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느티나무

2024. 09. 20 금요일       (2297 회) - 고향(故鄕) 그리고 느티나무 - 사람들의 섬김과 보살핌을 받던 느티나무가 우리 시대(時代)에 인간에게 외면(外面) 을 당하고 있다. 주민(住民)들이 도시(都市)로 떠나고 마을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이제 느티나무는 홀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야위어가고 있다. 추석(秋夕)이면 고향(故鄕)에 간다. 길이 막혀도, 형편이 궁해도 집을 나선다. 나이가 들었어도 고향(故鄕)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고향(故鄕) 생각을 하면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는 귀신을 쫓는다! 는 속설(俗說)이 있다. 그래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심었다. 추석날 보름달이 느티나무에 걸려 있는 풍경(風景)은 마을이 풍요롭고 평화(平和) 롭다는 징표처럼 보였다. 하지만 설레며 찾아간 고향(故鄕)은 옛 모습이 아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世上)을 뜨고 어머니들도 하나둘 떠나간다. 빈집이 늘어나고 아기 울음마저 끊긴 곳이 많다. 마을에는 풍문(風聞) 마저 떠 돌지 않는다. 그저 고요할 뿐이다. 마을은 쇠락하여 그 이름마저 희미해졌다. 다만 느티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쉼터요, 굿판이요, 의견(意見)을 모으던 회의장이요, 마을재판이 열렸던 간이법정이었다. 느티나무는 아이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송아지 울음소리, 상여(喪輿) 나가는 소리, 기도(祈禱) 소리, 불효자(不孝子) 울음소리를 들으며 몸집을 불렸다. 마을 주민(住民)들의 태어남과 떠남을 지켜봤다. 그렇다보니 느티나무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다. 그 이야기는 세월(歲月)이 흐르면 전설(傳說)이 되고 달빛을 받으면 설화(說話)가 되었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그 자태(姿態)가 우람하지만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便安)해진다.  500∼600년은 족히 살고, 어떤 나무는 천년 넘게 세상(世上)을 굽어보고 있다. 이 땅에 천년(千年)을 산 느티나무가 있다면 고려(高麗)의 햇빛을 받고 태어나 조선(朝鮮)의 바람을 맞고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렇듯 온갖 풍상(風霜)을 이기고 살아남았지만 요즘 가장 큰 위기(危機)를 맞고 있다. 생명평화순례단과 함께 고을을 찾아가 빌어먹는 탁발순례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땅의 많은 느티나무를 볼 수 있었다. 쇠락한 마을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한눈에 봐도 건강(健康)하지 못했다. 모습은 우람했지만 왠지 기운(氣運)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급히 주저앉는다. 집은 기둥이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집식구들이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사람 냄새가 지워지면 지붕 위에 풀이 난다. 느티나무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교감(交感)하며 살아왔다. 울안의 감나무가 주인(主人)이 떠나면 열매를 맺지 않듯이 아마 느티나무도 그럴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기를 받아야 비로소 늠름할 것이다. 사람들의 섬김과 보살핌을 받던 느티나무가 우리 시대에 인간에게 외면(外面)을 당하고 있다. 주민들이 도시(都市)로 떠나고 마을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이제 느티나무는 홀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야위어가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펼쳐졌던 공동체(共同體)의 삶이 스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고향(故鄕)의 느티나무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떠나고 홀로 고향(故鄕)이 되어 있다. 느티나무를 향해 안녕(安寧)과 복(福)을 빌던 사람들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고향(故鄕)을 그리며 살아갈까. 느티나무가 그 무성한 잎들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 주고 너털웃음을 터뜨릴 그날이 올까. 고향(故鄕)은 자꾸 말라가는데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까. 고향(故鄕)에 가거든 느티나무에 기대어 보시라. 느티나무에게 말을 걸어 보시라. 느티나무 아래서 옛 벗들과 막걸리 한잔하시라. 좀 여유(餘裕)가 있다면 느티나무에 걸린 보름달을 보고 오시라. 느티나무에 걸려 있는 간절한 소원(所願) 들을 담아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