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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7회
평왕이 동천하여 어가가 낙양에 당도하여 보니, 시가가 조밀하고 궁궐이 장려하여 호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평왕은 심중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도읍이 정해지자, 사방 제후들이 표문을 올려 칭하하고 공물을 바쳤는데, 유독 형(荊)나라만 빠졌다.
[서주 시대부터 양자강 이남의 남방 지역을 ‘가시나무(荊=楚) 우거진 밀림 지대’라는 의미에서 ‘초’나 ‘형’으로 병칭했다가, 그 지역에 유력 제후국이 건립되자 그대로 초나라 또는 형나라로 불렀다.]
평왕이 노하여 형나라를 치려 하자, 신하들이 간했다.
“만형(蠻荊)은 오랫동안 왕의 교화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는데, 선왕(宣王)께서 처음 토벌하여 복종시켰습니다. 매년 청모(菁茅) 한 수레만 공물로 바쳐 제사 지낼 때 술을 거르는 용도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 외의 다른 공물을 요구하지 않은 까닭은, 먼 곳에 있는 저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막 천도하여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만약 왕의 군대가 멀리까지 토벌하러 간다면 민심이 따를지 알 수 없습니다. 차라리 포용하여 저들이 은덕에 감동하여 스스로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혹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다면, 병력이 충족되기를 기다린 후에 토벌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만(蠻)’은 ‘오랑캐’라는 뜻이니, ‘만형’이란 형나라가 먼 변방에 있으며 중국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낮추어 부르는 것이다. ‘청모’는 띠풀의 일종이다.]
이리하여 남방을 토벌하려는 논의는 중지되었다.
어느 날, 진양공(秦襄公)이 귀국하겠다고 평왕에게 아뢰었다. 평왕이 말했다.
“지금 기·풍 땅의 절반을 견융이 침략하여 점거하고 있소. 경이 만약 견융을 거기서 몰아내면, 그 땅을 모두 경에게 하사하여 작게나마 어가를 호위한 노고에 보답하겠소. 그리하여 秦이 영원히 서쪽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소?”
진양공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고 귀국하였다. 진양공은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군마를 정돈하여 견융을 멸할 계책을 세웠다. 3년이 되지 않아, 견융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고 그 대장 패정과 만야속 등은 전장에서 죽고 견융주는 멀리 서쪽의 황무지로 도망쳤다.
[‘풍비박산’은 바람이 흩어지고 우박이 사방으로 날리듯 패하여 흩어지는 모습을 말한다.]
이리하여 기·풍 땅은 모두 秦의 소유가 되어, 秦은 땅 넓이가 천리가 되어 마침내 대국이 되었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읊었다.
文武當年發跡鄉 문왕 무왕이 왕업을 일으킨 고장인데
如何輕棄畀秦邦 어찌 가볍게 포기하여 秦에게 주었는가?
岐豐形勝如依舊 기풍의 뛰어난 형세 예전대로 두었더라면
安得秦強號始皇 어떻게 秦이 강해져 시황(始皇)이라 불릴 수 있었으랴!
秦은 오제(五帝) 가운데 두 번째인 전욱(顓頊)의 후예이다. 그 후손 가운데 고요(皐陶)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임금 때 형벌을 맡은 사사(士師) 벼슬을 지냈다. 고요의 아들 백예(伯翳)는 우(禹)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험한 산과 무성한 늪지를 불태우고 맹수를 몰아낸 공으로 영(嬴)이라는 성(姓)을 하사받고 순임금 밑에서 가축 기르는 일을 주관하였다. 백예는 약목(若木)과 대렴(大廉)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약목은 서(徐)나라에 봉해져, 하왕조와 은왕조 이래로 대대로 제후가 되었다.
은나라 주왕(紂王) 때에 대렴의 후손으로 비렴(蜚廉)이란 자가 있었는데, 달리기를 잘하여 하루에 5백 리를 달릴 수 있었다. 그 아들 오래(惡來)는 힘이 엄청 세서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손으로 찢을 수 있었다. 부자가 둘 다 재능과 용맹을 지녔기 때문에 주왕의 총애를 받아 학정(虐政)을 도왔다.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했을 때, 비렴과 오래를 처형하였다.
[‘惡來’는 ‘오래’로 읽기도 하고 ‘악래’로 읽기도 한다.]
