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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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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삼국유사 귀축제사 기록 인용
麗輝 추천 0 조회 411 07.09.13 12:5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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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7.09.13 14:09

    첫댓글 이 글을 쓴지도 벌써 3년도 더 됐군요. 지금도 여기서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암튼 신라인들이 닭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썼다고 볼만한 '정황'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수탉이라고 한 표현에는 뭔가 함축적인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넘어갔던 부분인데...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제게 자극을 줘서 감사합니다. ^^

  • 07.09.13 13:29

    그냥 닭도 아니고 수탉이라,,?

  • 07.09.13 23:06

    죄송한데, 윗글에서 '삼국 중 가장 중앙집권국가로서 발전이 빨랐던 신라'라는 건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가요?

  • 작성자 07.09.15 01:05

    거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 커갈수록 중앙집권국가로서의 발전은 늦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라는 달랐죠. 신라의 중앙집권화 정도는 고구려와 백제를 초월합니다. 유목민족적인 정치스타일도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혈연적인 유대관계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 다독여야할 내부집단의 규모나 숫자가 적었다는 점 등이 그러하겠죠. 그래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군현제로 드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중국의 제왕조들 사이에서도 봉토를 받은 제후들은 늘상 존재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 역시 마찬가지구요. 물론 신라에 제후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차이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구려와 백제와 말이죠.

  • 07.09.15 00:11

    후발주자로서의 응집력이 다른 두 국가와는 확연히 다르게 뛰어났던 점입니다. 백제가 관등을 가장 먼저 정비하지만 실제 운용에서는 다른나라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졌죠. 그리고 고구려 역시 각 지역의 성주들의 사병문제와 복속한 말갈족이나 다른 여타 부족 문제도 있어서 신라에 비해서는 확실히 국가 전체적으로 중앙집권화가 떨어진 면도 있으니까요. 아마 그걸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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