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 비극’
작가 드라이저 (1871-1945)
초판 발행 ‘ 1925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 1871년~1945년)는 미국의 소설가이다. 가난한 독일 이민의 인디애나 주 테레호트에서 태어났다. 형제 13명 중 열두 번째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립대학에서 1년 쯤 공부했으나 학비 문제로 중퇴했다.
작곡자로서 성공한 형 폴은 창녀집 포주 애니 블레이스와 동거하고 누나 엠마는 남자에게 농락당했다. 드라이저는 17세 때 시카고로 가서 접시닦이, 철물점의 점원이 되었다가, 고등학교 교사였던 밀디레드 필딩의 원조로 인디애나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업에 흥미가 없어 퇴학했다. 1892년 시카고 신문 <데일리 글러브>를 비롯하여 여러 신문의 기자가 되었으며, 이때에 발자크와 졸라의 문학을 애독했다.
처녀작 <시스터 캐리>는 시골처녀의 명예욕을 주제로 한 것이었으나 잘 팔리지가 않아 드라이저의 생활은 파탄 직전에 이른다. 어떤 출판사 편집을 맡아보면서 <제니 게어하트>(1911), <자본가>(1912), <거인(巨人)>(1914), <천재(天才)>(1915)를 발표했으나 평이 신통치 못했다. 성(性)과 물욕을 그린 <천재>는 발매금지까지 당했다.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극복하고, <아메리카 비극>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의 자연주의 문학은 드라이저에 의해 완결되었다. 돈·지위·명예의 포로가 된 드라이저는 가장 미국적인 문학자로서 재평가되어 가고 있다.
<줄거리>
이 소설은 1906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질레트 브라운 사건이 소재였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의 대표적 작품이다.
크라이드 소년은 캔자스 시티의 가난한 전도사의 아들이다. 몽상가인 부모는 물질 생활에는 관심이 없다. 종교 가정에서 태어난 크라이드는 양친의 생활에 반발했다.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더 큰 흥미를 가졌다.
도시로 나와 약방의 사환에서 호텔 보이, 등등의 직업을 바꾸면서 순진하던 시골 청년의 마음이 점점 더 강한 물욕으로 바뀌어 갔다.
눈이 내리는 날에 친구들이 소녀를 유혹해서 드라이브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운전 부주의로 소녀를 치어 죽인다. 당황한 나머지 도망치려다가 자동차는 크게 파손되었다. 크라이드는 겁이 나서 부상자를 버리고 도망갔다.
시카고에서 일하는 동안 공장을 운영하는 숙부를 만나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삼촌은 그를 감싸주었고, 사촌은 미워하는 환경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차츰 인기도 좋았고, 과장으로 승진도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로바타라는 소녀를 좋아하여 데이트를 했다.
한편 숙부의 소개로 그 지방에서 상류 사회로 진입한다. 돈 많은 집 딸인 산드라하고도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는 와중에 富와 명문가라는 가문에 마음이 이끌린다. 그는 지금까지 너무 가난하게 살아왔으므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화려한 꿈을 펼쳐보았다. 이때 여공인 애인 로바타는 크라이드의 애를 임신하고 있었다. 크라이드는 로바타를 그의 출세의 방해군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크라이드는 로바타를 고향에 보내면서 자신도 곧 뒤따라 가겠다고 했지만 편지 한 장도 보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서 로바타는 의사와 상담하지만 불러오는 배 때문에 빨리 결혼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는다. 로바타는 크라이드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크라이드는 마지 못해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크라이드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로바타를 유혹하여 산속에 있는 호수에 가서 뱃놀이를 했다. 보트를 타고 호심이 깊은 곳까지 노를 저어 갔다. 주변에는 인가도 없었다. 크라이드는 계획을 실행하려니 두려워서 얼굴이 어두웠다.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챈 로바타는 일어서자 균형을 잃은 배가 뒤집어 졌다. 구조를 요청하는 로바타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체 밖으로 나와 버렸다.
크라이드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로바타를 구출하지 않았었지 직접 살해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재판 동안에도 크라이드는 자신이 왜 사형을 받아야 하는 지를 이해 하지 못했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이로 인해ㅣ 도덕성 등 인간적인 요소는 사라져갔다. 회오리 바람이 지나가자 크라이드 부모는 열심히 전도생활을 하면서 살아갔고, 크라이드는 전기의자에 앉아서 사라졌다.
1951년에 ‘젊은이의 양지’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