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운(韻)
신웅순
대금 소리는 저쪽에서 언제나 나를 손짓했다. 거기를 가면 무지개처럼 저쪽에서 또 손짓했다.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보니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
몇 십년을 헤맸다. 파임, 삐침, 갈지. 내 지나온 발자국들이다. 나는 대금 소리를 잡으려고 일생을 돌아다녔다.
까마득 잊고 있었던 어느날 나는 대금 소리를 들었다.
“그믐달로 뚜욱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장”
그 곳은 무영탑 연못 어디 근처였다. 에밀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무영탑 근처 어디쯤/에밀레의 종소리”
거짓말일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난 몇 십년이 걸렸다. 종장을 완성할 수 없어 그냥 손을 놓았다. 낙구 한 수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시인도 있다. 나 역시 그럴까봐 무서워 그냥 봉해버리고 말았다.
“적막도 길을 찾는가/쫓겨가는 구름 한 장”
무영탑 근처 어디쯤
에밀레의 종소리
그믐달로 뚜욱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장
적막도
길을 찾는가
쫓겨가는 구름 한 장
- 「대금 운」 전문
보내고 보니 후회가 되었다.
이미자의「섬마을 선생님」이 나의 18번지이다. 2절에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라는 구절이 있다. 무의식속에 있다 그것이 그만 툭 튀어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유행가 가사라 시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여기엔 토를 달 말이 없다.
떠오르는 낱말이 없다. 오동잎 한 장과 구름 한 장이 또 겹치고 말았으니, 재능이 여기까지니 누굴 탓하랴. 같은 낱말이라도 위치에 따라 시간, 공간 이동이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예라, 이렇게 자위하고는 그냥 두었다.
거미줄에 걸린 종장이 마음에 걸린다. 죽기 전에 소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마땅한 낱말이 있으면 바꾸고 싶다. 재주 없는 내게 신은 ‘옛다’ 하며 눈깔 사탕하나 줄까.
월하문학상이 되었다니 마음이 많이도 불편했다. 누가 만파식적을 쫓아갈 수 있을까. 시란 결국 무지개가 아닌가.
과분한 선평에 많이도 부끄럽다. 멋진 가을을 만나고 아름다운 가을로 돌아왔다.
월하 시조 문학상의『대금 운(韻)』에서 역시 시조의 백미는 단시조임을 여실히 증 명하고 있다. …중략…적막한 속에서 구슬픈 대금 소리를 무영탑의 적막과 에밀레종 소리의 구슬픔을 환치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중장 및 종장인 오동잎 한 장과 적막도 찾아 쫓겨 가는 구름 한 장에서 “오동잎 한 장과 구름 한 장”을 시어로 차용한 것이 이 작품의 높고 낮음에 울리는 공양 된 아기의 울음을 중생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자비 로 은유하고 있다.
- 2023.11.12.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