비렴의 막내아들이 계승(季勝)인데, 그 증손자가 조보(造父)이다. 조보는 말을 잘 다루어 주목왕(周穆王)의 총애를 받아 조(趙) 땅에 봉해져, 진(晉)나라 조씨(趙氏)의 조상이 되었다. 조보의 후손 가운데 비자(非子)라는 자가 있었는데, 견구(犬邱) 땅에 살면서 말을 잘 길렀다. 주효왕(周孝王)이 그를 기용하여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을 기르게 하였는데, 말이 크게 번식하였다. 주효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비자를 秦 땅에 봉하여 부용(附庸)의 군주로 삼아 영씨(嬴氏)의 제사를 잇게 하고 영진(嬴秦)이라 불렀다.
[‘부용’은 앞서도 설명한 바가 있는데, 큰 제후국에 속하는 작은 나라이다. 진양공이 백작으로 봉해지면서 비로소 제후국이 된다.]
비자로부터 6대째 양공에 이르러 평왕을 옹립하는 공을 세워 진백(秦伯)에 봉해진 것이다. 그리고 기풍 땅을 얻어 그 세력이 더욱 강대해졌고, 옹(雍)에 도읍을 정하여 비로소 제후들과 교제하게 되었다. 양공이 훙거(薨去)하고, 아들 문공(文公)이 즉위하였는데, 그때가 평왕 15년이었다.
[‘훙거’는 임금이나 귀인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천자의 죽음은 ‘붕어(崩御)’라 하고, 보통사람의 죽음은 ‘졸(卒)’이라 표현한다.]
어느 날, 진문공이 꿈을 꾸었는데, 역읍(酈邑)의 들판에서 누런 뱀이 하늘에서 내려와 산비탈에 머물렀다. 머리는 수레바퀴만 하고 몸뚱어리는 땅에 닿았는데 꼬리는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잠깐 사이에 뱀은 어린아이로 변하여 문공에게 말했다.
“나는 상제(上帝)의 아들이오. 상제께서 그대를 백제(白帝)로 삼으시고 서방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말을 마치자 아이는 사라졌다.
다음 날, 문공은 태사 돈(敦)을 불러 점을 쳐보게 하였다. 돈이 점을 쳐보고서 아뢰었다.
“白은 서방의 색입니다. 임금께서 서방을 차지할 것을 상제께서 명한 것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복을 얻을 것입니다.”
문공은 부읍(鄜邑)에 높은 대를 쌓고 백제묘(白帝廟)를 세워 부치(鄜畤)라고 이름 하였으며, 흰 소를 희생으로 바쳐 제사를 지냈다.
[‘백제’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의 하나로서, 가을을 맡아보는 서쪽의 신(神)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백제는 秦나라 혹은 秦나라의 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훗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백사(白蛇)를 참했는데, 그걸 적제(赤帝)의 아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즉 유방이 秦나라를 멸망시킬 징조라는 것이다. 적제는 여름을 맡아보는 남쪽의 신으로, 漢나라나 고조 유방을 상징하기도 한다.]
진창(陳倉)에서 어떤 사람이 짐승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돼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몸에 가시가 많았다.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고 그 이름도 알 수 없어, 문공에게 바치려고 끌고 갔다. 도중에 두 동자를 만났는데, 동자들이 그 짐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짐승은 이름이 ‘위(蝟)’인데, 항상 땅속에 엎드려 있다가 죽은 사람의 뇌를 먹습니다. 그 머리를 때리면 즉사합니다.”
그러자 위라는 짐승이 사람의 말을 했다.
“이 두 동자는 꿩의 정(精)인데, 이름을 진(陳)·보(寶)라 한다. 수컷을 얻는 자는 왕이 되고, 암컷을 얻는 자는 패자(霸者)가 된다.”
두 동자는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나자 즉시 들꿩으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암컷은 진창산으로 날아가 북쪽 비탈에 내려앉아 석계(石雞)로 변했다. 그 사이에 위라는 짐승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냥꾼은 기이한 일에 깜짝 놀라, 달려가 문공에게 그 일을 고하였다. 문공은 진창산에 진보사(陳寶祠)라는 사당을 세웠다.
종남산(終南山)에 큰 가래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문공은 그 나무를 베어 궁전의 재목으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톱질을 해도 잘려지지 않았고, 도끼로 찍어도 날이 들어가지 않았다. 홀연 큰 비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여, 작업을 멈추었다.
그날 밤, 벌목꾼들이 산 아래에 유숙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많은 귀신들이 모여들어 가래나무에게 잘리지 않은 것을 축하하자, 나무의 신도 그 말에 응대하고 있었다. 그때 한 귀신이 말했다.
