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씬 젊은이가 웬 주름살이 그렇게 많아요?” “불혹이 지났으니, 저도 중년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웃으면 얼굴에 주름살이 찌글찌글 잡히는 말라깽이 얼굴이었다. 중년이 되어 일만 하면 되니까, 외모의 부담에서 훌떡 벗어난다. 어떤 여자가 예쁜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하기 싫은 공부 안 해도 된다. 애들은 완전히 나에게 의존하고,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아첨 비슷한 것도 한다. 아~, 중년은 참 좋은 나이구나.
50대가 되니 숫자가 두려워진다. 하지만 30대의 젊은이와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의 차이가 없으니, 어차피 팔팔한 중년이다. 환갑 닥치기 전에 열심히 일하고 실컷 먹고 빨빨 뛰놀아야겠다. 뚜렷한 중년의 나이로 인생은 자꾸 영글어만 간다.
64세인 홀아비 선배가 62세인 할머니와 재혼을 한다고 한다.
“아이구 깜짝야. 60이 훌떡 넘은 늙은 남자가 재혼을 해? 환갑이 넘은 신부? 세상이 훼까닥 한 거니, 그 선배 간덩이가 팅팅 부은 거니?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이게 웬 주책들이야?”
내가 60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세상이 또 바뀌었다.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늙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어머~, 저 남자가 환갑 노인이야?” “환갑이면 그냥 환갑이지, 거기다 노인이란 말은 왜 붙입니까? 어디로 봐서 내가 노인으로 뵙니까?”
노인도 세 층이다. 염색약과 거울을 달고 사는 흑발노인, 외모에 아주 신경을 끈 백발노인, 차라리 잊고 싶은 군더더기 정물노인이 있다. 은퇴를 하고 보니 노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무슨 대화를 하며 소일할까 궁금해졌다. 나도 점잖은 말투 가다듬으며 늙은이축에 끼어들어 본다.
“이제 60 몇 살 먹었다고? 그럼 알라들 아이가? 어데서 70도 안 된 새파란 것들이 놀고먹으려 들어?” 늙수그레한 노인이 어정어정 앞으로 나서며 한 수 더 뜬다.
“기가 막혀! 요것들이 은퇴했으면 늙은 줄로 착각하고, 제법 헛기침하려 드네.”
그렇다. 아무래도 내가 노인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젊고, 늙었다고 말하긴 낯간지럽다. 그러니 또 중년이다. 천국여행이니 황천나들이니 요상한 이름 붙이며, 이 친구 저 동창이 장례식 초청장을 보내온다. 젊은이도 죽는데, 중년이라고 죽지 말라는 법 있나? 늙어 죽는 게 아니라 병들어 죽는 건데 인간이 어쩌겠어? 그 사람은 암이라는 특별한 병에 걸렸기 때문에 죽었고, 이 사람은 운 나쁘게 심장병이란 이상한 병이 들어서, 죽은 채로 발견됐을 뿐인데 뭘 그래? 어쩌다 명이 짧아 그냥 죽은 거지, 늙어서 죽은 건 아니다.
75세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엄살을 피웠다.
“에이~ 하나님, 농담? 죽은 나뭇가지처럼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들을 낳아요?”
겉늙은이 속 능구렁이였던 아브라함은 죽은 나뭇가지 같다던 육체로 하갈의 팔자를 우선 망쳐 놓았다. 또 100살이 됐을 때는, 염치 좋게 사라에게서 아들도 낳았다. 이것은 전혀 놀랄만한 노릇이 아니다. 127세로 사라가 죽자, 137세 된 아브라함은 잽싸게 케투라라는 여인과 재혼하여 6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그것까지도 놀랄만한 일이 못 된다. 사라가 살아 있을 때는 하갈을 건드리는 것조차 죄의식으로 조심스러웠지만, 한번 불붙은 늦 탕아 끼는 무서웠다. 산성 체질이니 알카리성 여체니 따지면서, 아들 낳는 테크닉을 익힌 아브라함은, 후처 케투라 이외에 여러 첩을 두어 많은 아들들을 닥치는 대로 낳았다. 이스마엘과 이삭을 끼고돌며 싸우는 사라와 하갈의 전쟁판을 이미 겪은 아브라함이다. 적자인 이삭과 서자들이 싸울까 봐 걱정이 된 아브라함은, 살아생전에 서자들에게 약간의 선물만 주어, 동쪽 땅으로 모두 내몰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그냥 늙은 척했든가, 75세에 죽은 나뭇가지처럼 남성능력이 완전히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든가 했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니까, 너무 좋아서 벌컥 회춘하게 됐을 수도 있다. 회춘은 정신적인 문제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팩맨이 피자 잘라먹듯, 세월은 내 인생을 10년씩 한꺼번에 덥석덥석 먹어치운다.
“이제 작년부로 7학년이 되었습니다.” “어~, 새파란 중년이시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젊은 척할 필요도 없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따지려 덤빌 건더기는 더 없다. 주위 사람들은 이미 나를 중년으로 분류해 버린다.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의 수명이 자꾸 연장된다. 나는 30년 전에도 중년이고 20년 전에도 중년이었는데, 지금도 아직 중년이다. 미루어보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나는 중년으로 남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중년은 일평생 중 가장 좋은 나이다. 만년 중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에 내가 노년 상태로서 인간 수명이 계속 늘어났다면 어땠을까? 선악과 따먹어 죄지은 인간이 생명과일 나무에서 생명과까지 훔쳐 먹은 꼴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죽지도 않고 만년 늙은이 신세로, “여기 아파, 저기 아파,” 하면서 계속 살아야 했을 테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니, 중년으로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중년을 만끽하며 살아감은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언제까지나 중년으로 살다가 넘치는 감사를 안고 영생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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