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text-align: left;">멀리 갈 것도 없이<br>그는 윗도리 하나를 척 걸쳐 놓듯이<br>원룸 베란다 옷걸이에 자신의 몸을 걸었다<br>딩동 집달관이 초인종을 누르고<br>쾅쾅 빚쟁이가 문을 두드리다 갔다<br>그럴 때마다 문을 열어 주려고 펄럭인<br>그의 손가락이 풍장되었다<br>하루 대여섯 번 전화기가 울었고<br>그걸 받으려고 펄럭인<br>그의 발가락이 풍장되었다<br>숨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려고<br>창을 조금 열어 두길 잘했다<br>옷걸이에 걸린 그의 임종을<br>해가 그윽이 내려다보았고<br>채 감지 못한 눈을 바람이 달려와 닫아 주었다<br>살아 있을 때 이미 세상이 그를 묻었으므로<br>부패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br>진물이 뚝뚝 흘러내릴 즈음<br>초인종도 전화벨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br>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br>바람이 와서 부지런히 닦아 주고 갔다<br>몸 안의 물이 다 빠져나갈 즈음<br>풍문은 잠잠해졌고<br>그의 생은 미라로 기소중지되었다<br>마침내 아무도 그립지 않았고<br>그보다 훨씬 먼저<br>세상이 그를 잊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br>식아 희야 하고 나직이 불러 보아도<br>눈물 같은 건 흐르지 않았다<br>바람만 간간이 입이 싱거울 때마다<br>짠물이 알맞게 밴 몸을 뜯어먹으러 왔다<br>자린 고비 같은 일 년이 갔다<br>빵을 꿰었던 꼬챙이만 남아<br>그는 건들건들 세월아 네월아<br>껄렁한 폼으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br>경매에 넘어간 그를 누군가가 구매했고<br>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기 전<br>쓸데없는 물건으로 분류된 뼈다귀 몇 개를<br>발로 한 번 툭 걷어찼다<br><br>- 찔러본다, 문학과지성사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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