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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어느 목사님이 자기 집 오렌지 나무에서 몰래 오렌지를 따가는 세 명의 어린아이들을 붙잡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에는 도둑놈들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아느냐?” 그때 한 아이가 말합니다. “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주 감동적인 유머도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심하게 싸웠습니다. 너무 화가 난 남편이 “나가버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나가라면 못나갈 줄 알아?”하면서 보따리를 싸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남편이 “나간다더니 왜 들어 왔어? 나갈 데가 없는가 보지?” 하면서 빈정댔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을 깜빡 잊고 나가서 그것을 가질러왔어.” “그게 뭔데?” 남편이 묻자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 네게는 제일 중요한데 깜빡 잊고 그냥 나갔지 뭐야!”하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한바탕 웃고 말았답니다.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depression’(디프레션)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라고도 하고 ‘억압감정증’이라고도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중에서 가장 흔한 증세는 불면증, 식욕감퇴, 의욕상실, 정욕감퇴, 집중력감퇴, 대인기피증 등입니다. 풀이 죽어 있고 슬픔에 잠겨 있다가 깊은 절망감에 빠지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무가치함을 느끼고는 심해지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통계로는 이 디프레션은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높은 발병률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남자보다 여자의 디프레션이 3배 이상 높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미국 여성의 경우 약 700만 명 이상이 이 디프레션에 시달리고 있고 매년 3만 명 이상의 여성이 디프레션으로 자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미국 심리학회는 여성이 남성보다 디프레션 환자 수가 많은 것은 월경, 출산, 갱년기 장애 같은 생리적 이유 때문으로만 알고 있던 상식을 뒤엎고 문화적, 정신적 이유에 더 많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디프레션의 이유는 같지만 남자들은 우울증 현상이 왔을 때 의사나 상담가를 찾아가는 경우가 여자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에 실제 환자 수는 거의 엇비슷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3배 이상 높다는 것은 여자들이 의사나 상담가에게 찾아가 보고된 숫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분의 책을 보니까 디프레션의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수단들을 많이 열거해 놓았는데 그 중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쁨을 갖는 것이 디프레션을 몰아내는 지름길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육 심리학자인 레이니(Rainy)박사는 디프레션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늘 기쁨을 갖는 노력을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우리는 성경 말씀을 금방 떠올립니다.
“항상 기뻐하라”(Be joyful always!)(살전5:16)
사도 바울은 ‘항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가 ‘항상’이라는 부사를 부치는 일들은 모두 ‘영적생활’(spiritual life)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들입니다. 예를 들면 항상 간구와 기도의 삶을 살라든지, 항상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든지(엡5:20, 살전1:2), 항상 선을 좇으라든지(살전1:2), 등입니다. 그런데 이 일들은 우리의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기초가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생활은 비록 디프레션뿐만 아니라 모든병의 예방과 치료에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웃음치료사’가 등장하였습니다. 한번 호탕하게 웃으면 보약 10첩 먹는 것 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웃음은 기쁨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기쁨은 엔도르핀 생산을 증대시킴은 물론 혈액, 피부, 기타 몸의 모든 기관(organ)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학자들은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과 슬픔 속에서 풀이 죽은 채 살면 온갖 질병이 마중 나옵니다. 미움과 질투와 증오, 절망감과 실패감 속에서 허탈에 빠져 살면 육체적, 정신적 질환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언제나 자신감을 갖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야 합니다. 무언가 능동적인 의욕을 갖고 활동적인 생활을 하면 그만큼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워너 세이(Warner Schaie) 박사가 주도한 시애틀 연구(Seattle Study)가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2000명의 노년층(60-90세)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60대에서 능동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산 사람들은 70대에서도 그 정신건강이 유지되고 별로 쇠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0대에 은퇴한 후에도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지역사회기관(병원, 교회, 학교, 복지관)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정신기능이 건강하게 잘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퇴 후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소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기능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때문에 끝까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쁨을 갖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
첫째로
오늘 바울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은 언제나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Rejoice in the Lord always. I will say it again: Rejoice!)(빌 4:4)
험한 세상 사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습니다. 기뻐할 일 보다는 걱정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오는 걱정, 사업의 부진으로부터 오는 염려, 질병과 아픔으로부터 오는 슬픔, 실패와 좌절로부터 오는 실망감, 이런 것들이 기뻐해야 할 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늘 불안하고, 늘 염려되고, 늘 실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인생이 어렵다는 것을 더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 때문에 수많은 매를 맞은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배를 탔다가 난파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대적(adversary)보다도 더 크신 분이요, 어떤 고통스런 감정(any painful emotion) 보다도 더 위대하신 분이요, 어떤 지워지지 않는 상처보다도 더 크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다 괜찮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He is not rejoicing because he's OK).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독하시고 지배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간증을 해주신 채의숭 장로님도 믿음대로 살려고 애썼지만 낭패와 실망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보다 큰일을 하기 위해 전 재산을 드려 사업을 시작 했는데 세기적인 물난리로 공장이 다 떠내려갈 때, 다시 일어서서 한창 사업이 절정을 이룰 때 화재로 전 공장이 소실되었을 때, 대우그룹의 부도사태로 수백억이 날아갈 때의 낭패감은 대단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주님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만이 영원한 기쁨을 주십니다.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을 네게 주노라”
