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겨울 생태와 더불어
새해 들어 첫 주말을 맞은 토요일이다. 소한이 내일이라 추위는 여전해 바깥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도서관까지 이동은 보도로든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는데 북면이나 대산으로는 버스를 타고 교육단지는 걸어서 간다. 어제는 대산 평생학습센터 마을도서관으로 가려고 도계동을 지나다 차창 밖으로 교통섬을 지키고 선 여러 그루 소나무들을 보면서 세한도가 떠올랐다.
토요일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동선을 생활 속 글로 남기면서 ‘도계광장 겨울 소나무’도 한 수 곁들였다. “어딘가 자생하던 청청한 소나무들 / 산림이 개발되어 옮겨질 운명이라 / 교통섬 도계광장에 뿌리 내려 자란다 // 추위에 진면목인 옛글이 맞더구나 / 겨울날 차창 밖으로 푸르름 더 돋보여 / 화폭에 담은 세한도 실제 모습 본다네” 추사가 남긴 세한도 논어 구절이 생각났다.
아침 식후 걸어서 40여 분 걸리는 공공도서관 업무 개시 시각에 맞춰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에는 조경수로 심어둔 땡감이 높이 자랐는데 조랑조랑 달린 감들이 개수가 시나브로 줄어졌다. 이른 시각 어디선가 날아온 직박구리가 얼음처럼 굳어진 홍시를 쪼아먹다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니 날아갔다. 아파트 주민이 드나드는 곳이라 인적 뜸한 새벽에 날아와 먹잇감으로 삼았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걷다 반송천 냇바닥을 내려다봤다. 거기는 평소 자주 보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주둥이를 밀고 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했는데 그 곁에 정체 모를 한 마리 새가 웅크려 있어 피사체로 삼았다. 외양으로 옛 그림에서 본 비옷 도롱이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여름새로 한두 번 본 듯도 했는데 생태 사진가에 문의하니 ‘해오라기’라는 회신이 왔다.
조금 더 이동한 냇바닥에도 여름 철새로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은 쇠백로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야윈 다리로 성큼성큼 옮겨 다녔다. 여름 철새가 먼 비행으로 소진된 열량 소모를 줄이고 우리 고장에 눌러살면 그만큼 추위는 감수해야 한다. 짝짓기해서 둥지에 새끼를 친 이후 먹이만 쫓아 먹다가 비행을 게을리해서 몸집이 비대해 본향으로 가기엔 체중이 초과된 녀석인지도 모른다.
원이대로 건너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나 창원도서관을 찾았다. 사서가 출근한 시각에 맞춰 열람실로 오르니 이용자는 없어 아늑한 분위기였다. 창가에 지정석으로 삼다시피 한 자리로 가 대출 도서로 집에서 읽다 접어둔 정범모의 ‘김홍도 새로움’을 펼쳤다. 김홍도 그림으로 남긴 여러 비평과 논문을 접했는데 정범모 저서는 이를 더욱 체계화시킨 총체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열람실에 편안히 앉아 200여 년 전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홍도의 생애를 꿰뚫어 연구한 저술을 접했다. 그의 태생지가 서울과 안산으로 엇갈리긴 해도 안산에는 그의 호 ‘단원’을 딴 행정구도 있다. 거기 30년 연상 스승 강세황이 살아 김홍도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저자가 개 그림 ‘모구양자’를 소개하면서 그림은 ‘보는 것과 읽는 것과 냄새까지 맡는 경지’를 소개해 수긍이 갔다.
점심때가 되어 휴게실로 건너가 간편식으로 한 끼 때우고 북 카페 커피를 볕이 든 창가에 앉았다. 다시 열람실로 돌아와 김홍도 생애와 여정을 따라 금강산을 다녀왔다. 정조 임금 명을 받아 김응환과 동행해 현지에서 스승 강세황을 만나 관동 팔경 명승지를 화첩으로 남겼는데 현전하는 작품은 상당량이 유실된 일부였다. 그의 생 후반에 남긴 작품은 다음에 더 살펴 읽을 셈이다.
오후 볕살이 퍼지자 도서관을 찾아온 이들이 점차 늘었는데 나는 평소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왔다. 귀로 도중 아침에 본 ‘겨울 해오라기’를 남겼다. “여름새 해오라기 귀향을 단념하고 / 반송천 웅덩이로 날아온 소한 아침 / 웅크린 뾰족 부리로 먹이 찾고 있어라 // 한겨울 얼지 않은 도심 속 냇가지만 / 아무리 살펴봐도 물고기 없을지라 / 삼동을 어찌 버틸지 안쓰러워 보이네” 25.01.04