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0장 간단히 낭독 (최무길 집사)
둘째 사망이란 첫째 사망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두 가지다.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이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 즉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뜻한다. 그에 비해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영혼의 분리를 말한다.
첫째 사망
죽음은 ‘분리’다. 분리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첫째 사망은 자연적 죽음이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다. 이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결코 아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었다 해도 인간의 본질은 영혼에 있지 육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사망
두 번째 죽음, 둘째 사망 역시 분리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말한다. 그렇게 되고 난 후에는 긍휼, 은혜, 사랑, 자비는 단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정의만 있을 뿐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둘째 사망이다.
모든 인간은 저주 아래 있다. 그렇다. 지금 이 땅에 있는 사람은 집행유예 상태로 살고 있다. 형벌 아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상태다. 아직 집행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첫째 사망은 저주 아래 있는 맛보기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집행되는 것은 둘째 사망 때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여기서 ‘버리셨나이까’하는 것은 몇 번째 사망을 말하는 것일까? 첫째 사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르짖은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이었다.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우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육신의 핸디캡이 있어 많은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의 반쪽, 혹은 1/3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지는 않는다. 대화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전인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신에 인간의 본질이 있지 않고 영에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사망을 맛본다 해서 영원한 죽음 – 둘째 사망을 맞은 것이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어 육신이 썩을 지경인 나사로를 향해 자고 있다고 하셨던 것도 인간의 본질이 영에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있어 육체의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마지막 고난1을 통과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헌신. ‘더 이상 드릴 것이 없어요’ 하며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집행 유예기간이 끝나고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푸른 나무였다. 그렇지만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둘째 사망을 겪으셨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 버리셨다. 둘째 사망 가운데로.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형 집행을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없다. 우리가 겪는 육체의 죽음도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영원한 마지막 헌신으로서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육신의 고통뿐이 아니었다. 극심한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영원한 저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른나무가 겪을 둘째 사망을 걱정하신 것이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하신 것은 육신의 죽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도 당당히 독배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소크라테스만도 못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걱정하신 것은 둘째 사망이었다.
둘째 사망이란 긍휼이란 한 방울도 없는 상태다. 지금은 사랑의 일부가 남아있다. 아침이면 태양이 뜬다. 은혜와 긍휼이 많이 남아있어 집행유예 상태임에도 그리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육신의 죽음은 둘째 사망에 비하면 두려울 것도 없는 상태다. 심지어 주님께서도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택함을 입은 백성들..
우리는 둘째 사망이 없다. 저주가 없다.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저주는 사라졌다. 주님께서 절규하면서 둘째 사망 속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둘째 사망을 거둬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 친지분들은 둘째 사망을 맞으신 것이 아니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 순교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 당당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세우신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희망, 영원한 생명만 존재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선행을 많이 하던 어느 한 부자가 육신이 죽어갈때 하나님이 다행이 그를 부르시니
그가 말하길 " 하나님~ 지금 내게 남은 재산이 엄청나게 많은데 천국에 좀 가져가면
안되 겠습미꺼 =,,= " ? 라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르시길 " 욕심이 과하다 가방 하나에만 넣어 가도록 하여라 " 하
셨는데 그 부자는 있는재산 모두 금괴로 바꾸어 낑낑대며 등에매고 천국에 다다르니
입구에 마중나와 있던 베드로가 보고는 " 그긋시 무엇이드냐 ? 다른이들은 그냥 들어
오는데 넌 무엇을 그렇게 매고 오느냐 ?"며 검사를 해보기 위해 바닥에 놓으라 했다
가방을 열어보니 세상에나 금이 잔뜩 들어 있어서 베드로는 매우 놀랐다
" 아늬 이놈아 ~!! 요딴걸 웨 들고오느냐 ? 아무짝에도 필요 없느니라 당장 버려라 !!"
했다 그러자 그 부자는
" 아늬, 베드로늼~ 하나님이 가져가도 된다고 했는데예 =,,=' " 했드니
베드로가 말하길
" ㅉㅉ 야 이놈아 !! 이런건 여기 온천지 바닥에 인도블록으로 깔렸고 집으로도 만들어
져 있느니라 남아서 창고에도 엄청많거등 그거매고 지옥으로 쫏겨갈래 버리고 그냥
여기 천국으로 들어 올래 ? " 하자'
그 부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금을 버리고 바로 0.0001초 속도로 천국문으로 쫏아 들어
갔다는 낭설같은 얘기가 있듯 세상으 모든 재물은 도구에 불과 하다는 뜻.
계시록엔 분명히 "심판"이 있다고 했는데
이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생명록에 기록된 자들은 그 심판대를 보지도 않을 것이며
바로 천국으로 패스지만 다른이들은 무조건 심판대에 서야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잖은가 '
다 지옥으로 보낼꺼면 웨 !! ? 심판대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실까 ?
예시된바 같이 그 심판대 아래 서 있는 모두가 각자 한권의 책이 있다는 걸 우린 성경에서
보고있다.
그 책엔 각자가 행한 모두 행위와 쥐끼며 살아온 일들이 일기장처럼 적혀 있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 그 행위데로 심판 하리라 " 하셨으니 사악하고 패악한 자들, 사기만 치다
가 온 자들, 더러번 짓만 하다가 온 자들, 양심불량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타인까지 위해가
되게한 자들, 주딩이로는 주의 말씀은 잘도 쥐끼는데 돌아서면 변해버리는 자, 거짓선지
들과 그 똘마니들, 우상숭배자들, 외 기타 등등등...
수없이 많은 죄 종류에 해당이 되는 자들은 무조건 영원한 불구덩이 세계로 던져 질 운명
들이 현재 이 세상에 엄청시럽게 많네.
그나마 좋은 일만 하다가 온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또 무언가를 준비 해 주셨듯 그들은 지옥
만큼은 면해 주실 터인즉 ..
우야동동 할일없이 식량과 시간을 축내며 똥만 싸대는 짓꺼리만 하다가 심판대 밑에 서 있
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네 =,,=.
차라리 가만히나 있던지 --
대부분 지 기분에 빠져 온갖 잡설을 만들어가며 '진리'라 우기는 종재기들과
주구장창 목사들은 무조건 모두 사기꾼에 도둥놈이라는 싸구리와 교회가는건
마귀를 섬기러 가는 것이며 낮엔 예배를 보면 안된다니 그게 무당보다 더 대가리 빵구가
심하게 난 인간도 여기선 볼 수 있으니 수년간 카페 회원들이 500명가까이 사라져 갔네.
살아서도 뒈져서도 회개치 않을 것이며 설령 회개를 한다해도 용서받지 못할 이미
저주받은자들은 간에 뺑기를 두껍게 칠한 주로 찔겨빠진 늙다리들이로다.
찐네 꼬랑네 똥네 나니깐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죄 덜 짓는 것이란걸 명심하게 ~
택하심을 입은 참된 여호와하나님의 백성들이여 ~ '
우리의 육신이 사나 죽어나 주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리로다
할 렐 루 야 ~ !!
첫댓글 최무기리 집사님!
구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견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견인에 오류가 없다면 그 끝은 반드시 천국이라고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이 사람의 공력에 있다면 그 공력이 구원을 받을 만한 것인지 불합격인지 판단하는 심판대가 필요하겠지요!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구원 받은 자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
하나니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자 하는 것이지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1:9)."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