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행복사진관 기사 - 영남일보

[kimyoungtae]

허름한 중국집을 '복합사진예술공간'으로…
"영정사진·다문화가정 사진은 무료입니다"
방천시장 프로젝트 일환으로
지난달에 문열고 다양한 실험
행복할때 기분 좋을때 오세요
그때 그 모습을 찍어드립니다

방천시장 행복사진관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작가 양성철씨.

한 다문화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양성철 작가.

캄보디아 출신 한 여성이 사진을 화상으로 보고 있다.

행복사진관의 첫 사진관련 워크숍.

◇… 추억을 찍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50분 대구시 중구 대봉1동 방천시장. 상가 골목 모서리를 핥고 지나가는 한풍은 살점을 애는 듯 찼다. 흡사 시골 소읍의 한적한 장터에 온 듯했다. 겨울해는 아직 정수리에 이르지 못했고 장보는 이도 거의 없어 장터는 집단 휴점에 든 듯했다. 그런데 허공 깊숙이 뜨거운 입김을 쏟아붓고 있는 연통이 눈길을 끌었다. 그 시절 이 맘때 이발관 연탄난로 연통에 면도용 솔을 몇번 척척 문질러 쉐이브크림을 따뜻하게 만들던 이발사의 손길이 언뜻 생각났다. 장터는 얼음장처럼 찼지만 백열전구 같은 저 연통 하나가 기자의 가슴을 더없이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저 연통이 있는 집이 바로 중구 방천시장 안에서 가장 훈훈한 행복사진관이다.

꼭 여느 시골의 술 도가(都家)나 방앗간 같았다. 방천시장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이곳은 20년전까지만 해도 상해반점이 있었다. 반점이 나간뒤 과자 공장이 머물렀고 최근 행복사진관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추억의 간판 자국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해 '상해'자의 'ㅎ'자는 떨어져나가버렸다. 전화번호판도 달아나버려 424-8462란 자국만 남아있다.

지난해 초여름 중구청이 방천시장 1차프로젝트를 봉홧불처럼 올렸고,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지난해 11월17일 2차프로젝트에 참가할 입주작가 10명을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2차프로젝트명은 '문전성시'. 상인과 예술가 1촌맺기 이벤트였는데 이때 행복사진관 대표인 사진작가 양성철씨(63)도 선정작가로 가세했다.

◇…돈이 안 되는 사진만 찍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15일 문을 열어 아직 터 다지기에 여념이 없는 행복사진관.

멀리서 보면 조금 찌그러져 보인다. 방금 출토된 유물처럼 해묵은 흙빛이 안개처럼 감돈다. 빛바랜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벌건 장작을 머금은 주철 난로가 반긴다. 입주할 때 그렇게 손을 많이 대지는 않았다. 예전 주방이던 곳은 흰색 칠을 한 합판으로 유리창벽을 막았다. 처음 가게에 들어가 장판을 걷어내니 곰팡이 투성이여서 치우는 데 적잖이 고생을 했다.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보다 예전 흔적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다. 이곳이 예전에 중식당이란 사실을 알려주듯 그때 창문에 붙어있던 짜장면, 우동이란 글귀가 운치를 더해준다.

양 대표는 장터 터주들에게 인사를 했다. 개업을 하면서 장터 상인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시루떡을 일일이 돌렸다. 상인들은 행복사진관을 참 '경우있는 사진관'으로 받아들여 상인들 스스로 알아서 그 집을 홍보해주고 있다.

행복사진관은 꼭 '복합사진예술공간' 같다.

사진관, 사진갤러리, 사진아카데미, 스튜디오, 세미나실, 사랑방 등 다양한 용도로 변주될 것 같다. 또한 개인프로필 사진, 지역 노인 영정사진,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가족 사진 등을 중점으로 찍어줄 예정이다. 물론 경상비 확보차원에서 무조건 공짜로 가는 건 아니다. 연로한 분들의 영정사진이나 다문화가족 사진 정도는 무료로 찍어준다.

사진관 벽에는 다른 작가들의 사진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김정수, 김종욱, 노현혜, 백종하, 서진은, 안흥국, 정우영, 정진곤 등 지역사진작가의 작품이다. 양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다.



◇… 진짜 모습을 찍어드리겠습니다

사진기는 필름과 디지털카메라.

행복사진관의 제1모토는 연출된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낚는 것. 그래서 문앞에 이런 문구를 걸었다. '행복할 때 기분 좋을 때 오세요, 그때 그 모습을 찍어드립니다''오픈스튜디오, 사진애호가 1천만명 시대의 사진 놀이터'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포토숍 기교'는 철저히 거부한다. 다시말해 '원판불변의 법칙'을 고수한다.