왜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기쁨을 주십니까? 주님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염려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주님보다 더 크신 분이 없으시며 주님을 당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주님 안에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 때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한 빌립보서 가운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1:6에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 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고, 부정적으로 보면 살맛 안 나는 세상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그 일체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 안에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1945년 뉴욕의 부르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의 브랜치 릭키(Branch Rickey) 감독은 과격한 결단을 했습니다. 야구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흑인선수 잭키 로빈손(Jackie Robinson)선수를 기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백인들만의 전용 경기처럼 여기던 야구에 흑인선수를 데려온다는 것은 큰 결단이 아니면 힘들 때였습니다. 잭키 선수를 데려온 릭키 감독이 먼저 한 일은 인종차별과 학대에 견딜 수 있는 강한 성격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주눅이 들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같은 팀의 동료로부터도 인종차별을 받거나 멸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할 일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실제로 연습을 시켰습니다. 팬들이나 싸울 상대편이나 팀 동료들에게 받을 여러 가지 형태의 인종차별과 욕설과 괄시와 학대 등을 실연을 해보였습니다. 호텔직원이나 웨이터들이나, 팀 동료들이 욕설을 퍼붓고 무시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비한 이름으로 부르고, 얼굴에 펀치를 날리기도 하고, 그를 뒤에서 밀어붙였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 연기가 끝난 다음에 릭키 감독은 로빈손에게 지오바니 파피니(Giovanni Papini)가 쓴 ‘그리스도의 생애’(Life of Christ)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장 혁명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인 마5:38-42의 말씀을 해설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돌려대라” 로빈슨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는 마침내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편견으로 오염된 미국 사회에서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1995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의 부인인 레이첼 로빈슨(Rachel Robinson)에게 콩크레셔널 골드메달(the Congressional Gold Medal)을 수여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잭키 로빈손의 용감성과 미국의 프로페셔널 운동경기의 양상을 바꾸어 놓은 공로였습니다. 로빈손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각이 다를 뿐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았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어도 주님 안에서 사랑할 대상임을 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슬픔의 한 가운데서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당할 자 없습니다. 주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만 하면 됩니다(You keep your eyes fixed on the big picture of God). 우리 그리스도를 당할 자 없습니다(No adversary can defeat Christ). 그분은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입원해 있는 병원 침대에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무덤가에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 깨져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긍정의 힘입니다.
어제 저녁(8.11)에 미국의 로버트 슐러 박사님의 환영 리셉션에 참석을 했습니다. 크리스탈 카디드롤(수정교회) 교회를 세운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57년 전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신앙의 세계에서 사용되어지는 말과 세속사회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들이 사로 다름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세속사회의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의 언어를 세속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할까 생각하다가 “Positive thinking”(긍정적 사고)이라는 단어를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세속사회는 너무 부정적인 개념(콘셉)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세속사회는 경쟁과 미움과 질투와 증오가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긍정적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가슴이 열려지지 시작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부흥하는 교회마다 슐러 목사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교회가 드물 정도입니다. 긍정적 자세는 우리 안에 기쁨을 갖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가슴 속에 감사(gratitude)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어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환경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199년대 초에 쓰인 재미있고 많은 교훈을 주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유명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의 첫 발걸음’(His First Step)이라는 이야기입니다. 7살 난 터커(Tucker)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쳐서 2년 이상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터커에게 가장 기쁜 시간은 아빠가 면회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터커에게는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같은 방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그것을 알고 생각 없이 터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네 아버지가 재혼을 하더라도 너는 친엄마를 가질 수는 없다. 왜냐면 친엄마는 서로 피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란다.” 터커는 밤마다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엄마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그들의 친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기를 사랑해주는 엄마를 그는 원했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버지 다음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는 분은 레이시(Lacey)라는 간호사였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상냥하고 부드럽게 터커를 돌봐주었습니다. 마치 친엄마처럼 세심하게 돌봐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터커는 오랜 치료 끝에 처음으로 일어나 첫발을 내디디다가 넘어져 크게 다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치료한 후에 그는 다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깨어나자 아빠는 터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아빠가 레이시 간호사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이시 간호사 팔에도 흰 팔지가 붙어 있었고 자기 팔에도 흰 팔찌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레이시 간호사는 그 연유를 말해주었습니다. 그가 넘어져 다쳤을 때 많은 피를 흘려 수혈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는 같은 혈액형이 없어 조사해보니 레이시 간호사의 혈액형이 터커와 같았습니다. 레이시 간호사는 기꺼이 자기 피를 뽑아 터커에게 수혈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터커는 위기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어린 터커는 하나님께 울면서 감사했습니다.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 자신과 피를 나눈 친 엄마가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외적 조건에 의해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감사의 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때에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로 너 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를 핸들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전적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God loves us totally).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하게 사랑하십니다(God loves us completely).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끊임없이 사랑하십니다(God loves us everlastingly)
오늘 우리는 참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은 주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 기쁨이 샘솟듯 합니다.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알면 감사가 넘쳐나고 그 감사는 기쁨이 충만케 합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기뻐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We are called to rejoice in the Lord). 항상 기뻐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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