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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굉장히 길다보니 커피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가지고 읽으세요^^
과거의 영웅 박찬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고 그 변화속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
하지만 , 그의 눈매는 아직도 메이저리거 박찬호였던 당시 그대로 매서운 눈빛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가정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가 슬럼프에서 힘든 나날을 보낼때
박찬호 그를 지탱하게 해주었던건 가정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감과
너무나도 사랑하는 부인과 딸 , 그리고 팬들의 격려였다고 한다.
식단과 잠자리까지 박찬호 그는 , 온통 야구생각뿐이다.
한국인은 밥힘으로 살아간다는 말처럼 , 항상 한식만 고집하고
야구선수에게는 생명줄이라고 불리는 허리관리를 위해 침대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바꾼다고 한다.
그는 아직까지도 오로지 야구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참 박찬호가 주가를 올리던 시절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1등 신랑감이었던 박찬호.
그런 박찬호가 교포 3세였던 부인에게 일주일간 매달리면서 고백을 했던건
부인의 마음 씀씀이와 요리하는 모습에 반해서 청혼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세상에서 둘도없는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한다.
박찬호가 소속되있는 필라델피아 락커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방송에 공개하지 않았던 곳이지만 흔쾌히 촬영을 승낙해주었다고...
박찬호는 매일 편지들을 확인한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하루에 100통이상씩도 왔지만
현재는 하루에 1통도 올까말까 해서 서운하지만서도 , 아직까지도 잊지않고 편지를 보내주시는분들을 보면
자신이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기반성과 , 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일일이 편지를 읽고 사인해주는게 그의 낙이라고 ...
필라델피아 홈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구원투수가 대기하는 장소인 불펜에 앉아있다.
자신이 경기에 필요로 할때까지 , 언제가됬건 묵묵히 기다리고 또 기다릴뿐이다.
비록 선발은 아니지만 박찬호는 이 경기장에서 선수로써 입장하는것 조차 감사하다고 한다.
과거 메이저리그의 톱스타 박찬호.
그리고 현재 불펜에 앉아있는 박찬호.
현재는 스포츠스타 박지성의 시대라고 한다면 당시에는 박찬호 시대였다.
6.25 전쟁이 끝난 당시만 해도 미국 언론이 우리나라를 보며 한문장으로 요약했다고 한다.
-희망이 없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검은 눈동자 , 검은머리를 가진 22살 청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돌풍을 일으켰다.
과장을 조금하자면 ,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알기전에 박찬호라는 사람을 먼저 알았다.
아니 ,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온 국민이 '야구'가 아닌
'박찬호'라는 22살 청년에게 온통 시선이 쏠렸기 때문이다.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리그 땅을 밟았고
현재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설수있게끔 문을 열어준 선수다.
일본야구에 진출한 선배들과는 또 다른 , 미국 메이저리그라는 신세계를 연 선구자였다.
당시 박찬호는 평균 156km를 넘나드는 위력적인 직구와 그가 던지는 커브볼은
서양의 거구들을 쓰러트렸다. 소위 박찬호가 던지는 공은 너무 빨라서 알면서도 치지 못하는 공이라고했다
당시 박찬호는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정도였다.
혼자서 9회까지 완투 , 3진 13개 , 안타 2개만을 허용한 무실점경기
그야말로 이 시대의 완벽한 선수였다.
야구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그의 업적이 어느정도일지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공부로 따지면 하버드로 진학해야 할 정도라고 하니... 말 다한것 아니겠는가?
당시 박찬호 전담 특파원만해도 20여명에 , 신문에는 박찬호 코너가 따로 있엇으며
사소한 것까지 , 대통령보다 더욱 더 자세하게 보도했엇다.
박찬호. 사실 그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요동을 쳤엇다.
당시 대한민국을 빛나게 해주었던 스포츠 스타이자 , 국민들의 힘든 IMF위기 속에서 한줄기 빛이었다.
'찬호박'이라는 아이스크림도 나왔엇고 , 대한민국에서 신랑감 1위로 뽑히기도 했엇고,
수많은 광고에 등장했으며 , 신문에는 따로 박찬호란이 있엇을 정도였다.
당시 박찬호 전담 특파원만해도 20여명에
사소한 것까지 , 대통령보다 더욱 더 자세하게 보도했엇다.
박찬호는 당시 5년간 84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계약조건으로
(현재 돈의 가치로 845억이라는 돈을 생각하기 이전에 10년전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실감이 될지도 모른다)
꿈의 팀인 텍사스에 입단하게 된다.
어렸을때 그에게는 억이라는 숫자는 너무나도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 그가 잘나가니 억이라는 숫자가
너무나도 쉽게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 그의 명예와 실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박찬호는 끝없는 슬럼프에 빠졌엇다.
