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등굣길에 나서
그제 세밑 그믐날은 간절곶 근처 좌천 임랑 바닷가로 나가 비록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일출 서기를 받았다. 어제 새해 초하루는 새벽에 수산교로 나가 낙동강 물줄기에 비쳐 뜨는 해맞이를 다녀왔다. 관공서나 회사에서는 한 해 업무가 시작된 새해 초이틀 목요일이다. 방학도 휴일도 없는 자연 학교에서는 날씨가 추워진 명분으로 실내 수업으로 전환해 도서관을 나가는 날이 잦다.
여느 날과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 원이대로에서 북면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명곡교차로에서 도계동을 거치면서 새해 첫날 일터로 가는 이들 틈에 섞였다. 소답동에서 천주암을 거치면서 차창 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른 모습을 봤다. 굴현고개를 넘으니 저 멀리 백월산이 병풍처럼 둘러 에워싼 산들이 고개를 조아리듯 했는데 화천리 못 미쳐 감계 신도시를 둘러 무동으로 갔다.
동전 일반 산업단지를 지난 산중 아파트단지에서 최윤덕도서관을 찾았다. 설날은 어느 도서관이나 휴관이라 새해 첫 업무가 개시된 날이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중후한 사내가 현관 입구에서 직원과 열람자를 맞았는데 아마 관장으로 짐작되는 분이었다. 초면이었지만 덩달아 인사를 나누고 2층 열람실로 오르자 사서 업무가 개시되기 전이라 밖에서 10여 분 기다려 9시에 입실했다.
열람실에서 눈길이 먼저 닿는 곳에 비치된 노벨상 수상자 한강 작품 코너에서 아직 못다 읽은 ‘여수의 사랑’을 꺼냈다. 이어 인문학 서가에서 김종원 신간을 한 권 뽑고 돌아서니 자연과학 서가였다. 거기서 평소 관심 두고 있던 산나물 도감과 자연 생태계에 관한 서책을 서너 권 골라내 뽑았다. 이른 시각이라 열람실은 한산했는데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아늑한 구석 자리를 차지했다.
등에 짊어진 배낭과 목도리를 풀고 본격적인 독서삼매에 들었는데 아카데미북에서 펴낸 이형설의 ‘산에 들에 우리 나물’ 도감을 먼저 열었다. 책을 엮은이는 연구실에서 학문적 체계를 이룬 학자가 아닌 현장을 누벼서 펴낸 책이라 유익한 정보를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광부의 아들로 가사에 도움 주려 함백산을 오르내려 산나물을 뜯던 어머니를 따라나선 추억을 떠올렸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 식물도감과 달리 산나물 하는 법, 즉 산채(山菜) 방법부터 소개했다. 옷차림은 어떻게 해야 하고 준비물을 무엇을 챙기는가였다. 나는 봄부터 여름까지 집을 나서면 발길 닿는 그곳까지 내 텃밭이나 마찬가지라 산채 기본은 익히 잘 아는 내용이었다. 산채는 단독 산행도 해야 해 무엇보다 안전에 유념하고 자연을 훼손하거나 사유림 관리 구역에 들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독성이 있는 산야초에는 무엇이 있으며 때로는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독성을 제거하고 식용 가능한지도 친절히 안내했다. 내가 알고 있던 산야초 지식에서 더 확장 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산나물과 들나물에 이어 나뭇가지에서 돋는 순으로 산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까지였다. 산나물을 근접 촬영 사진과 함께 맛깔스러운 찬으로 조리한 모습까지 곁들여 유익한 정보였다.
산나물 도감을 펼쳐 오전을 보내고 점심때가 되어 북카페로 내려가 따뜻한 커피를 받아 준비한 술빵 조각으로 한 끼 때웠다. 휴게실에서 다시 열람실로 올라 오후에는 강원도 약초꾼 권혁조가 쓴 ‘잡초가 명약이다’를 일별하고 심성 착한 수의사 박종무의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를 읽었다. 지속이 가능한 생태 유지를 위해 과도한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검소한 삶을 본받을 만했다.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은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인 아늑한 열람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뽑아둔 서책에서 시간이 모자라 펼치지 못한 책도 있었다. 어딘가 코너에서 역사 고적과 답사 여행에 관한 책도 봤는데 후일에 찾아 읽을 셈이다. 서산으로 해가 설핏 기울 때 도서관을 나왔다. 오후가 되자 아파트단지 사는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아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