첫 손님은 누구였을까.

호텔 인터불고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양 대표의 친구였다. 친구의 표정은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 무뚝뚝했다. 거기에 은은한 미소가 번질 때까지 기다려줬다. 10번 정도 촬영을 한 뒤 만족할만한 작품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 사진이 액자에 담겨져 출입문 오른쪽 벽에 걸어뒀다.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사진이다. 뭐랄까, 넘치지 않는 미소, 약간 모자란 듯하면서도 충일한 미소가 돋보였다. 여기서는 스마일~, 치즈~, 김치~. 예전 사진관 아저씨들이 맹목적으로 웃기며 찍었던 '형식적 미소'가 아니라 내면이 드러나는 모나리자 미소 같은 '자발적 미소 버전'을 캐낸다.

"입이 완전하게 벌어지기 직전의 미소가 좋죠. 활짝 웃은 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 직전의 표정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컬러보다 흑백을 고집한다. 물론 상품이 아니고 '작품'이기 때문에 꼭 자기 사인을 넣어준다.

◇… 영정 사진은 무료입니다

'장수사진'에도 관심이 많다.

주로 영정 사진에 포커스를 둔다. 기존 생기가 배제된 무채색 영정사진에서 벗어나'유채색 영정사진'을 추구한다. 기존 것은 한결같이 얼어붙고 근엄한 표정 일색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게 행복사진관의 생각. 살짝 미소 품은 영정 사진은 늘 후손에게 얘기를 건네려는 표정이기 때문에 비록 저승에 간 분이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믿는다.

행복사진관은 먼 이국으로 시집온 외국 며느리가 일궈나가는 다문화가족의 '행복 사진'에 부쩍 관심을 쏟고 있다.

첫 손님으로 캄보디아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은 한 영업용 택시기사 가족 사진. 부부 사이에 7개월짜리 아이도 앉혔다. 이럴 때는 양 대표도 아이 때문에 좀 유치하지만'유치원 버전'으로 움직여야 된다.

행복사진관은 절대 '행복한 포즈를 취해보세요' '여길 보세요' '고개를 조금 돌려주세요' 같은 해묵은 주문이 없다. 사진관에 오면 다들 무대에 오른 아마추어 가수처럼 잔뜩 긴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표정을 가질 수 없다. 행복사진관은 스스로 편해질 때까지 기다려준다. 아이에게 장난감도 쥐어주고, 커피도 내놓고, 괜찮은 옷도 입혀준다. 사진을 한번 찍을 때마다 4~5명의 도우미가 필요하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유급인력을 사용할 수 없어 양 대표의 제자와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자청해 무급도우미로 동참한다.



행복사진관 주인장 양성철은


대구 출신의 대표적 미래파 성향의 사진작가.

1979년 대구매일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기존 원로를 배려한 축사, 인사말 등 판에 박힌 오픈 기념식을 없앨 정도로 실험적이다. 82년쯤 김영수, 한정식, 주명덕, 홍순태 등과 함께 국내에선 가장 실험적인 사진작가 모임인 제3사진그룹을 결성한다. 대구 현대미술의 맹아를 키워내며 지금껏 모두 11번의 개인전을 갖고 얼마전 마지막 직장이었던 대구산업정보대 사진영상과를 정년퇴임하고 2년간 백수생활을 하면서 자기만의 양성철에서 '남을 위한 양성철 시대'를 결심한다. 그 부산물이 바로 행복사진관. 호주가인 그는 중구 반월당 행복식당에서 막걸리 마시는 걸 좋아한다. 행복식당의 '행복'이란 말에서 행복사진관의 단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고교 1학년때 악대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고, 2학년 때는 합창부에 들고, 3학년 때는 사진부에 들어갈 정도로 돈키호테 같이 살았다. 집의 엄명에 따라 영남대 상대를 간 뒤 영남대 합창단에서 잘 놀았다. 졸업하던 해 카메라가 생겼고 그때부터 사진외길 인생을 걷는다. 아웃사이더답게 77년에 지역에선 처음으로 케이블TV 영남음악방송을 향촌동 46번지 옛 황금마차 자리에서 개국한다. 82년에는 또한번 사고를 친다. 영남방송을 그만두고 거기 남은 음반을 갖고 중앙파출소 옆에서 지역 첫 사진갤러리 카페 '목언'을 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