텍사스 홈구장은 흔히 투수들에게는 죽음의 구장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1년내내 무더운 날씨와 쉽게 장타를 유발한다는게 그 이유.
하지만 박찬호의 부진은 구장의 악조건만으로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원인은 부상에 있엇다. FA 시즌을 앞두고 무리를 한탓에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 육체적 , 정신적으로 끝없는 슬럼프길에 들어선다.
아파서 야구를 그만두기에는 너무 치욕적으로 느껴져서 , 몸을 더욱 더 혹사 시켰고
그랬기 때문에 슬럼프가 더욱 더 길어졌엇고 , 슬럼프에서 탈출 할 수 없었다고 햇다.
초라한 박찬호 앞에 무섭게 돌변한 사람들.
허리부상을 속이고 텍사스와 계약했다는 불명예를 떠안고 야구를 그만두는 더 큰 치욕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박찬호를 그렇게 떠받들었던 국민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 더 큰 상처였을 것이다.
한때 환호했던 국민들의 냄비의식에 의해 현재는 정말 대단했엇던 과거의 영광보다는
추락한 메이저리거의 이미지가 훨씬 더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올라가는 법만 배웟지 내려왔을때의 상황을 배우지 못했던 그에게 닥쳐온 슬럼프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고 자신 혼자서 그 시련을 이 악물고 벼랑끝에서 서서 간간히 버티고 있는 그에게
국민들이 냉정하게 등을 돌렸을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생각했엇다고 한다.
아마 그가 , 명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엇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
사실 , 그땐 은퇴를 아름답게 포장해 줄 수 있을정도로 그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MLB 박찬호 출전이라는 자막을 달고 새벽마다 중계가 되던 야구 경기는 조용해졌다.
박찬호의 뒤를 이은 한국 출신 메이저리거들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동안
박찬호는 홀로 외롭게 마운드에서 서서 재기의 기회만을 노렸다.
평소에도 박찬호와 친분이 두터운 차인표의 말마따나 , 박찬호는 왜 그토록 야구에 집착했을까?
누구도 달성하지 못하는 업적도 달성했고 , 어마어마한 돈도 손에 쥐었던 그이기에 깔끔하게 은퇴를 하고
맘편히 살아가면 될것을 , 마이너리그 보다 못한 시골 고등학교 야구부까지 내려가서
한때 메이저리거였던 그가 그토록 초라한곳에서까지 재기를 준비했엇던 것은
돈과 명예가 목적이 아닌 , 다시 한번 일어 설 수 있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과
여기에서 주저앉는다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그의 의지 ,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팬들때문에 이 악물고 그 모진 세월을 버텼을지 모른다.
과거 요리하던 부인의 모습에 반해 , 청혼을해서 결혼을 했엇고 , 이제는 어엿한 아버지가 되었다.
경기떄문에 멀리 해외로 갈때는 항상 부인과 자식들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큰 목표과 있기에 씁쓸하지만 항상 이겨낸다고 한다.
어느새 박찬호 나이도 38살 ,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22살 당시에는 전혀 필요없을것만 같았던 것들이
현재는 없으면 안되는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역시 과거의 영웅일지라도 세월앞에는 장사없는듯 하다.
초라할 수는 있어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게 박찬호였다.
아 , 여기까지인가보다. 라고 포기하지 않고
할수 있을것 같은데 ... 한번 더 ! 한번 더 ! 끝없이 도전하는 박찬호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LA다저스 에이전트에 이야기를 했다.
혹시 마이너리그에 어떤 계약이라도 해준다면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그리고 , LA 다저스는 박찬호가 던지는것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선수였고 최고의 전성기를 날렸던 그에게는 굴욕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한때는 정말로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엇지만 , 끝없는 도전끝에
아 , 아직 한줄기 희망은 살아있구나 싶었고 , 점점 자신감도 생기자
할수 있어 , 할수 있어 ! 라는 생각을 갖게 됬다고 한다.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 한 가정의 가장.
그가 먼곳으로 경기를 하러 가기위해 딸에게 편지를 쓴 내용에는
가장으로써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도 있엇지만
그의 편지에는 아빠는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되있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포기하지않고 맞서 싸울테니 지켜봐달라는 그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는 , 집주인이건 , 팀동료건 한국을 자랑하고 한국음식을 추천해주며
시간 날때마다 한국 이야기를 하는 당찬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가 외국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 그가 조국에 가진 애국심과 열정만큼은 어느 한국인 못지 않다.
한때 이슈가 됬엇던 박찬호 발차기 사건. 나도 당시 정확한 상황은 몰랐다. 그저 그만한 이유가 있엇겟지...라고만 생각했을뿐. 이제와서야 듣는 이야기이지만 , 마음한켠이 짠햇다.
