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곤사님 뫼셔다 드리고 바로 서대문에 있는 문화일보갤러리루 갓슴미다.
백기완 선생님, 김윤수 선생님, 신학철 선생님, 이애주 누임, 장사익 선배, 이인철 선배,이라크 반전평화운동을 출발시킨 염창근 후배님 그리고 몇몇 지인들이 조촐하니 자리를 지켜주셧슴미다.
서로 다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이엇지만, 개인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사시는 분들이라는 것이 이분들의 공통점이엇슴미다.
사익 선배가 여러분들의 부탁으로 소리를 한자락 내놨슴미다.
백선생님이 '한번 더'를 외치는 바람에,
"그이가 좀 그렇긴해두 너무 절실하게 와닿아 노래를 만들엇다"며 서정주의 시로 만든 발표되지 않은 노래와 애주누임의 춤은 '애술'이란 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엇슴미다.
이렇게는 처음일 거라며 사익선배는 팻트뼝 두개로 박을 때림서 소리를 햇고 그 박으로 박을 느끼며 애주누임의 춤이 잇고 끄너지고 무너지고 햇슴미다.
격랑의 팔십오년, 민족미술협의회의 창립 발기인대회를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햇엇는데, 불을 다끄고 양손에 촛불을 들고 애주누임이 부적춤을 추엇댓슴미다. 저는 그 불빛에 비친 누임의 춤으로 전통춤을 처음 접햇는데, 아! 춤이 저런 거구나! 햇슴미다.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며 누임이 저한테 춤을 처음 일러준 분이라고 근 이십년만에 고백햇슴미다.
부니기가 필무렵 미술관을 닫아야해서 밖으로 나왓슴미다.
문화일보 들머리에 세워논 통일솟대 앞에서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박고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할 겸해서 근처 밥집에 들어갓슴미다.
백선생님께 "성생님, 홍어찜 조아하세요?" 여쭈엇더니 "거 조오치" 하셔서 홍어찜을 자리마다 하나씩 부탁햇슴미다.
"홍어찜은 매워야 제맛이지" 하시며 한점을 집엇던 백선생님이 쎄에한 홍어맛에 헛기침을 노셧슴미다.
저는 자리가 너무 조아 삼십칠만 얼마가 나온 자리값을 다 치룰 수 엄써 못내 아쉬웟지만 이십만원이나 썻슴미다.
"백선생님,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여쭸더니 "나 곧 죽을 거야" 말씀하셧슴미다.
"'장산곶 매'를 그림책으로 만들면 어떻겟슴미까?" 여쭸더니 "거 조오치" 하셧슴미다.
병수는 저으 부랄친군데, 이넘이 대뜸
"백성생님, 마당을 나온 암탉 보셧어요? 얘 기림 디게 잘기려요. 하녕아, 거 마지막 장면 그거..."
백선생님 앞에서 아주 쩍팔리는 말을 철엄씨 읊어댓슴미다.
<이미지 속닥속닥>의 최금수랑 과눈미술간 간장하넌 장경호 선배가 늦게 나타나 우덜은 홍대앞에 가서 한잔을 더햇슴미다.
최금수가 첫마디를 이렇게 내놧슴미다.
"이여~ 병수형 전시에 그림그리는 사람도 왓네?'
이 '묘한 말'은 묘한 것 이상을 으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덜은 알아 듣슴미다.
최병수의 활동은 미술 '밖'에 잇엇고, 이것은 다시 미술을 '때려' '변죽으로 복판을 크게 울리는' 북소리와 같기 때문임미다.
넘은 근사한 화가이기 이전에 싸움꾼이기 때문임미다.
어제 저는 참 큰 것을 배웟슴미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일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겟고, 무엇일 수 잇는지를 새롭게 느껴볼 수 잇엇슴미다.
최병수는 전세계를 보고 작업을 함미다.
저같은 소소한 인간하고는 그릇이 다른 친굼미다.
궁민학교 육학년때 출가(!)를 해서 몃날을 시장바닥에서 난장꿀림을 하다가 배가고파 짜장면집에 들어가 배달일을 시작으로 세상을 구른 그는
저같은 책상물림과는 삶을 보는 눈 자체가 전혀 다름미다.
언어도 다름미다.
짜장면 배달, 웨이터, 목수, 배선공, 미장, 보일러, 배관, 분재 따위 세상바닥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살아낸 굵직한 친굼미다.
첫댓글 그 춤을 나도 보고프다...저 부황 걸린 달 밑에서..
최병수, 그이의 걸개그림이 보고시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