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시작하려 합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곳에서는 종교나 신앙에 관한 긴 글은 더 이상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믿는 것을 다른 분들께 설득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서로 다른 분들과 논쟁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한 가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길거리에서 한 번쯤은 이런 문구를 보셨을 겁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개신교인입니다. 목사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오늘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매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짧은 문구를 사용하는 분들의 의도까지 폄하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호가 실제로 전달되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이 말을 전도의 출발점으로 삼는 순간, 복음은 사랑의 소식이 아니라 공포를 이용한 설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먼저 지옥이라는 두려움을 제시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때로는 사람에게 겁을 주어서라도 어떻게든 신자를 늘리려는 전도 방식처럼 기능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사람이 지옥이 무서워서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예수께서 보여주신 복음의 모습일까요?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과 구원, 심판이라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과연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여덟 글자가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가 너무 빨리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나누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첫 번째 주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하신 첫 번째 일은 세상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로 다음 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지옥을 먼저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에는 제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순간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기독교 신앙은 자칫 죽은 다음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선택처럼 축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인간을 지옥에서 빼내어 천국으로 옮겨주는 분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에게 다가가고, 죄인이라 손가락질받던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삶 전체가 복음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복음을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
이라는 문장 하나로 압축해버린다면 너무나 많은 것이 사라져버리지 않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구원과 심판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입장을 굳이 이름 붙인다면 ‘만유구원희망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만유구원’보다 오히려 ‘희망’입니다.
저는 모든 존재가 반드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떤 존재가 반드시 영원히 버림받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단하기보다 희망하고 싶습니다.
모든 존재가 구원받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근거를 인간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고 싶습니다.
기독교에서 구원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그것을 여덟 글자의 구호로 너무 쉽게 정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복음의 출발점은
“너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
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
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글에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전통적인 개신교의 구원론을 믿으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저와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도 계실 것이며, 종교 자체를 믿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생각을 다른 분들께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개신교인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성경과 신학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제가 믿는 복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모든 존재가 반드시 구원받는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존재가 반드시 영원히 버림받을 것이라고도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희망할 수 있는 신앙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천국과 지옥을 먼저 말하기보다 이 말씀을 먼저 붙들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리고 이 글을 끝으로 이곳에서 종교나 신앙에 관한 긴 이야기는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각자의 신앙과 생각은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https://m.cafe.daum.net/ilovenba/34Xk/493840?svc=cafeapp
이 글에도 댓글 다셨지만 무교인 제가 볼 때는 이 글과 비슷한 말씀 이신거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랑이 아닌 전도는 전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사랑도 삶에서 묻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혹시 오해하시는 회원분들이 계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답니다. 블랙아머님 진심 감사드립니다^^
강제모태신앙이었던 제가 가졋던 불만과
정확히 일치하시네요
기복신앙으로 전도가 아니라 예수의 사랑
으로 전도를 하는게 맞다 봅니다
기복신앙적인 요소는 구약 유대교적인
요소라 기독교적인 전도가 아닌거같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결국 복음의 중심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도는 “믿으면 복 받고 안 믿으면 벌 받는다”는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말씀 진심 감사합니다^^
@Messi 더불어 제가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언제든지 현세에서 강한 물리력을 행사하던 여호와엿잔아요 대표적인게 노아대홍수라든지 실력행사를 통해 이루어진 출애굽이잔아요 그런데 왜 신약에 들어서며 정반대로 정책이 바뀐건지가 오랜 궁금증입니다 유대만의 강력하고 잔인한 여호와에서 온민족의 자애로운 메시아로 바뀌죠 그러니 이스라엘인들이 예수를 인정 안하고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 것도 그럴만하다 보거든요
@rythm nation 저도 그 지점이 구약과 신약을 읽으면서 정말 오래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ㅎㅎ 다만 저는 요즘은 ‘구약의 잔혹한 하나님이 신약에서 자애로운 하나님으로 바뀌었다’기보다는, 성경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고백하는 방식이 점차 깊어지고, 그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다고 보는 편입니다. 구약 안에서도 심판과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자비와 용서, 이방 민족을 향한 관심이 계속 나타나고, 반대로 신약에도 심판에 대한 말씀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상과 예수님의 모습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것은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했는데, 정작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 간극 자체가 기독교 신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십자가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고 보거든요^^
저것들은 사이비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엎었듯이.