자신에게 하는 욕은 참을 수 있엇지만 , 마치 나를 욕하는게 내 나라 조국을 욕하는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비록 먼나라에 있지만 , 그의 마음은 아직까지도 한국을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 한국이 그립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그러기에는 자신의 상황에서 도망치는것 같아 꿋꿋하게 재기를 위해 힘쓰고 있다.
야구계에서는 거의 큰형님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정도의 위치에 서있는 박찬호.
송승준 선수 말대로 , 후배들이 열심히 쌓아올린 공로에 자신은 발만 밀어넣을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 그는 소중한 휴가를 뒤로한채 한국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격려하고 지도해주며
한국 야구를 위해 끝없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 외국에서만 야구를 하니 한국 야구는 신경도 안쓸거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겟지만
박찬호 그는 단 한순간도 한국 야구를 잊어본적이 없다.
기자들을 몰고 다니던 그가 , 이번에 이적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는 기자회견마저 캔슬되었다.
그래서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을 고국에서 하면서 고국의 국민들에게 자신의 등번호와 다시 돌아간
메이저리그의 유니폼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다.
한때 잘나갔을때는 그렇지 않았엇는데 , 라는 서운함의 눈물도 있었겟지만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하고 끝없는 추락으로 현재 이자리까지 서있는 그는
미안함이라는 마음이 더 컸을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박찬호의 모습. 어느새 많은 팬들까지 생겼고 그 팬들은 박찬호를 항상 응원한다.
멀리에서 온 한국팬들과 , 자신의 팬들을 위해 연습도중에 야구공을 던져주는 박찬호.
그의 모습에서는 비록 사소한거지만 , 아직까지 자신을 잊지않고 기다려주는 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이다.
미국 국가가 울리는 이 장면에서 한 단어가 생각났다.
이방인.
아무리 오래 다른곳에 살더라도 그는 이방인인 것이다.
그리고 , 마음을 거스르는 행동은 조금은 무례하게 보일지라도 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조국을 버리고 미국을 위해 가슴에 손을 얹을 수 없고 국가를 따라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는 앞으로 또 다시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 그는 메이저리거다. 세찬 바람도 이겨내는 뚝심을 가졌고 , 밝음과 어둠. 이면을 모두 아는
진정한 노장이 되었다. 그의 강속구가 언젠가 다시 한번 불피워주길 바란다.
선발투수가 아니라 구원투수로 뛰는 지금의 박찬호의 노력을 응원한다.
어쩌면 , 그 노력에 의해 부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나는 박찬호에게 만큼은 부활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어디선가 얼핏 들은 말이 있다.
"부활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 심장은 단 한순간도 멈춘적이 없다."
단 한순간도 , 야구를 포기한적이 없고 야구에 대한 열정이 식은적이 없는 박찬호에게 바치고 싶은 말이다.
이 장면으로 시작한 MBC 스페셜의 첫화면.
나는 처음에 이말이 무슨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 다시 한번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 팬들을 생각할 줄 아는 그를 보고 이해 할 수 있엇다.
우리를 아직까지 잊지 않은 박찬호.
대한민국 국민에게 숫자 61은 아직도 박찬호 당신 그 자체다.
나 역시 , 박찬호 당신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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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본방사수를 하지 못해 얼마전에 꼭 다운받아봐야겠다 , 해놓고 미루다가
어제서야 보고 후기를 쓰게됩니다. 즉시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실것 같아서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요즘 스포츠스타를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 박지성,김연아정도를 뽑죠.
하지만 과거의 스포츠스타 박찬호도 있엇다는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박찬호 다시 메이저로 돌아갔으면좋겠다..
박찬호...최고지..
하아...진짜 감동에 눈시울이 붉혀지네요...
박찬호선수..어렸을때 야구선수중에 아는사람을 불르면 '박찬호..'라는 한마디만했었는데..
지금도 그는 끝나지 않았네요..계속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으니..
현재는 올해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고있는 저에게도 이 글이 많은 도움이 됬어요..
저도..자신을 이기고 할수있다는 생각을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될것 같습니다..박찬호 선수도 힘내길..
아... 멋있다..
부활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 심장은 단 한순간도 멈춘적이 없다.T^T
박찬호선수 물론 일본에서 선전할꺼라 생각하고요. 박지성선수도 그리고 월드컵 이탈리아전 역전승의 묘미를 알려준 안정환, 언제나 순박한 모습으로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나아가는 이승엽선수(전에 베이징 올림픽 경기갈때 인천공항에서 봤는데 뭔가 위대하다 라기 보다 그냥 친근한 느낌이 들었었음.) 이분들의 모습은 영웅이라는 수식어외에도 정말 노력이 뭔지를 보여주는 이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도 형 안있어 찬호형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박찬호가 잊혀질정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