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목 (許穆) 과 송시열 (宋時烈) 🍂
조선 효종 때 당대의 두 거물 정치인. 명의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인南人의 거두 허목 許穆과 학자이며 정치가이기도 한 효종의 스승인 노론의 영수 송시열 領首 宋時烈 이야기다.
당시 이 두 사람은 아쉽게도 당파로 인해 서로가 원수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던 중 송시열이 큰병을 얻게 되었는데 허목이 의술에 정통함을 알고 있던 송시열이 아들에게 "비록 정적일망정 내 병은 허목이 아니면 못 고친다. 찾아가서 정중히 부탁하여 약방문(처방전)을 구해오도록 하라!"며 아들을 보냈다.
사실 다른 당파에 속한 허목에게서 약을 구한다는 건 죽음을 자청하는 것이었다.
송시열의 아들이 찾아오자 허목은 빙그레 웃으며 약방문을 써주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약방문을 살펴보니 비상을 비롯한 몇 가지 극약들을 섞어 달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허목의 못된 인간성을 원망하면서도 아버지 송시열에게 그대로 갖다 주었다.
처방전을 살펴 본 송시열은 아무 말 않고 그대로 약을 지어오라고 하고서 약을 다려 먹었는데 병이 깨끗히 완쾌되었다.
허목은 "송시열의 병은 이 약을 써야만 나을텐데, 그가 이 약을 먹을 담력이 없을테니 송시열은 결국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송시열은 허목이 비록 정적이긴 하나 적의 병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송시열이 완쾌했다는 소식을 듣자 허목은 무릎을 치며 송시열의 대담성을 찬탄했고, 송시열은 허목의 도량에 감탄했다.
서로 당파싸움으로 대적하는 사이지만, 상대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인정을 하는 허목과 송시열과 같은 그런 인물이 현세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믿음과 함께 젊어지고 의심과 함께 늙어간다.
사람은 자신감과 함께 젊어지고 두려움과 함께 늙어간다.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젊어지고 절망을 느끼면 늙어간다
나를 비우면 행복하고 나를 낮추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항상 밝고 건강한 삶 영위하시길 바랍합니다.
현세의 국회의원 정치하는 사람들도 허목과 송시열의 관계처럼 정치를 해주면 좋으련만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고 양보와 타협이 없는 정치는 요원의 불길 일까요 ?!
❤️ 허목:1595년 01월 10일 생으로 조선후기때인 후반 군주권 강화를 통한 정치 사회 개혁을 주장했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회보 문보 호는 미수 대령노인으로 1660년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상문제로 제1차 예송이 일어나자 당시 집권세력인 송시열등 서인이 주장한 기년복(만1년상)에 반대하고 자최삼년을 주장했다.
1675년 덕원에 유배중이던 송시열의 처벌문제를 놓고 강경론을 주장하여 온건론을편 탁남과의 대립 청남의 영수가 되었다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관직을 삭탈 당하고 고향에서 후진교육에 힘쎴다 1682년 6월 2일 임종했다.
❤️ 송시열: 1607년11월21일 생으로 조선후기의 정통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 호는 우암 주자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으며 17세기 중엽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렸을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을 존중하고 청을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강상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국가 사회 기강을 철저히 확립 하고자 하였다 1689년 06월 08일 임종했다.
언제나 존경하고 친애하는 페이스북 벗님들 그리고 해병대 선,후배님 가내두루 평안하심을 기원드립니다 ㅎㅎ ❤️ 💕
2025. 02. 13 03:56 구름나그네 ㅡ DJ 윤 ㅡ
첫댓글 송시열은 사대주의자
허목과 송시열 배려하는 관계에 공감합니다
현 시국을 보면 씁슬합니다
송시열과 허목의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현시대에 필요한 분들입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휴일보내세요
이시대에 딱 맞는 글입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의원들이 봐야할듯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