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석으로
쇳송을 허면서, 목탁석을 허면서 노상 외우면서도 우리는 그냥 염불로써만 외우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가?
그것은 그만큼 위법망구적으로 목숨을 바챠서
고행정진을 헌 뒤끝이고, 그 반 토막 게송을 듣기 위해서 나찰귀신에 목숨을 바친 그런 위법망구적인 신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게송 반 구절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헌 것이다 그 말이여.
자기 자신이 평소에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단 한 생각도 그냥 방치허지
아니하고 즉각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터억 화두를 들고 ‘이 뭣고?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슬픈 생각이 일어나거나 기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과거일이 생각나거나
미래일이 생각나거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그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일어나는 그 당처를
찾는 거여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항상. 밥을 먹을 때도 ‘이 뭣고?’
똥을 눌 때도 ‘이 뭣고?’ 걸어갈 때도 ‘이 뭣고?’
일을 하면서도 ‘이 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 뭣고?’
슬플 때도 ‘이 뭣고?’
인생은
어차피 흥망성쇠와 생로병사 희로애락 그 속에서
눈을 뜨나 감으나 먼 디에서 가까운 디에서 그것을
여의고는 우리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고 느낄 것이 없어.
그 속에 끌려 들어가서 몸부림을 쳐봤자 생사윤회
밲에는 없어. 바로 거기에서 그놈에 즉해가지고 ‘
이 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유일한 길이여.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