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이슬람권 문명충돌 번지나
◆사진설명 : 2명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11일 이스라엘 남부 항구도시 시돈 인근의 난민 캠프에서 공중을 향해 총을 쏘며 미국이 공격당한 것을 기뻐하고 있다./시돈=AP 연합
극단적 신념 대립...전쟁 가능성 커져
11일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테러의 주범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으로 굳혀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가 워낙 많고 미국이 강력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앞으로 미국 등 서방측과 이슬람권 간에 3차대전을 방불케 하는 문명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 조정·타협 어려운 ‘신념’의 대결
이러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양측 간의 대결이 조정이 가능한 정책이나 이해 갈등의 차원을 넘어 신념의 대결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라덴의 입장에서 미국에 적개심을 갖고 테러를 감행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팔레스타인과 갈등을 벌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 또 하나는 이슬람교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이 군대를 주둔해 이슬람교도를 모독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는 석유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사활적(vital) 이익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안보는 서구의 유대·기독교 문명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신념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양측 사이에 이처럼 신념의 대결이 전개되는 양상이므로 쌍방에 대한 규정도 정치적인 적대관계를 넘어 윤리적 차원의 악으로까지 극단화된다.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은 미국을 ‘거대한 악마(Great Satan)’로 규정한다. 이들은 스스로 ‘신의 뜻에 따라 이슬람 문명을 부흥시킨다’며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성전(聖戰)에 나선다.
미국 입장에서도 이러한 이슬람 전사들과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담화문에서 테러에 대해 말하면서 ‘악(evil)’이라고 불렀다. 서로를 악으로 규정한 이상,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 상대방 절멸 바라는 양쪽 대중 심리
양측 대중들의 심리상태도 이미 화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드러낸다. 11일의 테러로 명분이야 어떻든 미국에서는 1만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서구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테러를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비열한 행위’로 용서하지 못한다.
서구인들은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들이 자살 테러에 어린이와 여자들이 포함된 아무 죄 없는 승객들을 끌고 들어간 데 대해 “미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거리와 이라크의 방송에서는 기쁨에 넘친 행진곡이 흐른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들이 이슬람 대중에게는 신의 전사가 된다.
서구의 이슬람 공포(Islamphobia)도 이미 보통 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할리우드에서 단골 악역이다. 미국의 인기작가 톰 클랜시(Tom Clancy)의 1997년 소설 ‘집행명령’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는 미국에 대한 에볼라 바이러스 테러를 감행한다.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CNN이 중계하는 가운데 테헤란의 아야톨라의 집에 대형폭탄을 투하한다. 미국과 이슬람 진영 대중 간의 심리적인 간극은 이미 상대의 절멸을 희원하는 수준으로까지 벌어진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1997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유럽·러시아·인도 진영과 이슬람·중국·일본 진영이 문명권 차원의 충돌을 벌이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대 제국 간의 이념 갈등은 문명 간의 충돌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팅턴의 문명권 충돌 시나리오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고 미군이 철수하게 되는 2010년에 시작된다. 문명 간의 거대한 충돌에서 한국도 무심하게 비껴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출처:개벽 대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