저도 신앙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심거나, 구원과 복을 거래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에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 개신교에 적대감을 가지는 가장 큰 원인이죠. 협박을 통한 목표달성으로 신앙 자체를 왜곡하는 저 문구.
종교인의 신앙 전도는 말이 아니라 본인의 삶을 통해 이웃에 스며들게 함일텐데 하찮은 말로 조급하게 공격하니
세상을 '우리'와 '적'으로 나누어 버린..
카톨릭인 저는 그런 삶을 놓아버려 더이상 가나안 신자도 아니지만서도 ㅎㅎ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특히 ‘말이 아니라 본인의 삶을 통해 이웃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저 역시 복음이 사람을 두려움으로 몰아붙이고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방식으로 전해질 때, 정작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는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떠나 계시다고 하셨지만 이렇게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이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메시님 같은 분이 계셔 다행입니다.
과찬이셔요… 부끄럽습니다ㅠㅠ 늘 감사드려요^^
종교인이신 messi님께 죄송하지만 무신론자로서..
종교는 단지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위해 + 사람간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집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messi님 말씀과 다른 각도로 종교의 극단을 향해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고 꼴보기 싫은게.. 그럼 지구의 동식물은 모두 지옥에 가나? 더 나아가 우주에 혹시 모를 외계인은....? 그럼 난 지옥갈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ㅎㅎ....;;
전혀 죄송하실 것 없습니다 ㅎㅎ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다른 관점에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와 종교 자체에 대한 생각은 다르시겠지만, 적어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겁주고 편을 가르고 배척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만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히려 “그럼 나는 지옥 갈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전도라면, 그 전도 방식부터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저는 누군가를 지옥의 공포로 밀어 넣어서 하나님을 믿게 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서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한번 궁금해지네요”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복음에 가깝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관점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모태 기독신앙을 가졌고 지금은 냉담자가 된 저라서 말씀하신게 너무 와닿습니다. 사랑의 종교, 사랑의 신앙이면 냉담자가 되진 않았을텐데요. 성경에도 없는 믿음의 강요가 너무 싫었습니다. 메시님과 꼭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신앙은 강요와 두려움이 아니라 결국 사랑으로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믿음을 강요할수록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는 게 아니라 더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언젠가 편하게 한잔하면서 신앙 이야기뿐 아니라 사는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꼭 한번 뵙죠^^
@Messi 👍 👍 👍 👍
@interceptor #.23 늘 감사드려요 ㅎㅎ
뉴질랜드 워홀갔을때 영어를 배우려고 일부러 현지인들 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개신교 재단의 대학을 다녔던지라 개신교에 대한 불만이 참 많았습니다. 강제로 채플 수업을 들어야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뉴질랜드의 현지인 교회를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평화로운거에요. 그리고 예배를 드릴때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Love, Grace였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교회가 있었다면 진지하게 종교를 가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뉴질랜드의 한국인 교회를 가보면 예배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지옥,심판,처단 같은 단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이해가 안되는 방언기도…외국인 친구들 한국인 교회에 한번 데리고 갔더니, 다들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기겁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개신교에 대해서 특히나 한국 교회에 대해서는 아주 큰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타 종교를 비판할게 아니라 같이 품으면서 스스로 우리 종교에 녹아들게하는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국 개신교인들은 자녀를 많이 낳더라구요. 강한 말투로 전도를 하니까 잘 안되서 차라리 모태신앙을 가진 인구를 늘려서 개신교를 확장하겠다라는 강한 의심이 들더라구요. (이전 나는 솔로 기수에서의 영자가 아이를 셋이상 낳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게 뭔 의미가 있겠나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럴수록 그 종교는 폐쇄적일수밖에 없는건데 말이죠.
@ThanksReggie 경험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뉴질랜드 현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으셨다는 말이 Love와 Grace였다는 부분이 참 인상 깊네요. 저 역시 기독교 복음의 중심에는 결국 사랑과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심판에 대한 말씀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공포와 강요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할수록 사람들이 복음에서 더 멀어질 수도 있겠지요. 자녀 신앙에 관한 말씀도 공감합니다. 부모가 신앙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강제로 믿게 하기보다 부모가 먼저 사랑과 은혜를 살아내고 그 모습을 통해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더 건강한 신앙의 전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타 종교를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한국교회 안에도 좋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정말 많지만, 동시에 왜 우리가 사회의 신뢰를 잃었는지는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의 취지를 깊이 읽어주시고 직접 겪으신 이야기까지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