“만약 진군(秦君)이 벌목꾼들에게 머리를 풀어헤치게 하게 붉은 실로 나무를 동여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러자 나무의 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 벌목꾼이 귀신들이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문공에게 고하였다. 문공은 귀신이 말한 대로 벌목꾼들로 하여금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무를 붉은 실로 동여맨 다음 톱질을 하게 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나무가 잘려졌다. 그런데 잘려진 나무 속에서 파란 소가 튀어 나오더니, 옹수(雍水)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에 옹수 가에 사는 주민들이 파란 소가 물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문공은 그 말을 듣고, 기사(騎士) 후(候)를 보내 소를 잡아오게 하였다. 하지만 소가 힘이 엄청 세서, 기사는 소에게 받혀 땅에 넘어졌다. 기사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을 가리자, 소는 두려워하면서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문공은 군중(軍中)에서는 더벅머리를 하도록 제도화했다. 또 노특사(怒特祠)라는 사당을 세우고 가래나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秦나라가 훗날 천하를 통일하게 되므로, 이런 기이한 얘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노혜공(魯惠公)은 秦나라가 참람하게 상제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듣고, 태재 양(讓)을 주왕실로 보내 교체(郊禘)의 예(禮)를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하게 하였다. 하지만 평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교(郊)’는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것이고, ‘체(禘)’는 선조를 천신(天神)에 배향하여 제사지내는 것인데, 천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상제에게 제사지내는 것 역시 천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제후들이 이런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천자를 우습게 여기는 처사이다. 이처럼 신분을 뛰어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참월(僭越)이라 한다.]
노혜공이 말했다.
“우리 조상 주공(周公)께서는 왕실에 큰 공로를 세웠으며, 예악(禮樂)도 우리 조상께서 제작하신 것인데, 자손이 그 예를 행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천자는 秦나라는 금하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우리 노나라만 금한단 말인가?”
[여기서의 ‘주공’은 무왕의 아우 희단을 말한다. 무왕이 주왕조를 세운 후 주공을 노나라에 봉하였으며, 주공은 주나라의 예악제도를 정비하였다.]
마침내 노혜공은 교체를 지내 스스로를 왕실에 견주었다. 평왕은 그걸 알고서도 감히 문책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왕실은 나날이 쇠약해져 가고, 제후들은 각자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서로 침범하기 시작했다. 천하는 점점 어수선해지면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自古王侯禮數懸 예로부터 왕과 제후는 예법이 현격하여
未聞侯國可郊天 제후국이 교체를 지낸다는 건 듣지 못하였네.
一從秦魯開端僭 秦과 魯가 참월한 짓을 시작하니
列國紛紛竊大權 열국이 어수선하게 대권을 훔치려 하네.
한편, 정나라 세자 굴돌이 군위를 계승하니, 그가 정무공(鄭武公)이다. 무공은 주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동괵(東虢)과 회(鄶)을 병탄하고 회로 도읍을 옮겨 신정(新鄭)이라 하였다. 형양(滎陽)을 경성(京城)으로 삼고 제읍(制邑)에 관문을 설치하였다. 정나라는 이때부터 강대국이 되었고, 위무공과 함께 주나라 조정의 경사(卿士)가 되었다.
평왕 13년 위무공이 훙거하자, 정무공은 홀로 주나라 정권을 손에 쥐었다. 그때 정나라 도성 형양은 낙양과 가까워 무공은 때로는 주나라 조정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본국에 있기도 하며 양쪽을 왕래하였다.
한편, 정무공의 부인은 신후(申侯)의 딸 강씨(姜氏)였는데, 아들을 둘 낳았다. 장자는 오생(寤生)이라 하고, 차자는 단(段)이라 하였다.
[제6회에, 평왕 등극 후 신후가 딸을 굴돌(정무공)에게 시집보냈었다.]
장자의 이름을 오생이라 한 것은 연유가 있었다. 강씨가 아이를 낳을 때 제대로 자리를 펴고 낳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면서 꿈속에 해산했는데 깨어 보니 실제로 아이를 낳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강씨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잠깰 오(寤)’에 ‘날 생(生)’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강씨는 그 일을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짓지 말든지, 아니면 불쾌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차자 단은 풍채가 당당하였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하얗고, 입술은 주사(朱砂)를 바른 듯 붉었다. 또 힘도 세고 활도 잘 쏘았으며, 무예도 고강하였다. 강씨는 심중으로 이 아들만 편애하고, 단이 군위를 계승하면 오생보다 열 배나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누차 남편 무공에게 차자의 현명함을 칭찬하면서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둘 다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들인데, 어머니로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외모는 단이 훌륭했지만, 능력은 과연 누가 나을까?]
