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화천경찰서장
해마다 여름이면 ‘물의 나라’ 화천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백일장이 열립니다.
백일장 시상을 하기 전에 사생대회 시상이 있었습니다.
입상자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습니다.
특히, 화천 경찰서장이 시상하는 순서에 올라온 “꼬마‘는 말 그대로 꼬마였습니다.
아이가 서장 앞에 서고 사회자가 시상 내용을 읽기 직전,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경찰서장이 망설임 없이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왜 저러지?
아! 상황이 금방 이해됐습니다.
아이와 키를 맞춘 것입니다. 아니, 아이보다 더 낮아진 것입니다.
권위를 상징하는 정복을 입은 경찰서장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
그 순간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안도감을 읽은 건 저 혼자뿐이었을까요?
서장은 궁금한 듯이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상장에 쓰인 내용이 잘 보이도록 눈앞에 펼쳐줬습니다.
시상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었지만)와 손자가 다정히 무언가 나누는 모습이었지요.
감동적이었습니다. 한 지역 경찰의 수장이 보여주는 그 유연한 자세라니...
지금까지 지녀온 편견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진짜배기 권위는 땅 속에 묻히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그 작은 파격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해 보이던지.
사람이 타인의 시선 앞에서 가장 민망한 혹은 피하고 싶은 자세를 취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격식을 내려놓고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출 때 가장 큰 사랑의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호준/『자작나무숲으로 간 당신에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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