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100% 파운드리, 위탁생산 기업으로 키우고자 결심한 건 이건희와의 만남 이후였다.
1989년 모리스 창은 이건희와 아침식사를 함께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건희는 모리스 창에게 "메모리 사업을 하려면 엄청난 자본과 인재가 필요하다. 그러니 당신은 메모리에 투자하지 말고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삼성전자 공장을 보고 나면 (벽을 느끼게 되어) 투자보다는 우리와 협력하게 될 것”이라며 삼성 반도체 공장 시찰을 권했고, 실제로 모리스 창은 삼성의 공장을 시찰하고 난 뒤에 압도되었다고 말했다.
모리스 창: "이튿날 공장을 온종일 둘러봤다. 실로 대단한 규모였다. 그전까지 그 어떤 공장에 가도 30분이면 대략 파악이 끝났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내가 텍사트 인스트루먼트를 떠난 지 6년이 지나긴 했지만, 삼성은 내가 기억하는 텍사트 인스트루먼트 최고의 일본 메모리 공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공장을 시찰하고 돌아온 모리스 창에게 이건희는 "반도체 공장 투자에 얼마나 많은 자본과 인재가 필요한지 이제 알겠느냐"고 다시 물었다고 한다. 모리스 창은 완전히 수긍하여 메모리 사업에 대한 생각을 접고 파운드리에만 전념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모리스 창: "한국에는 삼성의 이건희가 있었던 반면 일본 NEC, 도시바, 히타치와 같은 당시 반도체 강자에는 이건희 같은 인물이 없었다. 한국의 삼성이 반도체에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건희다. 이건희 본인이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잠재력을 알아봤기 때문에 시대를 일군 영웅이 됐다. 당시 이건희는 이미 휴대전화의 잠재력도 파악하고 있었으며 선견지명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하고야 마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이건희와 같은 보스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할 용기가 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됐다." - 대만 경제매체와의 인터뷰
모리스 창: "이건희는 1000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라오반(老闆·경영자 또는 리더)이다. 그는 시대를 만들었다."
당시 이건희와의 만남이 매우 인상깊었던 건지 모리스 창은 이후 이건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만큼 삼성전자에 대한 경계심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내비친 게 모리스 창이었다.
모리스 창: "삼성전자와의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삼성전자는 아주 강력한 적수다. 아주 잠깐 우리가 우세할 순 있지만, 전투를 두어 번 이긴 것일 뿐 전쟁에서 이긴 건 아니다." - 2019년 대만 매체와의 인터뷰
모리스 창: "중국, 미국이 아닌 한국의 삼성만이 TSMC의 유일한 경쟁자다. 두 회사 모두 인재 수준이 높고, 관리 인력도 모두 자국 내에 있기 때문이다." - 2021년 대만에서 열린 강연에서
4. 대만에서의 위상
TSMC는 대만에서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 불린다.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많은 대만인들은 중국이 대만을 쉽게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TSMC의 존재를 꼽는다.
TSMC가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에 최첨단 공장을 건설하려 한다는 불안이 고조되던 2022년 대만 의회에선 "호국신산이 산을 옮기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대만 정부는 TSMC에게 말 그대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부지 확보에서부터 정부가 나섰다. 신주과학단지를 비롯해 가오슝 등 대만 전역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을 직접 설득했다. 전력을 몰아주기 위해 타이중시는 TSMC가 도시 전체 전력의 38%, 용수의 9%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특별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옛날 제국주의가 식민지들을 쟁탈하던 때처럼 반도체, 바이오, AI, 모빌리티라는 ‘부의 신대륙’을 두고 피 터지게 싸우는 신(新)경제 전쟁 시대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술 대기업들은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는 전쟁에 투입된 군대이고 엔지니어들은 전사들입니다. 전사들에게 필요한 건 돈도 돈이지만 업에 대한 자긍심, 소명감이 중요합니다. 대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야기하다 보면 의사, 변호사보다 TSMC 엔지니어가 최고입니다."
현재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해 국제사회에서 미승인 국가로 취급 받는다. 그렇기에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에도 국가원수가 아닌 국가원수 대행이 참석하는데, 이 '대만의 총통 대행'을 2018년부터 6년 연속 모리스 창이 맡고 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부총통 등의 고위 관료가 맡는 게 당연한 건데도 전 고위 관료도 아니고 전 고위 정치인도 아닌 'TSMC의 전 회장'인 모리스 창이 대만이라는 국가를 대표하여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각국 정상과 직접 대화한다는 건 대만에서 모리스 창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대변해주는 상황이다.
번외. 최근 TSMC가 잘나가는 이유
해당 부분은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하겠다: https://shindonga.donga.com/economy/article/all/13/4839349/1
“대만은 1987년에 TSMC를 공기업으로 창립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파운드리 시장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인해 다양한 반도체 수요가 탄생하고 제조기술 난도도 높아지고 투자 규모도 커지면서 설계 회사가 제조까지 하기가 어려워졌다.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산업이 이때부터 급성장했고, TSMC가 단연 이 분야 선두가 됐다."
"TSMC가 크는 과정에서 대만계 미국인들이 주도하는 미국 내 팹리스(제조는 안 하고 설계만 하는 회사)들의 성장도 도움이 됐다. 엔비디아, 마블, 브로드컴, 최근 AMD까지 미국 팹리스 기업에 대만계 고위 임원이 많다는 걸 주목해 봐야 한다. 이건 한국과 대만의 전자산업 성장 과정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1980년대부터 가전에서 전자산업이 시작돼 휴대폰, TV등으로 발전해 일본과 오랫동안 경쟁해 온 반면 대만 전자산업은 PC 마더보드(기본 회로와 부품을 담고 있는 기판)에서 시작해 미국 컴퓨팅 산업계와 오랫동안 동반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대만계 우수 인력이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 건너가 오늘날 여러 기업의 리딩 그룹이 된 거다."
"과거 대만은 한국처럼 다변화 돼 있지 않고 반도체에 대한 집중력이 너무 강한 것이 약점으로 보였는데 AI시대에 들어서는 반대로 이게 큰 강점이 되고 있다. TSMC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구축돼 왔을 뿐만 아니라 대만 정부와 사회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국인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 TV 등 전자산업, 여기에 자동차도 갖고 있기 때문에 온 디바이스 AI 시대를 주도할 역량이 있다. 파운드리 산업도 이들과 함께 동반성장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건 경쟁력이고, 이는 거듭 말하지만 얼마나 우수한 기술 인재를 키울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첫댓글 머쉿다
믿는다
왜 아버지만큼 못하냐
이건희 자서전읽어보는데 추천사부분에 이어령교수가 이건희 학생때인가 말했던 일화 생각난다...제3한강교였나? 왜 저렇게 낮게 지었냐고. 통일 후에 물자가 다닐 건데 왜 앞날을 생각하지 않냐고...하여튼 생각하고 실천하는 부분에 있어선 비범한 사람이었어. 여러 뒤 구린 얘기도 많지만
누가 추천해주긴 했는데 함 들어가볼까
와 TSMC가 대만 하드캐리하고 있는 건 알았는데 호국신산이라고 할 정도구만
회장이 정상회의 나가는 것도 넘 신기...
주식안팔고 기다리는중... 쭉쭉우상향 가자
오 이해하기 쉽다..글 퍼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