무공이 말했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이니, 질서를 문란하게 해서는 안 되오. 게다가 오생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어떻게 장자를 폐하고 어린애를 후계자로 세우겠소?”
마침내 무공은 오생을 세자로 삼았다. 단에게는 아주 작은 공성(共城)을 식읍으로 주었다. 그래서 단을 공숙(共叔)이라 부르게 되었다. 강씨는 심중으로 더 불쾌하였다.
무공이 훙거하고 오생이 즉위하니, 그가 정장공(鄭莊公)이다. 장공은 부친의 관작을 이어받아 주나라 조정의 경사(卿士)가 되었다.
강씨는 공숙이 아무런 권력이 없는 것을 보고 불만이 가득하였다. 어느 날 강씨가 장공에게 말했다.
“그대는 부친의 군위를 계승하여 수백 리의 땅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배에서 나온 아우는 한 몸을 용납하기도 어려운 조그만 땅에 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소?”
장공이 말했다.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왜 제읍(制邑)에 봉하지 않소?”
“제읍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선왕께서 유언하시기를, 제읍은 누구에게도 봉지로 나누어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읍 외에는 어디든 어머니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경성(京城)이 좋겠소.”
장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씨는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그것도 안 되겠다면, 차라리 타국으로 쫓아내시오. 거기서 벼슬을 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면 되겠지.”
장공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장공은 물러나왔다.
다음 날, 장공은 조회를 열고 공숙 단을 경성에 봉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대부 제족(祭足)이 간하였다.
“안 됩니다. 하늘엔 두 개의 해가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경성은 백치지웅(百雉之雄)으로서 땅도 넓고 인구도 많아 형양과 대등합니다. 더구나 공숙은 모후께서 특히 총애하시는 아들이라, 그렇게 큰 고을에 봉하면 임금이 둘이 되는 격입니다. 공숙은 모후의 총애를 믿고 있으니,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백치지웅’은 성벽의 높이가 1장(丈)이 넘고 주위가 3백 장이 넘는 큰 성을 가리킨다. ‘京城’은 지명이 아니라 ‘도성(都城)’이라는 뜻이다. 앞서 정무공이 형양을 경성으로 삼았다고 하였으니, 형양이 정나라의 도성 곧 경성이다. 그런데 지금 형양과 경성을 다른 곳으로 말하고 있는데, 작가의 착오인 것 같다. 일단 경성을 형양 다음으로 큰 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장공이 말했다.
“모후의 명인데, 어찌 감히 거역하겠소?”
마침내 장공은 공숙을 경성에 봉하였다. 공숙은 장공에게 사은하고 물러났다.
공숙은 내궁으로 들어가 모후 강씨를 만났다. 강씨는 좌우를 물리치고 단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너의 형은 형제의 정을 생각지 않고, 너를 아주 박대하고 있다. 오늘 너를 경성에 봉한 것도, 내가 몇 번이나 간청했기 때문이다. 오늘 비록 할 수 없이 내 말에 따르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필시 순종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너는 경성에 가거든 병사와 병거를 모아 은밀하게 준비하도록 해라. 만약 기회가 생기면, 내가 너를 돕겠다고 약속하마. 네가 군대를 일으켜 바깥에서 기습하고 내가 안에서 호응하면, 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오생을 대신하여 군위에 오르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공숙은 이때부터 경성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나라 사람들은 공숙을 경성 태숙(太叔)이라 불렀다. 태숙이 관아에 처음 등청한 날, 서쪽 변방을 지키는 관원과 북쪽 변방을 지키는 관원이 와서 칭하하였다. 태숙 단이 두 관원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관장하고 있는 땅은, 이제 내 봉토에 속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공물과 조세는 모두 나에게 바치고, 병사와 병거도 내 요청에 따라 징집하라. 결코 어겨서는 안 될 것이다.”
두 관원은, 태숙은 국모가 총애하는 아들이며 장차 군위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태숙을 보니, 풍채도 당당하고 재능도 출중한 것 같아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복종하였다.
태숙은 사냥한다는 핑계를 대고, 날마다 성을 나가 군사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서쪽과 북쪽 변방의 주민들을 모두 군적에 편입시켰다. 또 멀리 사냥을 나가는 척하여 언(鄢)과 늠연(廩延) 땅을 기습하여 점거하였다.
첫댓글 이목지신의 법가 상앙이 등장하고 곧이어 진시황제가 나오겠군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가 고조됩니다.
골드훅님 덕택에 훌륭한 소설을 쉽게 읽을 수 있어 매우 즐겁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나눔하는걸요
곡 성님 같은분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